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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삶을 먹다 - 대지의 청지기 웬델 베리의 먹거리, 농사, 땅에 대한 성찰
웬델 베리 지음, 이한중 옮김 / 낮은산 / 2011년 10월
평점 :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모든 글이 2002년 이전에 쓰여 졌다는 것이다. 2016년인 지금 이 글에 제시되어 있는 나쁜 상황은 더 나빠져 있을 것이다.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 악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나와 같은 ‘도시아이’들이 교사가 될 것이고, 부모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생태적 전환은 점점 우리에게서 더 멀어지고 있다. 그 속도가 가속되고 있다는 느낌마저도 든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글을 보며 얼마 전 보았던 ‘새끼 수소를 가두어 기르는 통’을 떠올렸다. 요즘 광고에도 이야기하는 ‘행복한 소의 행복한 우유’도 떠올렸다. 동물을 기르는 윤리적인 방식에 대해 읽어보며 그들을 대량으로 키우거나 소량으로 키우거나 그냥 불쌍하지 않게 죽여야 내 몸에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만 했다. 공장식 축산에서 벌어지는 오염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의 시대에 살면서도 이런 대규모 축산으로 무엇이 오염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항생제 맞은 고기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하면서도, No impact man에서 항생제를 쓰지 않는 소규모 가족 농장에서 만들어진 고기를 사기 위해 노력했던 기자의 모습을 나와는 연결 짓지 못했다. 고기와 소시지, 햄 등의 가공육도 좋아하는 나는 한 번도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무지를 자랑한 셈이다. 이 책이 나를 압박한다는 느낌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과 함께 커다란 트랙터와 콤바인을 보면서도 대규모 농장이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으며 (104) 이 때문에 토양이 피폐해지도 침식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무 땅에나 아무거나 심으면 자라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무지다. 아들은 자동으로 나무를 베고 잔가지를 쳐내는 기계인 ‘펠러번처’도 좋아하는데, 이 동영상을 볼 때마다 ‘저렇게 진행하는 대규모 벌목이 숲을 파괴하는 나쁜 행위’라고 말했고, 속으로는 ‘그럼 목재는 어디서 얻어?’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쉽게 답해 볼 생각은 못했다. 그 외의 방식에 대해서는 듣거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숲을 가꾸면서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베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냥 듣기 좋게 가벼운 말로만 할 수 있으면서 내 양심의 가책을 감출 수 있는 가벼운 환경보호, 아니 자기보호다. 말을 이용해 살아있는 나무를 해치지 않으며 적절한 벌목을 해 오는 지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이 또 무지다. 무지의 연속이다. 나는 이제 쉽게 ‘환경보호’를 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이 배우고 생각한 뒤 환경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대체로 동물공장 옹호론자는 이런 시설이 동물만을 집중적으로 가둔다고 여기거나 남들도 그렇게 여기길 바란다. 허나 그렇지 않다. 동물공장은 동물의 배설물도 한 곳에 집중시킨다. 동물의 배설물은 적절히 분산되면 비옥함의 훌륭한 원천이 되지만, 집중되면 기것해야 쓰레기고 최악의 경우 독이 된다. 41
공장식 농장은 가족농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지역의 자연과 사회가 가진 경제적 가치를 쭉 빨아올려 멀리 있는 은행계좌로 빼돌리는 장치와도 같다. 45
가족농이 망해가는 것은 그것이 속한 삶의 양식이 망해 가고 있기 때문이며, 그 주된 이유는 일반인과 지도자를 가릴 것이 없이 우리 모두가 다음의 세 가지 가정을 토대로 하는 산업적 가치를 받아들인 데 있다. 첫째는 가격이 곧 가치라는 가정이다. 이를테면 한 농장의 가치는 그것이 얼마에 팔리느냐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장소도 가격도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따르면 농사를 짓는 것과 농장을 파는 것은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는 일이다. 둘째는 모든 관계가 기계적이라는 가정이다. 이를테면 농장은 공장처럼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장과 공장은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인간이 활동하는 충분하고 결정적인 동기는 경쟁성에 있다는 가정이다. 이를 테면 지역공동체를 지원이나 시장처럼 다루어도 좋다는 것이다. 지역공동체와 자원이나 시장이 아무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71-72
