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조지 오웰은 아직도 "반공작가"인가?
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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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슨 농담이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랬다. 조지 오웰은 "반공작가"였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그리고 그가 별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1948년"에 미래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라 그냥 "가까운 미래"라는 뜻에서 제목으로 삼았다는 "1984년"이 정말 우리 눈앞에 당도했을 때만큼은, 그리고 이에 공명하여 박세리도 박찬호도 나오기 훨씬 전에 유일하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이었다던 백남준이 펼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란 전위예술이 공중파 방송을 타고 방방곡곡에 퍼져나갔을 때만큼은, 분명히 그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른바 "밀레니엄"이 오기 직전에 이른바 "Y2K"라고 해서 "디지털 대재앙"을 부르짖던 일종의 종말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던 것과 비슷했다. 막상 조지 오웰이 "예언"했다는 "1984년"이 현실로 다가왔다며 "큰일"이라고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였을 때의 상황이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1984년의 실체"가 다름아닌 "북한"이라고 했다. "빅 브라더"는 다름아닌 "김일성"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영국의 한 "소설가"는 얼떨결에 "북한 공산주의의 암울한 현실"을 무려 반세기 전에 정확하게 예언한 "점장이"로 찬사를 받았다. 조지 오웰이 한국에서만큼은 철두철미한 "반공작가"가 된 순간이었다.

2.

물론 우리가 단순히 <1984년>만 가지고 조지 오웰의 머리 위에 "반공작가"란 월계관을 씌워준 것은 아니었다. 그 한편에는 이보다 훨씬 경쾌한, 훨씬 짧고, 또 어떤 면에서는 훨씬 "이해하기 쉬운" 우화소설이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동물농장>이었다. 좌청룡 우백호도 이만 하면 보통이 아닌지라, 한편에는 암울한 미래의 현실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 다른 한편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심지어 그 "빨갱이"들을 "돼지"라고 지칭하면서까지!) "우화 소설"이 있었으니, 이만하면 그야말로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반공작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조지 오웰의 책은 필독서가 되었고, 더운 여름 지나가고 찬바람이 불어올 때면 너도나도 방학 숙제 베껴내기에 정신이 없을 무렵 읽어야 하는 과제물 도서가 되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며 돼지들의 비열함에 분통을 터트리고 ("나는 콩사탕이 시러염, 너나 쳐드셈!") 아드리안 모올의 말마따나 "복서가 팔려가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글썽글썽"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필독서"이며 "과제물 도서"이며 "추천도서"이다. 따라서 조지 오웰은 여전히 "반공작가"인 셈이다.

3.

그렇다면 조지 오웰의 운명도 무지막지 딱하다. 본인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인물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반세기 가까이 "반공작가"로, 즉 "사회주의를 향한 강력한 비판자"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일까? <동물농장>만 놓고 보았을 때, 이 작품은 분명히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 "소비에트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공산주의 혁명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오웰의 비판은 순수한 혁명, 어쩌면 정말 진보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었을 그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독재자와 전체주의를 겨냥하고 있다. 즉 오웰이 정말로 문제삼은 것은 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자칭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도 마찬가지고, 세상 어디서나, 제아무리 작은 조직 내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권력"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동물농장>을 "사회주의 비판"으로, 그리고 오웰을 "사회주의 비판자"로 보는 것은 무지막지하게 이 작품과 저자의 본뜻을 오해하는 셈이 된다. <1984년> 역시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 보건대 특별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겨냥하고 썼던 작품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 역시 "빅 브라더"로 상징되는 "권력," 그러니까 "독재"와 "공포정치"에 대한 우화라고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비록 스탈린 시대나 김일성 시대에 소련이나 북한에서 "공포정치"가 자행되었다고 치더라도, 이 역시 단순히 "반공"적인 성향의 작품으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오웰은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끝끝내 "반공작가"로 간주되고 있다.

4.

그나저나 뜬금없이 웬 <동물농장>을 다시 읽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책상 위에 이 책이 놓여있었다고나 할까. 이걸 읽기 전에 읽었던 다른 책에서 조지 오웰의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슨 책을 읽었나 하나하나 따져보니...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로버트 뉴턴 펙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던 날>이었다. 흠... 결국 "돼지" 이야기라서 이걸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었을까? 그러고보면 <동물농장>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은 결코 아니었다. 이미 서너 번은 읽은 것 같았다. 초딩 때 한 번, 중딩 때 한 번, 그리고 나중에 대딩 때도 한두 번. 그런데 솔직히 이번처럼 이 책을 "낄낄대며"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괜한 소리가 아니라 정말 "킥킥대며" 읽었다. 너무 웃겼다. 단순히 "재미있는" 차원이 아니라, 정말 "헉" 소리가 나올 만큼 웃겼다. 왜냐하면 여기 등장하는 돼지, 양, 까마귀, 말 등등의 모습에 익히 알고 있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겹쳐졌던 까닭이다. 마르크스, 스탈린, 트로츠키를 비롯해서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 휩쓸려 버린 특권층, 기회주의자, 프롤레타리아 등등 제각각의 모습이 그 동물들 하나하나에 투영되었던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전에 여러 번 <동물농장>을 읽었어도 한 번도 "킥킥거린" 적이 없었던 까닭은, 내가 미처 "역사"에, 그러니까 이 "우화"의 배경이 되는 "현실"에 대해 무지했던 까닭이었을까? 그렇다면 이 책은 결코 초딩이나 중딩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러시아의 역사, 그리고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역사에 대해 뭔가 지식을 갖고 있어야만, 돼지와 말과 양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상에 공감하며 "킥킥거릴"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작품은 단순한 "우화"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또한 헛다리 짚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지 오웰은 여전히 초중고딩의 "추천도서"이다. "반공작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5.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아이러니컬했던 점은, 분명히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인 이 책을 충분히 "다른 각도"로 해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80년대 내내 "필독서"이자 "교양서"로 자리잡았다는 현실이었다. 즉 <동물농장>의 이야기는 혁명과 스탈린 시대의 소련뿐만 아니라, 70년대와 80년대 군부독재 치하의 한국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특히 처음 약속과는 달리 걸핏하면 동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면서도, 툭하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존즈가 다시 돌아올 거요. 동무들은 존즈가 다시 돌아오는 걸 바라진 않겠지요?" 하면서 은근 협박하는 꼴이라니! 이거 솔직히 우리도 많이 들어 본 이야기 아닌가. 가령 전 국민이 모금해서 평화의 댐을 만들지 않으면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느니, 한미동맹이 깨지면 당장에 북한이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적화통일이 된다느니, 혹은 이른바 진보 세력을 자처하며 남한에서 암약하는 빨갱이들이 기백만이며 어쩌구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솔직히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이걸 "필독서"로 지정했던 양반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작품인 셈이다. 즉 "반체제적"이며 "반권위적"인 사고방식을 학생들에게 딱 길러주기 좋은 소설인 것이다. 과연 이들이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당시 문교부 (교육부가 아직 아니었다.) 에 뭔가 "불온한" 사상을 지닌 인사가 하나 있어서 이 "사회주의자"의 작품을 "반공소설"로 슬쩍 포장해서 끼워넣었던 걸까? 아는지 모르는지, 이 책은 여전히 "독후감 숙제"이다. 조지 오웰은 여전히 "반공작가"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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