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종현

2차대전이 끝나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유태인학살문제는 단연 화두였다. 사실 동서유럽을 통틀어 꽤 많은 수의 유태인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죽었고, 짧은 시간 동안에 대량으로 죽었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 외에도 주요한 나치스의 죄목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전쟁광이었다는 사실은 역사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일본의 태평양전쟁도 실은 미국이 일본으로 하여금 미국과 결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도록 환경을 조성한 다음, 실제 일본이 진주만으로 쳐들어왔을때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진주만 주둔 해군 및 육군(당시 미국은 공군이라는 군종이 없었다. 육군 항공대 및 해군 항공대가 있을 따름이었고, 멤피스벨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미 공군은 실제로는 당시에는 공군이 아니라 미 육군 제 8항공대라는 육군 산하의 부대였다. 미국에 공군이 독립군종으로 창설된 것은 2차대전 후의 일이다. 한국전쟁에는 공군이라는 독립군종으로 투입된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이 루즈벨트가 유태인이다. 루즈벨트가 굳이 끼어들지않아도 되었을 전쟁 -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기 전인 1940년에도 미국 구축함과 독일 U-Boat들은 대서양에서 크고 작은 군사충돌을 일으켰고, 이 중에는 미국 구축함이 도발한 경우도 있었다 - 에 끼어든 것은 단 하나, 뉴딜정책으로도 회복이 안된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함이었다(흔히 착각하기를 뉴딜로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 해결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미국의 경제공황을 해결한 것은 뉴딜 정책이 아니라 2차세계 대전 참전이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독일공군 총사령관이자, 게쉬타포의 창설자,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심복이었던 괴링은 유태인학살을 몰랐다고 대답했다. 많은 국방군(정규군) 및 나치당의 고위 간부들 중에서도 유태인 학살을 몰랐다고 대답한 경우가 많았다. 정말로 몰랐을까, 아니면 알았어도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일까.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괴링은 유태인 학살을 전혀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전모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괴링은 1934년 이후에는 독일공군에만 매달렸고, 비밀경찰 게쉬타포에는 손을 떼었다. 게쉬타포를 지휘하면서 비밀경찰의 대명사로 게쉬타포의 악명을 드높인 자는 SS(친위대) 국가지도자 Heinrich Himler. 히믈러는 원래 SS와는 상관이 없이 괴링의 사설경찰이나 다름없던 게쉬타포에 SS를 파견하여 점차 게쉬타포와 SS의 구분을 없애가면서 국가기관화하였다. 이 SS가 유태인학살을 전담하였는데, SS 및 게쉬타포의 철칙 중에는 "알 필요없는 자에게는 알리지 말며, 알 필요가 없는 일에는 관심도 갖지 말라"라는 것이 있다. 괴링은 이에 해당한다. 나치당 초기 멤버인 괴링은 물론 유태인 탄압을 알고 있었지만(하지만 괴링은 1차대전때 리히트호벤전투기편대 소속이었던 유태인을 보호한 적이 있다. 이유는 그의 전우였기 때문이라는 것), 학살은 몰랐다는 괴링의 증언은 진실성이 있다.

95년 2월에 뉴스위크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특집기사가 나왔다. 해당 기사는 유태인 학살로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50주년을 기념한 특집 기사였다. 그 기사는 유태인 대자본의 영향력 하에 있는 서구 언론치고는 상당히 냉정하게 아우슈비츠를 다루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보통 400만의 유태인이 죽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은 진실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처음부터 유태인을 죽이기 위해 건설된 수용소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폴란드군 장교, 지식인들이 잡혀들어왔고, 집시, 유태인, 폴란드 레지스탕스 용사들을 비롯한 숱한 반나치 활동을 했거나, 나치에 의해 '생존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인종들이 끌려들어왔다. 그렇게 끌려들어온 자들은 처음에는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쉰들러리스트'에 나온 장면은 그 수용소에만 해당된 것은 아니었고, 아우슈비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러시아에서 유태인 학살은 '토텐코프'라고 불린 특별행동대(그리고 그들에 의하 훈련받은 우크라이나 민병대 등)에 의해 총살과 배기가스, 기타의 방법으로 학살(러시아에서 학살은 유태인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소련군 장교, 정치위원, 콤소몰이라고 불린 청년조직의 간부들이 우선대상이었다)이 이루어졌으나,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에 의한 대량살상은 1943년, 히믈러가 '유태인문제에 대한 최종해결'을 지시하면서 이루어졌다. 그 이후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다하우 등 숱한 악명높은 강제수용소들이 역사에 그 이름이 남게 된 것이다.

