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글쓰기 책 몇 권에 대한 이야기.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주문은 다 아는 얘기. 하지만 그것을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푸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냥 글을 잘 쓰는 법을 말하는 것은 (있다면 말이지만) 글쓰기 학원의 강사가 할 일이다. 단순한 비법의 나열이 아닌 `삶에서 글쓰기의 문제`를 다루어야 그 글을 쓰는 방법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가 닿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기사이거나 르포이거나 소설이거나 마찬가지.

문장 만들기의 방법적 나열을 원한다면 <탄탄한 문장력>도 나쁜 책이 아니다. 다이제스트 형식의 깔끔한 글쓰기 방법 책이다. 김정선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도 문장에 대한 깊인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소설과 같은 그 형식 또한 좋다. 두 책은 문장을 다루는 책이니 글쓰기를 시작하는 문제에서 벗어났다면 읽을 만한 괜찮은 책이다.

하지만 앞의 두 책과 조금 다른 의미로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은 나를 완전히 흔들어 놓은 책. e북으로 읽고 곁에 두고 두고두고 읽으려고 종이책도 구매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생각하는 인간 모두에게 글쓰기의 깊이를 담아 줄 수 있는 책. 글을 시작하는 시점과 글을 바라보는 시점을 준다. 뻗어나가는 독서를 위해서도 좋은 책이다. 인용구가 많아 밑줄도 많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역시 작가의 문제 의식과 글쓰기에 대한 고찰을 돕는 책이다.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는 소설가의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고전 소설을 즐겨읽는 사람에게는 테리 이글턴의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를 같이 읽기로 추천 할만 하다. 읽기와 쓰기의 문제를 한 번에 비교할 수 있다.

<대통령의 글쓰기>에는 작법에 관한 여러 가지 책이 소개되어 있으며 읽기에 부담이 없다. 글이 잘 정돈되어 있고 끊어서 포인트를 잘 잡았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에 대한 소소한 에피소드와 그들의 연설에 대한 이야기가 뭉클뭉클 다가오는 것은 아주 큰 덤이다.

다음 글쓰기에 관한 책은 무엇으로 할까? 나는 읽기만 하고 언제 쓰려나?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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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나무 산책기
고규홍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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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쓴 글을 옮겨본다.

<도시의 나무 산책기> 고규홍 | 마음산책 | 2015

나무를 좋아한다. 은사시나무, 물오리나무, 삼나무, 메타세쿼이아, 벚나무, 느티나무, 마로니에, 배롱나무, 이렇게 쓰다보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나에게 나무는 사람이나 시간과 연결되는 표지판이다.

2015년 봄에 구입한 이 책은 책꽂이에서 쉴 틈이 없다. 길 가다 모르는 나무를 만나면 집에가서 들춰보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러 야탑에 갔을 때 개천가에 노란 꽃을 피웠던 큰 나무 있던 나무 이름이 `모감주나무` 라는 것도 이 책을 보고 알았고, 우주와 자주 만나는 황매화도 이 책에서 이름을 배웠다. (책 표지 가운데 있는 것이 황매화다.) 얼마 전, `키 작은 것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것이 컴플렉스`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나도 그렇다고 무릎을 쳤다.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 물었을 때 `안양`이라고 하기 뭣해서 그냥 서울이라 대답한 경우도 많다. 보통 내게 고향을 묻는 사람은 `너는 시골에서 자랐느냐?`를 질문의 배경에 깔기 때문이다.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자연의 감수성을 배울 기회가 적었다.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피곤했을 텐데도 아빠는 주말이면 어딘가로 우리 자매를 데리고 놀러갔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매일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지는 않았으니,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과는 다르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우리도 매일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닌것은 아닐세`라고 말해도 나는 잘 모르겠다.) 꼭 시골의 생활이 좋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런 생활을 어렸을 때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싶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연과 가까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에게서 가끔 바다 냄새 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것이 은근히 부러울 때가 있다.