관직이 농업 관료직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몹시 가고 싶은 사람들과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농민을 섬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농사를 그만두고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 농민으로 살기는 본래 꽤 어렵지만, 대학교수나 직업이 있는 전문가로 산다는 건 본래 꽤 쉽다. 가족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사는 농민에게는 정년 보장도, 업무시간도, 자유로운 주말도, 유급휴가도, 안식년도, 퇴직금도 없다. 직업적인 위신이 있지도 않다. 76
가축의 품종이 매우 다양한 것은 기르는 식물이 다양한 것과 더불어, 지역별로 매우 다양한 요구에 적절히 반응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어휘력과도 같다. 87
농업이 생물에서 비롯되는 태양에너지에 기대다가 기계에서 비롯되는 화석연료 에너지에 의존하는 쪽으로 변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여러 종류의 낭비를 자초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태양에너지의 낭비다. 동력뿐만 아니라 성장력으로서의 에너지도 낭비했다. 땅의 소유 단위는 점점 커지고 농민의 수는 줄어들면서 더 많은 농토가 피복작물(cover crop)없이 남겨지게 되었다. 이는 가을과 초봄에 농토에 쏟아지는 햇빛이 피복작물의 잎에 붙들려 토양과 사람에게 유익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날수가 많아진다는 듯이다. 둘째는 인간의 에너지와 능력의 낭비다. ... 지금 우리는 뱃살에다 유용한 잠재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저장해 두고 있는가? 그런 에너지가 의료비만이 아니라 다이어트 약이나 운동기계에 쓰이는 비용의 형태로 우리에게 요구할 대가는 또 얼마인가? 104
셋째는 동물 에너지의 낭비다. 살아있는 말의 힘을 버릴 뿐만 아니라, 감금식 사육 대문에도 낭비를 한다는 뜻이다. 알아서 풀을 뜯어먹고 잘 살도록 되어 있는 동물에게 먹이를 공급하느라 우리는 왜 화석연료 에너지를 쓰는가? 넷째는 토양과 토양 건강의 낭비다. ... 그토록 넓은 땅을 수확하자니 가을에 피복작물 심을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오와처럼 ‘평평한’ 주들에서도 재앙적인 토양 침식이 일어나고 있다. 106
나는 자연보존론자이면서 농부이며, 야생지 옹호론자이면서 농본론자다. 108
보존론자도 먹는다는 사실이다. 먹거리에 관심이 있으면서 먹거리 생산에 관심이 없다는 건 명백한 부조리다. 도시에 사는 보존론자는 자신이 농민이 아니므로 먹거리 생산에 무관심해도 좋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 쉽게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지는 않다. 그들 모두 대리로, 즉 남을 시켜서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111
아미시 농장은 농사에는 땅의 생산력에도 농부의 능력에도 맞는 적정 규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아울러 농업 문제의 적절한 해결은 확장이 아니라 관리의 다양성, 질서, 책임 있는 유지, 건실한 품성, 투자 및 경비에 대한 분별 있는 제한에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153
9년 전, 찰리 피셔는 제프 그린과 함께 오하이오 북동부에 있는 앤도버라는 마을 부근에 ‘밸리 베니어’라는 회사를 차렸다. 벌목도 하고 제재소도 겸하는 회사였다. 찰리는 입목을 사들이고 벨 것들을 표시하고 벌목꾼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제프는 제재소를 운영하고 목재를 내다 파는 일을 한다. 175
미국의 농업과 농촌생활이 몰락해 가고 있다는 내용의 강연을 마치고 나면, 청중 가운데 누군가가 "도시 사람들은 무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경우 말이다. "책임있게 먹어야 합니다." 나는 대개 그렇게 대답했다. ... 먼저 나는 먹는다는 게 농업적인 행위라는 주장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먹는다는 건 씨를 뿌리고 싹이 트는 것으로 시작되는 먹거리 경제의 한 해 드라마를 마무리 하는 일이다. 하지만 먹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사실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먹거리를 농산물이라 생각할지는 몰라도, 자신을 ‘소비자’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그 이상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수동적인 소비자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298
첫째, 먹거리 생산에 가능한 한 참여한다. 뜰이 있거나 베란다나 볕드는 창가에 화분이라도 있다면 먹거리를 기른다. ... 둘째, 음식을 직접 조리한다. 요리를 직접 한다는 건 자신의 내면과 생활에서 부엌살림과 알뜰살림의 솜씨를 되살리는 일이다. ... 셋째, 사야 할 먹거리의 원산지를 안 다음, 집에서 가장 가까이서 생산된 먹거리를 산다. ... 넷째, 가능한 한 지역의 농부나 텃밭 주인이나 과수원 주인과 직거래를 한다. ... 다섯째, 자기 보호의 차원에서 산업화된 먹거리 생산의 경제와 기술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배운다. ... 여섯째, 가장 모범적인 농사나 텃밭 가꾸기와 관련된 것들을 배운다. 일곱째, 먹거리 종이 생기고 자라는 과정에 대해, 가능하면 직접적인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운다.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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