문제는, 학살된 유태인 숫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는 400만을 포함해서 60년대까지는 800만이 죽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600만으로 하향조정되었다. 왜? 또한 95년 2월자 뉴스위크지의 기사에 따르면, '아우슈비츠는 여섯 개나 되는 나치의 학살 수용소중 가장 큰 것에 불과했을 뿐이고, 사실 그곳이 최악이었다고 생각할 근거도 없다. 그곳이 유명해진 것은 대규모였다는 이유도 있지만, 유대인과 집시들의 죽음의 수용소(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스실은 근처의 비르케나우 보조수용소에 있었음)이자 유대인, 폴란드정치범, 전쟁포로, 동성연애자, 그리고 보통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여러 강제노동수용소의 본부를 겸했다는 특수역할때문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이어서 이 기사는, ' 과장되고 꾸며낸 이야기 많다. --- 아우슈비츠에 처음 수용된 사람들은 정치범. 사망자도 400만명 아닌 110만∼150만'라고 제목을 달았다. 초기 수용자들은 폴란드인들로서 카톨릭신자였고, 그 이후 독소전이 전개되면서 소련군 포로들이 끌려들어왔다. 이어서 들어온 자들이 유태인들이었던 것이다. 이 기사를 쓴 Andrew Nagorski 뉴스위크 모스크바 지국장은 기사의 말미에 의미심장한 기사를 달았다.

"80년대 말에는 아우슈비츠에 인접한 카르멜 수도원에 관한 카톨릭 교도와 유태교도 사이의 분쟁으로 격렬한 비난전이 촉발됐다. 아우슈비츠가 상대방에 대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인정하기를 서로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그같은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폴란드신정부는 90년 기독교도와 유태교인으로 구성된수용소 박물과 국제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비판론자들은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불만이나 그 이후 아우슈비츠는 놀란 만큼 변했다. 특히 비르케나우 가스실 자리에 있는 안내문은 희생자의 대부분이 유태인이었음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 기사가 암시하는 바는 명백하다. "유태인이 대부분이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계산을 다시 해보자. 60년대에 800만이 죽었다는 주장은 넘어가더라도 현재 통용되는 '전설'은 600만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400만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400만은 무슨 얼어죽을 400만. 많이 잡아야 150만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었고, 그것도 유태인이 절대다수가 아닌 것이다. 설사 2/3인 100만명이 유태인이었고, 200만(600만에서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는 400만을 뺀 나머지)명의 죽음이 사실이라손 치더라도, 벌써 2배의 뻥튀기를 해왔다는 얘기인 것이다.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왜?

단지 나치가 미워서? 천만에 말씀이다. 800만이나, 600만이니 하는 숫자는 서구 언론이 내뱉어온 말들이다. 서구 언론은 상당수가 유태인의 자본력 지배하에 있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왔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유별나게 유태인학살자 수를 뻥튀기했을까? 원래 유태인이라는 인종은 로마제국에 의해 추방된 이후 지금까지 2000여년을 나라없이 떠돌면서 유럽에서는 철저히 박해받아왔다.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시시민들에 의해 유태인 학살이 있었고, 20세기 초 러시아에서도 유태인 학살이 있었다. 러시아 혁명에 유태인들이 대거 가담한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다.

