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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나무 산책기
고규홍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작년에 쓴 글을 옮겨본다.
<도시의 나무 산책기> 고규홍 | 마음산책 | 2015
나무를 좋아한다. 은사시나무, 물오리나무, 삼나무, 메타세쿼이아, 벚나무, 느티나무, 마로니에, 배롱나무, 이렇게 쓰다보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나에게 나무는 사람이나 시간과 연결되는 표지판이다.
2015년 봄에 구입한 이 책은 책꽂이에서 쉴 틈이 없다. 길 가다 모르는 나무를 만나면 집에가서 들춰보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러 야탑에 갔을 때 개천가에 노란 꽃을 피웠던 큰 나무 있던 나무 이름이 `모감주나무` 라는 것도 이 책을 보고 알았고, 우주와 자주 만나는 황매화도 이 책에서 이름을 배웠다. (책 표지 가운데 있는 것이 황매화다.) 얼마 전, `키 작은 것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것이 컴플렉스`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나도 그렇다고 무릎을 쳤다.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 물었을 때 `안양`이라고 하기 뭣해서 그냥 서울이라 대답한 경우도 많다. 보통 내게 고향을 묻는 사람은 `너는 시골에서 자랐느냐?`를 질문의 배경에 깔기 때문이다.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자연의 감수성을 배울 기회가 적었다.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피곤했을 텐데도 아빠는 주말이면 어딘가로 우리 자매를 데리고 놀러갔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매일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지는 않았으니,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과는 다르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우리도 매일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닌것은 아닐세`라고 말해도 나는 잘 모르겠다.) 꼭 시골의 생활이 좋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런 생활을 어렸을 때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싶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연과 가까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에게서 가끔 바다 냄새 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것이 은근히 부러울 때가 있다.
도시에서도 나무는 자주 본다. 근처 공원이나 도림천 앞이나 주택가의 몇몇 지점에도 나무가 자라니까. 학교나 출퇴근 길에서도 나무는 자주 만난다. 나무를 보면 그 나무와 관련된 사람들이 생각나고 나무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생각난다. 은사시나무는 대학원 다닐 때 연구실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고, 자작나무는 핀란드의 하늘을 생각나게 하고, 삼나무는 올 여름 일본을 생각나게 하고, 느티나무는 안산으로의 출근 길을, 벚나무는 시흥으로 부터의 퇴근길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와 사람, 나무와 시간을 연결하는데 이 책은 때로는 식물도감처럼, 떄로는 나무 여행기처럼 읽힌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나무 사진도 꽤 좋다.
우주와 세차하러 갔다가 세차장 앞에서 만난 배롱나무에는 아직도 붉은 꽃이 피어있다. 느티나무가 배경이라 색이 예쁘다. 학교의 흰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들도 아직 꽃이 모두 떨어뜨리지 않았다. 배롱나무 꽃이 전부 질 때 즈음, 진짜 가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