도시에서도 나무는 자주 본다. 근처 공원이나 도림천 앞이나 주택가의 몇몇 지점에도 나무가 자라니까. 학교나 출퇴근 길에서도 나무는 자주 만난다. 나무를 보면 그 나무와 관련된 사람들이 생각나고 나무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생각난다. 은사시나무는 대학원 다닐 때 연구실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고, 자작나무는 핀란드의 하늘을 생각나게 하고, 삼나무는 올 여름 일본을 생각나게 하고, 느티나무는 안산으로의 출근 길을, 벚나무는 시흥으로 부터의 퇴근길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와 사람, 나무와 시간을 연결하는데 이 책은 때로는 식물도감처럼, 떄로는 나무 여행기처럼 읽힌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나무 사진도 꽤 좋다.

우주와 세차하러 갔다가 세차장 앞에서 만난 배롱나무에는 아직도 붉은 꽃이 피어있다. 느티나무가 배경이라 색이 예쁘다. 학교의 흰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들도 아직 꽃이 모두 떨어뜨리지 않았다. 배롱나무 꽃이 전부 질 때 즈음, 진짜 가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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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2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아닌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을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특히 생소한 지명의 지역일 경우에는 그곳이 시골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

해의눈물 2016-06-2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것도 서울 사람의 잘못된 편견 중 하나죠 !
 
[eBook] 체체파리의 비법 팁트리 주니어 걸작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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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을 읽었다. SF와 페미니즘의 결합이라. 다운 받으면서 '뭐 별거 있겠나' 싶었는데, 아주 좋았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눈여겨 보다가 자꾸 시기를 놓친 것이 후회된다. 단편집인데, 작금의 상황(여성혐오나 그 외의)에 비추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 환경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 할 수 있는 이야기, 여자들만 살아남은 지구에 대해 상상하도록 만드는 이야기, 인터스텔라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등. 놀라웠다. 이 이야기들이 쓰인 시대를 생각해도. 최근 SF를 많이 봤는데 단연 돋보인다. 소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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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삶을 먹다 - 대지의 청지기 웬델 베리의 먹거리, 농사, 땅에 대한 성찰
웬델 베리 지음, 이한중 옮김 / 낮은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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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모든 글이 2002년 이전에 쓰여 졌다는 것이다. 2016년인 지금 이 글에 제시되어 있는 나쁜 상황은 더 나빠져 있을 것이다.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 악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나와 같은 ‘도시아이’들이 교사가 될 것이고, 부모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생태적 전환은 점점 우리에게서 더 멀어지고 있다. 그 속도가 가속되고 있다는 느낌마저도 든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글을 보며 얼마 전 보았던 ‘새끼 수소를 가두어 기르는 통’을 떠올렸다. 요즘 광고에도 이야기하는 ‘행복한 소의 행복한 우유’도 떠올렸다. 동물을 기르는 윤리적인 방식에 대해 읽어보며 그들을 대량으로 키우거나 소량으로 키우거나 그냥 불쌍하지 않게 죽여야 내 몸에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만 했다. 공장식 축산에서 벌어지는 오염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의 시대에 살면서도 이런 대규모 축산으로 무엇이 오염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항생제 맞은 고기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하면서도, No impact man에서 항생제를 쓰지 않는 소규모 가족 농장에서 만들어진 고기를 사기 위해 노력했던 기자의 모습을 나와는 연결 짓지 못했다. 고기와 소시지, 햄 등의 가공육도 좋아하는 나는 한 번도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무지를 자랑한 셈이다. 이 책이 나를 압박한다는 느낌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과 함께 커다란 트랙터와 콤바인을 보면서도 대규모 농장이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으며 (104) 이 때문에 토양이 피폐해지도 침식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무 땅에나 아무거나 심으면 자라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무지다. 아들은 자동으로 나무를 베고 잔가지를 쳐내는 기계인 ‘펠러번처’도 좋아하는데, 이 동영상을 볼 때마다 ‘저렇게 진행하는 대규모 벌목이 숲을 파괴하는 나쁜 행위’라고 말했고, 속으로는 ‘그럼 목재는 어디서 얻어?’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쉽게 답해 볼 생각은 못했다. 그 외의 방식에 대해서는 듣거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숲을 가꾸면서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베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냥 듣기 좋게 가벼운 말로만 할 수 있으면서 내 양심의 가책을 감출 수 있는 가벼운 환경보호, 아니 자기보호다. 말을 이용해 살아있는 나무를 해치지 않으며 적절한 벌목을 해 오는 지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이 또 무지다. 무지의 연속이다. 나는 이제 쉽게 ‘환경보호’를 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이 배우고 생각한 뒤 환경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대체로 동물공장 옹호론자는 이런 시설이 동물만을 집중적으로 가둔다고 여기거나 남들도 그렇게 여기길 바란다. 허나 그렇지 않다. 동물공장은 동물의 배설물도 한 곳에 집중시킨다. 동물의 배설물은 적절히 분산되면 비옥함의 훌륭한 원천이 되지만, 집중되면 기것해야 쓰레기고 최악의 경우 독이 된다. 41