이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0여년 동안 정착하여 살아오던 팔레스타인 민족을 나치 못지 않은 방식으로 학살하며 몰아내고 그 땅에 정착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그들은 나치의 유태인학살을 빌미삼아 서구 세계의 보호와 묵인 하에 팔레스타인 민족을 나치가 했던 방식으로 탄압하고 학살하는데 조금의 주저도 없이 행동할 수 있는 방패막을 나치의 유태인학살로 돌려 서구의 눈을 감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했다.

나치의 범죄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된다. 역사를 왜곡하여 타민족을 침입하며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채우는 모습을 우리는 일본에서 보고 있다. 나치-일본-유태인은 한통속이나 다름없다.

(사실 히틀러도 알고보면 괜찮은 놈이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국수주의적 인종주의에 미쳐있었다는 것이 인류사에 커다란 획을 그어놓았던 것이다. 히틀러는 어떻게 보면 2차대전 후에 서독이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배경도 만들어놓기까지 했다. 1차대전 이후에도 엄연히 남아있던 구체제적인 신분제도를 전쟁 전과 전쟁 기간 동안 쓸어버렸던 것이다. 또한 히틀러는 전혀 허영심도, 재산축적에도 관심이 없는 희한한 독재자였다. 사진을 보라. 히틀러가 그의 제복을 치장하는데에 어떤 장식을 썼는지를 그의 부하들 및 군 장교들의 제복과 비교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솔직히, 히틀러의 유태인 탄압은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 유럽에는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듯이 유태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어왔고, 실제 수백년 동안 반유태주의 활동이 활발했다. 19세기 말에 있었던 프랑스의 '드레퓌스사건' 역시 반유태주의가 낳은 산물인 것이다.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건에 대해서 서구인들 스스로가 범죄라고 하는 것에는 솔직히 웃음만 나온다. 스딸린의 소련내 숙청 및 학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안하는 자들이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그렇게 크게 다루는 이유는 여전히 세계가 유태인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방패삼아 '소나치'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짓을 팔레스타인에 대하여 저질러오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유태인 600만 학살'이라는 타이틀에 눈이 멀어 있다. 나치식의 경제발전의 혜택(물론 부정적인 면도 동시에 발전했다)을 박정희를 통해서 입은 우리다(박정희는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했다). 서양인의 관점, 거기에 유태인의 관점에서 나치 독일을 바라보지 말자.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참고할 만한 것들이 있다. 쓸데없이 서구인과 유태인의 관점에서 나치 독일을 왜곡하고 있는 현실은 시정되어야 한다. 서구인의 관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다가 우리 것을 잃어버린 사례를, 당장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의식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당하게 우리의 주체성을 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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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6-01-1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로코스트 산업이란 책이 생각나는군. ^^

수퍼겜보이 2006-01-19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요즘 뭐하고 지내시는지~ 글 좀 올려주세요.
 
 전출처 : 나귀님 > 조지 오웰은 아직도 "반공작가"인가?
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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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슨 농담이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랬다. 조지 오웰은 "반공작가"였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그리고 그가 별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1948년"에 미래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라 그냥 "가까운 미래"라는 뜻에서 제목으로 삼았다는 "1984년"이 정말 우리 눈앞에 당도했을 때만큼은, 그리고 이에 공명하여 박세리도 박찬호도 나오기 훨씬 전에 유일하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이었다던 백남준이 펼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란 전위예술이 공중파 방송을 타고 방방곡곡에 퍼져나갔을 때만큼은, 분명히 그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른바 "밀레니엄"이 오기 직전에 이른바 "Y2K"라고 해서 "디지털 대재앙"을 부르짖던 일종의 종말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던 것과 비슷했다. 막상 조지 오웰이 "예언"했다는 "1984년"이 현실로 다가왔다며 "큰일"이라고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였을 때의 상황이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1984년의 실체"가 다름아닌 "북한"이라고 했다. "빅 브라더"는 다름아닌 "김일성"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영국의 한 "소설가"는 얼떨결에 "북한 공산주의의 암울한 현실"을 무려 반세기 전에 정확하게 예언한 "점장이"로 찬사를 받았다. 조지 오웰이 한국에서만큼은 철두철미한 "반공작가"가 된 순간이었다.

