죽는 건 겁나지 않아,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내 지금 상태는 약간 두려워. 날마다 내 존재는 조금씩 줄어들어. 오늘의 나는 말이 결여된 생각이지. 내일의 나는 생각이 결여된 몸뚱이가 될 거야. 그렇게 되는 거지. 하지만 마야, 지금 네가 여기 있으니 나도 여기 있는 게 기뻐. 책과 말이 없어도 말이야. 내 정신이 없어도. 대체 이걸 어떻게 말하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303쪽

 

나는 조금씩 뭔가를 상실하며 살고 있구나. 오늘,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인간성의 한 부분을 또 잃어버리는 경험을 했다. 크고 파괴적인 스트레스였고, 맞서서 뭔가를 내던지지 않으면 깨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보니 내가 아니었고, 내게서 떨어져 나가려고 나를 공격하는 기분. 비슷한 거라면 그 옛날 만화 기생수에서 흔하게 등장했던 그런 장면인데, 나도 모르게 들러붙었던 기생수가 종국에 숙주의 목을 쳐내고 그 자리를 꿰어차는 그것.

 

삶의 많은 순간들이 나약한 정신에 이런 식으로 구멍을 내는 일들은 앞으로도 더 많아질 텐데... 그때마다 무엇으로 벌어진 빈틈을 메워야 할지를, 헤아려 본다. 내게 익숙한 생각의 도구가 없어지더라도 최후의 최후까지 내가 말하고 싶어지는 건, 마음에 남아있게 되는 건 뭘까. 줄어들지 않고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걸 꺼내놓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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