공장식 농장은 가족농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지역의 자연과 사회가 가진 경제적 가치를 쭉 빨아올려 멀리 있는 은행계좌로 빼돌리는 장치와도 같다. 45

가족농이 망해가는 것은 그것이 속한 삶의 양식이 망해 가고 있기 때문이며, 그 주된 이유는 일반인과 지도자를 가릴 것이 없이 우리 모두가 다음의 세 가지 가정을 토대로 하는 산업적 가치를 받아들인 데 있다. 첫째는 가격이 곧 가치라는 가정이다. 이를테면 한 농장의 가치는 그것이 얼마에 팔리느냐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장소도 가격도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따르면 농사를 짓는 것과 농장을 파는 것은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는 일이다. 둘째는 모든 관계가 기계적이라는 가정이다. 이를테면 농장은 공장처럼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장과 공장은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인간이 활동하는 충분하고 결정적인 동기는 경쟁성에 있다는 가정이다. 이를 테면 지역공동체를 지원이나 시장처럼 다루어도 좋다는 것이다. 지역공동체와 자원이나 시장이 아무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71-72

관직이 농업 관료직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몹시 가고 싶은 사람들과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농민을 섬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농사를 그만두고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 농민으로 살기는 본래 꽤 어렵지만, 대학교수나 직업이 있는 전문가로 산다는 건 본래 꽤 쉽다. 가족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사는 농민에게는 정년 보장도, 업무시간도, 자유로운 주말도, 유급휴가도, 안식년도, 퇴직금도 없다. 직업적인 위신이 있지도 않다. 76

가축의 품종이 매우 다양한 것은 기르는 식물이 다양한 것과 더불어, 지역별로 매우 다양한 요구에 적절히 반응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어휘력과도 같다. 87

농업이 생물에서 비롯되는 태양에너지에 기대다가 기계에서 비롯되는 화석연료 에너지에 의존하는 쪽으로 변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여러 종류의 낭비를 자초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태양에너지의 낭비다. 동력뿐만 아니라 성장력으로서의 에너지도 낭비했다. 땅의 소유 단위는 점점 커지고 농민의 수는 줄어들면서 더 많은 농토가 피복작물(cover crop)없이 남겨지게 되었다. 이는 가을과 초봄에 농토에 쏟아지는 햇빛이 피복작물의 잎에 붙들려 토양과 사람에게 유익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날수가 많아진다는 듯이다. 둘째는 인간의 에너지와 능력의 낭비다. ... 지금 우리는 뱃살에다 유용한 잠재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저장해 두고 있는가? 그런 에너지가 의료비만이 아니라 다이어트 약이나 운동기계에 쓰이는 비용의 형태로 우리에게 요구할 대가는 또 얼마인가? 104

셋째는 동물 에너지의 낭비다. 살아있는 말의 힘을 버릴 뿐만 아니라, 감금식 사육 대문에도 낭비를 한다는 뜻이다. 알아서 풀을 뜯어먹고 잘 살도록 되어 있는 동물에게 먹이를 공급하느라 우리는 왜 화석연료 에너지를 쓰는가? 넷째는 토양과 토양 건강의 낭비다. ... 그토록 넓은 땅을 수확하자니 가을에 피복작물 심을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오와처럼 ‘평평한’ 주들에서도 재앙적인 토양 침식이 일어나고 있다. 106