2.

물론 우리가 단순히 <1984년>만 가지고 조지 오웰의 머리 위에 "반공작가"란 월계관을 씌워준 것은 아니었다. 그 한편에는 이보다 훨씬 경쾌한, 훨씬 짧고, 또 어떤 면에서는 훨씬 "이해하기 쉬운" 우화소설이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동물농장>이었다. 좌청룡 우백호도 이만 하면 보통이 아닌지라, 한편에는 암울한 미래의 현실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 다른 한편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심지어 그 "빨갱이"들을 "돼지"라고 지칭하면서까지!) "우화 소설"이 있었으니, 이만하면 그야말로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반공작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조지 오웰의 책은 필독서가 되었고, 더운 여름 지나가고 찬바람이 불어올 때면 너도나도 방학 숙제 베껴내기에 정신이 없을 무렵 읽어야 하는 과제물 도서가 되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며 돼지들의 비열함에 분통을 터트리고 ("나는 콩사탕이 시러염, 너나 쳐드셈!") 아드리안 모올의 말마따나 "복서가 팔려가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글썽글썽"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필독서"이며 "과제물 도서"이며 "추천도서"이다. 따라서 조지 오웰은 여전히 "반공작가"인 셈이다.

3.

그렇다면 조지 오웰의 운명도 무지막지 딱하다. 본인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인물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반세기 가까이 "반공작가"로, 즉 "사회주의를 향한 강력한 비판자"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일까? <동물농장>만 놓고 보았을 때, 이 작품은 분명히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 "소비에트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공산주의 혁명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오웰의 비판은 순수한 혁명, 어쩌면 정말 진보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었을 그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독재자와 전체주의를 겨냥하고 있다. 즉 오웰이 정말로 문제삼은 것은 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자칭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도 마찬가지고, 세상 어디서나, 제아무리 작은 조직 내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권력"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동물농장>을 "사회주의 비판"으로, 그리고 오웰을 "사회주의 비판자"로 보는 것은 무지막지하게 이 작품과 저자의 본뜻을 오해하는 셈이 된다. <1984년> 역시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 보건대 특별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겨냥하고 썼던 작품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 역시 "빅 브라더"로 상징되는 "권력," 그러니까 "독재"와 "공포정치"에 대한 우화라고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비록 스탈린 시대나 김일성 시대에 소련이나 북한에서 "공포정치"가 자행되었다고 치더라도, 이 역시 단순히 "반공"적인 성향의 작품으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오웰은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끝끝내 "반공작가"로 간주되고 있다.

4.

그나저나 뜬금없이 웬 <동물농장>을 다시 읽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책상 위에 이 책이 놓여있었다고나 할까. 이걸 읽기 전에 읽었던 다른 책에서 조지 오웰의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슨 책을 읽었나 하나하나 따져보니...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로버트 뉴턴 펙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던 날>이었다. 흠... 결국 "돼지" 이야기라서 이걸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었을까? 그러고보면 <동물농장>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은 결코 아니었다. 이미 서너 번은 읽은 것 같았다. 초딩 때 한 번, 중딩 때 한 번, 그리고 나중에 대딩 때도 한두 번. 그런데 솔직히 이번처럼 이 책을 "낄낄대며"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괜한 소리가 아니라 정말 "킥킥대며" 읽었다. 너무 웃겼다. 단순히 "재미있는" 차원이 아니라, 정말 "헉" 소리가 나올 만큼 웃겼다. 왜냐하면 여기 등장하는 돼지, 양, 까마귀, 말 등등의 모습에 익히 알고 있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겹쳐졌던 까닭이다. 마르크스, 스탈린, 트로츠키를 비롯해서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 휩쓸려 버린 특권층, 기회주의자, 프롤레타리아 등등 제각각의 모습이 그 동물들 하나하나에 투영되었던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전에 여러 번 <동물농장>을 읽었어도 한 번도 "킥킥거린" 적이 없었던 까닭은, 내가 미처 "역사"에, 그러니까 이 "우화"의 배경이 되는 "현실"에 대해 무지했던 까닭이었을까? 그렇다면 이 책은 결코 초딩이나 중딩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러시아의 역사, 그리고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역사에 대해 뭔가 지식을 갖고 있어야만, 돼지와 말과 양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상에 공감하며 "킥킥거릴"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작품은 단순한 "우화"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또한 헛다리 짚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지 오웰은 여전히 초중고딩의 "추천도서"이다. "반공작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5.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아이러니컬했던 점은, 분명히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인 이 책을 충분히 "다른 각도"로 해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80년대 내내 "필독서"이자 "교양서"로 자리잡았다는 현실이었다. 즉 <동물농장>의 이야기는 혁명과 스탈린 시대의 소련뿐만 아니라, 70년대와 80년대 군부독재 치하의 한국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특히 처음 약속과는 달리 걸핏하면 동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면서도, 툭하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존즈가 다시 돌아올 거요. 동무들은 존즈가 다시 돌아오는 걸 바라진 않겠지요?" 하면서 은근 협박하는 꼴이라니! 이거 솔직히 우리도 많이 들어 본 이야기 아닌가. 가령 전 국민이 모금해서 평화의 댐을 만들지 않으면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느니, 한미동맹이 깨지면 당장에 북한이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적화통일이 된다느니, 혹은 이른바 진보 세력을 자처하며 남한에서 암약하는 빨갱이들이 기백만이며 어쩌구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솔직히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이걸 "필독서"로 지정했던 양반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작품인 셈이다. 즉 "반체제적"이며 "반권위적"인 사고방식을 학생들에게 딱 길러주기 좋은 소설인 것이다. 과연 이들이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당시 문교부 (교육부가 아직 아니었다.) 에 뭔가 "불온한" 사상을 지닌 인사가 하나 있어서 이 "사회주의자"의 작품을 "반공소설"로 슬쩍 포장해서 끼워넣었던 걸까? 아는지 모르는지, 이 책은 여전히 "독후감 숙제"이다. 조지 오웰은 여전히 "반공작가"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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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서서 잠깐 읽었는데,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들을 담고 있는 책으로, 하나같이 예쁘고 비교적 마음 편한 그림들로 채워져있다. 책 편집 또한 참 예쁘다. 예쁜 다이어리 같다. 책 뒤에 붙어있는 빅토리아 시대 연표마저 이쁘다.
내용도 읽기 쉽고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음... 그러나 용돈이 궁해서인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둘 다일지도) '지름'의 'ㅈ'까지 내려받다가 버퍼링 표시가 뜨더니 그냥 중단되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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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겜보이 2006-01-1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

물만두 2006-01-1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3=3

2006-01-13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퍼겜보이 2006-01-1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 2
 