나는 자연보존론자이면서 농부이며, 야생지 옹호론자이면서 농본론자다. 108

보존론자도 먹는다는 사실이다. 먹거리에 관심이 있으면서 먹거리 생산에 관심이 없다는 건 명백한 부조리다. 도시에 사는 보존론자는 자신이 농민이 아니므로 먹거리 생산에 무관심해도 좋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 쉽게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지는 않다. 그들 모두 대리로, 즉 남을 시켜서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111

아미시 농장은 농사에는 땅의 생산력에도 농부의 능력에도 맞는 적정 규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아울러 농업 문제의 적절한 해결은 확장이 아니라 관리의 다양성, 질서, 책임 있는 유지, 건실한 품성, 투자 및 경비에 대한 분별 있는 제한에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153

9년 전, 찰리 피셔는 제프 그린과 함께 오하이오 북동부에 있는 앤도버라는 마을 부근에 ‘밸리 베니어’라는 회사를 차렸다. 벌목도 하고 제재소도 겸하는 회사였다. 찰리는 입목을 사들이고 벨 것들을 표시하고 벌목꾼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제프는 제재소를 운영하고 목재를 내다 파는 일을 한다. 175

미국의 농업과 농촌생활이 몰락해 가고 있다는 내용의 강연을 마치고 나면, 청중 가운데 누군가가 "도시 사람들은 무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경우 말이다. "책임있게 먹어야 합니다." 나는 대개 그렇게 대답했다. ... 먼저 나는 먹는다는 게 농업적인 행위라는 주장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먹는다는 건 씨를 뿌리고 싹이 트는 것으로 시작되는 먹거리 경제의 한 해 드라마를 마무리 하는 일이다. 하지만 먹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사실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먹거리를 농산물이라 생각할지는 몰라도, 자신을 ‘소비자’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그 이상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수동적인 소비자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298

첫째, 먹거리 생산에 가능한 한 참여한다. 뜰이 있거나 베란다나 볕드는 창가에 화분이라도 있다면 먹거리를 기른다. ... 둘째, 음식을 직접 조리한다. 요리를 직접 한다는 건 자신의 내면과 생활에서 부엌살림과 알뜰살림의 솜씨를 되살리는 일이다. ... 셋째, 사야 할 먹거리의 원산지를 안 다음, 집에서 가장 가까이서 생산된 먹거리를 산다. ... 넷째, 가능한 한 지역의 농부나 텃밭 주인이나 과수원 주인과 직거래를 한다. ... 다섯째, 자기 보호의 차원에서 산업화된 먹거리 생산의 경제와 기술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배운다. ... 여섯째, 가장 모범적인 농사나 텃밭 가꾸기와 관련된 것들을 배운다. 일곱째, 먹거리 종이 생기고 자라는 과정에 대해, 가능하면 직접적인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운다.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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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안드레아 - 열여덟 살 사람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다
룽잉타이.안드레아 지음, 강영희 옮김 / 양철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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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에 강남 교보문고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아들과의 연애를 끝내기로 했다>를 보았다. 간결한 흰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진 표지에 끌려 잠시 넘겨 보려 들었는데, 글재주 있는 저자의 입담에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뒤 정작 책은 사지 않고 나왔다.


읽는 내내 너무 펑펑 울어서 눈이 벌개진 눈으로 친구와 곱창을 구워 소주를 마셨다. 친구에게는 무슨 책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아직 미혼인 친구가 이해한다며 토닥여 줄 리 없었으니. 하지만 그 날 그 책을 읽던 자리에서 만큼 스스로를 ‘아들을 둔 아줌마'로 포지셔닝 한 날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껏 '육아의 어려움을 네가 아느냐?'를 주제로 떠들었던 것 같다.


여튼 그 책은 아들을 키우면서 만날 수 있는 소소한, 혹은 커다란 여러가지 에피소드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주로 '나는 아들에게 이런 거 해 줬음’ 또는 '나는 아들한테 이거 못해줘서 좀 미안함'의 내용이었다. 애들 좀 키워본 엄마들이 모여앉아 나누었을만한 모험담. 거기에 우리나라 아줌마 정서에 꼭 맞는 '남편은 바빠서 육아 거의 안 함'과 '시어머니 모시고 아들 키웠음’ 두 가지가 더해져 즐거운(?) 에피소드를 거듭 생산하니 울다가 웃다가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 글 속에서 아들은 그냥 '아들'이었다. 스무 살이 넘어 자신의 길을 찾아갔지만, 아들에 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입맛이 특이해서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을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두 가지 뿐이었다. 아들 하나 키우느라 개고생한 엄마가 있었지만, 아들은 없었다. 울다 웃다 재미있게 읽어놓고 책을 사지 않고 나온 이유다. (결국 다른 이유 때문에 그 책은 e북으로 소유했다.)