 전출처 : hallonin > 한승조-지만원-조갑제 라인을 보며





뭐 솔직히 이나라의 (자칭) 보수세력이라고 하는 양반들이 예전부터 어느 정도 똥오줌을 못 가리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카미카제의 정신마저 갖고 있는 줄은 몰랐다. 수많은 매체에서 논의된대로 이번 건은 그들의 자폭파티다. 나자신은 민족주의라고 하는 유령에 대해 선천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저런 이들이 튀어나와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답시고 중얼중얼거리는 것은 영 우습기만 할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들의 공통점은 반갑게도 자국의 민족주의를 지독하게 혐오한다는 것이다. 근데 그 양반들은 민족주의의 대안을 사대에서 찾아낸다. 이게 정말 웃기는 부분이다. 세상에, 세계 어느나라의 보수우파가 자신들의 전통을 부정하고 깎아내리며 자신들을 지배했던 제국에게 경의를 바치는가. 그들은 보수우익이 아니다. 진짜 보수우익이라면 김구를 들먹거려야 했지만 일제시대에 살면서 교육과 특혜를 받고 이승만 정권의 탄생과 함께 일제시대에서 이어지는 정부법통의 수혜를 받았던 그네들의 사고는 오히려 일본 우익의 코드와 일치는다. 어이가 없는 부분. 대체 어느 나라의 보수우익이 자국의 전통이 아닌 타국의 전통에 자신을 맞추려 하는가. 일본 우익들을 봐라. 아주 열정적이다. 그들은 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 하나를 바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확성기도 틀고 전단지도 돌리고 [프라이드] 같은 뻔뻔한 영화에 제작비도 투자한다. 아예 경비행기를 빌려서 독도 상륙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칭) 우익은? 그런 일본애들이 하는 짓이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그런 다음 변명이라는 게 그런 의견이 자신들의 글에서 비중있게 다뤄진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비중이 있든 없든 글의 흐름상 결정적인 결론 도출인데 어쩌시나). 지금 무슨 코미디하는 거유?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힘의 이데올로기다. 그들은 자신들을 압도했던, 혹은 현재도 압도하고 있는 힘에 경도되어 있다. 그들의 논리는 힘에 대한 너무도 자연스러운 승복, 소위 자유주의적-코스모폴리탄적이라는 그네들 자신의 개념에 의해 완성되는 힘에의 경배다. 그래서 그들의 사고 속에서 노상 침략만 당하고 지금도 힘이 없어서 미국이 한마디하면 금새 쫄아버리는 이 나라의 전통은 빈약하고 별볼일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숙명에 가까운 역학구조상 우리는 그 힘의 흐름에 빌붙어 세파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 눈물날 정도로 절절한 패배주의라니. 그들에게 우리나라가 가져야 할 바른 마음가짐은 자신들 나름대로는 현명하다고 자위할 것인 '힘'에의 종속이며 그것은 부당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세상은 약육강식. 우리나라는 먹는 자리에 끼질 못한다. 적어도 이 양반들의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언제나 뜯어먹히는 입장이다. 좋다. 그것도 하나의 의견, 말마따나 세상은 이미 '쓸모없는 것들로 넘쳐 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거기에 민족을 위한다느니 국가를 위한다느니 늘어놓는 것이 꼴볼견이다. 이것은 나라밖에서 독자적인 기구를 마련하고 끊임없이 제국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던 김구보다 계약서에 사인을 몇줄 긋는 걸로 나라를 슬라브인 러시아가 아닌 같은 아시안인 일본의 품에 안겨주었던 이완용을 더 아름답게 생각하는 그들의 태생과도 같은 기회주의적 발상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훨씬 환영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에서 환영받는 보수주의자라니. 역시 이 분들은 개그가 뭔지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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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2-0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우와, 저분 꼭 기억해야겠네요.^^

수퍼겜보이 2005-12-05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동아일보 김순덕이라는 사람이 칼럼에서 좌파는 윤리를 중요시하는데, 우파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니까 똑같이 나쁜 짓을 해도 좌파가 더 위선적이라네요. @.@ 우리나라의 자칭 우익들은 알고보면 나쁜 사람들 아닌데 다만 머리가 나쁜 건지도...??

하치 2005-12-0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파고 우파고, 진보고 보수고 간에 목소리 큰 놈치고 일 잘 하는 놈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_-;
 
 전출처 : 로쟈 > 고유명사의 오역에 대하여

'고유명사'란 말로 내가 지칭하고자 하는 것은 번역서들에 등장하는 인명과 작품명 등이다. 독자에게 생소한 고유명사라면 역자가 '특권'을 가지고 몇 가지 원칙(가령, 원음 표기나 교육부의 외국어 표기안 등)에 따라 '처음'으로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관례(상식)에 따르거나 그에 준하여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 보며, 그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타당한 이유를 명시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가령, 왜 '베르그송' 대신에 '베르그손'이라 표기하는지 등). 아무런 이유 없이, 역자의 독단에 따라 '임의로' 표기하는 것은, 그리하여 '오역'을 만드는 것은 착오가 아니라면 대개 무지의 결과이거나 오만의 소산이다. 그걸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미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드는 것은 낮에 도서관에서 유진 홀랜드의 <프로이트의 거짓말>(접힘과펼침, 2004)이라는 '괴이한' 책을 잠시 들춰보다가(번역서의 제목 자체가 '거짓말'이다) 찾아보기에서 '루칵스'란 인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루칵스? 눈치빠른 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 텐데, 헝가리 출신의 독일 비평가 'Lukacs(루카치)'를 그렇게 표기한 것. 가뜩이나 역자는 '들뢰즈'를 '들루즈'로 '가타리'를 '과타리'로 표기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성(singularity!)을 과시하고 있는데, '루칵스'란 표기를 보니까 그 독자성이 무지/오만과 먼 거리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겠다. 본문의 내용이야 어떠하든 이 정도면 책을 집어들었다가 다시 놓을 수밖에.

사실 고유명사를 제대로 옮겨주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느 정도 지명도 있는 저자/작가들의 이름을 잘못 표기해주는 것은, 번역의 수준과 무관하더라도, 역자의 '무지'를 에누리 없이 드러내주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그런 '사소한' 오역으로 인상을 구긴다면, 억울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만한 '지명도'의 저자/작가명, 혹은 작품명이라면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든지 쉽게 검색하고 교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러한 무지와 오만을 거드는 것은 불찰과 다소간의 게으름이다. 가령, 리처드 커니의 <이방인, 신, 괴물>(개마고원, 2004)처럼 나름대로 잘 읽히는 번역서에서 프랑스의 비평가 '블랑쇼(Maurice Blanchot)'를 '블랑코'(40쪽)로 읽어주게 되면, 역자가 적어도 문학비평쪽으론 감감하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것이므로 유쾌하지 않은 일이겠다(현대미학사에서 나온 다른 책의 경우지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를 '바데스'로 옮기는 것도 마찬가지의 무지를 폭로한다).

비교적 양호한 번역서인 콜브룩의 <질 들뢰즈>(태학사, 2004)에서도 고유명사 표기에 대한 무신경함은  역자의 체면을 깎아먹는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를 초지일관 '보들리야르'라고 옮겨준 것은 착각에 의한 거라고 쳐도,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을 <위대한 기대>로 옮기게 되면 무지와 함께 무교양이 한꺼번에 드러나버린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혹은 <지하로부터의 수기>로 번역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지하로부터 온 기록들(Notes from Underground)>이라고 영역본 제목을 직역하게 되면, '들뢰즈와 문학'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는 저자 콜브룩과 역자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조금만 검색해 보더라도 그런 정도는 충분히 '아는 체' 할 수는 있는 일인데, 역자가 고집을 부린 것은 (反들뢰즈적이게도) 문학을 너무 무시한 처사가 아닐까?