맞다. <사랑하는 안드레아>에서는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책에서 엄마 룽잉타이 신중하고 사려깊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아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재미있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새로운 사람을 대하듯 아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글을 읽는 내내 나도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만날 수 있도록 자신에게서 아들을 잘 분리시킨 엄마를 만날 수 있고, 고요한 밤 먼 나라에 있는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학자로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 엄마에게 처음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하는 아들을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엄마 안에 수 많은 엄마와 여자가 있었고, 한 사람의 아들 안에 수 많은 아들, 딸과 독립적인 남성, 여성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 다르다. 누군가 교사는 일생동안 자신의 학창 시절을 반추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학창시절 뿐만 아니라 온전한 나의 역사를 아이를 통해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한 사람의 인생을 옆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 힘든 일을 우리 엄마와 아빠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해왔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과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일상적인 대화가 막막 해질 때 마다 작잖은 절망과 마주친다. 그 절망에 이 책이 작은 다독임을 준다. 아직 멀었다고. 아들과 이렇게 대화할 수 있을 때 그때가 나의 성장의 마지막 부분의 시작이고, 아들의 새로운 성장의 시작이라고.


물론 이 글을 남편이 읽으면 너는 책이나 읽지 말고 애한테 말이나 잘 하고 TV 좀 그만 보여주라고 하겠지. 네네, 그래서 오늘은 우주와 읽을 책을 세 권 샀다. 어린 아들을 둔 지인들에게 <아들과의 연애..>와 <사랑하는 안드레아> 두 권의 책을 모두 선물 해야겠다.

정말로 이 세상에 `저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정말로 이 사회에 제가 지난 번 편지에 썼던 것처럼 우리가 `혁명`을 일으킬 만한 불의와 불공평은 이제 없는 걸까요? 우리가 행동할 만한 어떤 이상과 가치는 이제 없는 걸까요? 전 있다고 생각해요. 역시 있어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p71

엄마는 성인은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야. 도덕의 취사선택은 개인의 일이야. 논리가 끼어들 필요는 없어. p76

안드레아, 엄마는 네 편지에서 불안을 읽었어. 너는 네가 누리는 안락함이 불편했던 거야. 엄마는 네가 네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도덕적으로 불안을 느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네가 일곱살 때였을 거야. 우리는 베이징에서 여름을 나고 이썼지. 장사치들이 작은 대바구니에 귀뚜라미를 넣어 팔고 있었어. 사람들은 영원의 시간을 노래하는 듯한 귀뚜라미 소리를 좋아했지. 엄마는 너와 필립에게 한 마리씩을 사줘쏙, 우리 세 사람은 그걸 목에 걸고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의 골목골목을 쏘다녔어.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울려퍼졌지. 넓은 잔디밭에 도착하자 네가 갑자기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대바구니 안의 귀뚜라미를 풀어줬어. 그러면서 필립에게도 귀뚜라미를 풀어주라며 고집을 부리는 거야. 세 살짜리 필립이 귀뚜라미를 부둥켜안고 어떻게든 풀어주지 않으려 하자 넌 옆에서 애걸을 했어. "놔주, 놔 주자. 귀뚜라미는 자유를 좋아해. 녀석을 가두지 말자. 너무 가엽잖아…" 생각해보니, 엄마는 그떄, 네 성격과 기질이 어떤지를 알아차렸던것 같아. p79

민주주의사회에서 이런 결정의 순간은 수시로 찾아와. 단지 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p80

사랑하는 안드레아, 만약 누군가 손에 고무총을 들고 높은 곳에 서서 너와 대치하고 있다면 너는 네가 서 있는 낮은 곳에서 반격할래, 아니면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간 뒤에 생각해볼래?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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