 

 

 

 

그런 경우에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나오는 단편 <고통스러운 경우(A painful Case)>가 한 부인이 기차에 치여죽은 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참혹한 사건>(김종건 역)이라고 옮겨져야 한다든가, 역자가 '레이몽 카버(Ramond Caver)'의 <짧은 컷들(Short Cuts)>이라고 옮긴 작품이 '레이몬드 카버'의 <숏컷>(집사재, 1996)으로 소설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로버트 알트만의 '걸작' <숏컷>이라는 사실은 '초과적인' 지식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쓴, 노벨상 수상작가 쿳시(J. M. Coetzee)의 <포(Foe)>(책세상, 2003)를 역자가 '코에체의 <적>'으로 옮긴 것도 이해할 만하지만, 좋은 번역서를 내놓고서 굳이 이런 류의 사소한 실수들로 '무식하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는지?

물론 실수라고 하기엔 좀 불성실한 대목도 있긴 한데, 카프카의 <단식 광대(The Hunger Artist>를 '굶주린 예술가'(74쪽)와 '배고픈 예술가'(227쪽)로 다르게 번역해놓고 찾아보기에서도 각기 다른 항목으로 설정한 것은 좀 희극적이다. 이 모두가 피할 수 있었던 오류들이라는 건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참고로, 콜브룩이 164쪽에 '돈 데릴로의 위대한 포스트모던 소설 <하얀 소음>'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작품은 얼마전에 국역본이 나왔다. 돈 드릴로, <화이트 노이즈>(창비))

하여간에 이런 '사소한'(하지만, 무시하면 창피한) 오류들은 거의 모든 번역서들에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동구권이나 동남아 등 우리에게 표기가 생소한 지역 언어들의 표기에서가 아니라면(이런 건 좀 어렵다. 가령, 흔히 '무카로프스키'로 불리는 체코의 미학이론가의 바른 표기는 '무카르좁스키'이며, '벨라 발라즈'로 표기되는 헝가리 출신의 영화이론가는 '벨라 발라슈'이다, 등등).  웬만큼은 상식과 관례에 따라 착오/오류를 피해볼 수 있다. 이젠 피해도 좋을 러시아어 인명표기의 오류를 몇 가지 지적하면서 잔소리 같은 이 글을 마친다(나의 결론은 굳이 쓸데없이/억울하게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자는 것이다. 무릇 아는 체하는 것은 지식인의 도리이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민음사, 2004)에 고골(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등장하는 몇 안되는 러시아인이면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러시아 철학자 '체스토프(L. Chestov)의 바른 표기는 '셰스토프'이다. 그의 책으론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니체: 비극의 철학>(현대사상사, 1987)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불어로 'Chestov'를 '체스토프'라고 읽는가? 그럴 법하지 않으므로, 아마도 '체스토프'는 '상상해본 러시아어'인 듯하다). 물론 <차이와 반복>은 훌륭한 번역서이므로 이런 옥의 티가 개정판에서는 교정되기를 기대한다.

독일의 러시아문학 애호가인 엘스베트 볼프하임 여사의 <마야코프스키와 에이젠슈테인>(아카넷, 2005)은 읽을 만한 저작이자 듀오그라피의 한 전범이다. 이 책을 최근에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역시나 고유명사 표기는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다. 좀 낯선 인명으로 1920년대 연극이론가이자 극작가로 '추츠학(Chuzhak)'이라고 옮겨진 이는 '추작'(니콜라이 추작)이라고 표기해야 옳다('추츠학'은 독어식으로 읽어준 것인가?).

올랜도 파이지스의 훌륭한 러시아 문화사 <나타샤 댄스>(이카루스미디어, 2005)도 양호한 번역서인데, 유감스럽게도 러시아사의 가장 '위대한' 황제 '표트르 대제'를 모두 영어식으로 '피터 대제(Peter the Great)'라고 표기했다(영어의 '알렉산더'는 전부 러시아어로 '알렉산드르'이다). '피터'란 표현이 입에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엔 '예카테리나 2세'도 '캐더린 2세'라고 표기해야 하며, '모스크바'도 '모스코우'라고 읽어줘야 일관적인 것이 된다. 이 또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거나 러시아 전공자의 교정을 거쳤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오류들이다...

05.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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