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페미니즘 리부트 -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
손희정 지음 / 나무연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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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을 읽다보면 내용상 대략 두 부류로 나뉜다는 느낌이다. 역사와 사회 맥락 안에서 페미니즘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쪽과 개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맥락 안에서 경험으로서의 페미니즘을 드러내는 쪽이다. 읽는 쪽에서야 이쪽도 읽고 저쪽도 읽다보니 잘 몰랐는데, 그 둘이 겹쳐져 큰 시야를 제공하는 책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다 들었다. 이 책은 따지자면 분석적인 페미니즘 책에 속하는데, 그 분석이 세대의 경험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뭔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책이다. 분명히 깊이 있는 분석인데 대상이 비정상회담, 김숙, 트윗터의 이야기다. 정말이지 가깝고 좋다. 가까운데 가볍지 않다. 이는 손선생님의 글이 가진 매력이다. 페북에서 만날 땐 몰랐는데 책으로 만나니 학구적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물론, 일반적인 대중문화 속에서의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 시대적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이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차근차근 따져볼 수 있었다. 계속 좋은 글을 써주시면, 하는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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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2018-01-31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웃님 덕에 좋은 책을 알게됐네요. 감사합니다
 
[eBook] 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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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성혐오에 관한 비판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자기검열과 눈치에서 벗어나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바로잡고자 하는 이야기가 쉽게 보인다. 다행이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중심에 서고,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드러난다. 구조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개인의 차원에서 벗어나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찾아보려는 글도 늘어났다. 다행이다.

이에 더해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의 혐오 문제를 다룬 좋은 글도 많아졌다. 특히 이 책은 정부 차원의 움직임에 역할을 했던 분의 글이라 더 좋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혐오의 문제를 다루면서 혐오와 증오범죄,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직도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의 인권은 존중한다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메갈리아를 남혐집단으로 몰며 여혐도 안되고 남혐도 안된다는 양비론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대답할 말이 궁하다면 참고하면 좋겠다. (사실 답이 궁해서라기 보다는 더이상 답해봤자 싸움이 될까 참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 심란하지만..)

책 전체가 한 가지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읽기 좋다. 또한 관련 문헌 소개가 간단한 글이 아니라 비교분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책을 가지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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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인터뷰집
안은별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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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우리 반에도 몇 명의 아이들이 경주행 수학여행에 참석하지 않았다. 네다섯 정도였나, 더 많았나?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친구들이 안가니까 나도 따라서 안갔다. 그것도 말을 못해서 질질 끌다가 배가 아프네 뭐하네 하면서 엄마와 담임 선생님을 당황시키며 출발 당일 아침에 불참했다. 별 일 없었다. 그냥 도서관으로 등교했다. 그 이후에도 공무원 아버지와 전업주부 엄마를 둔, 외환위기에도 잘 살아남은 무난한 집 아이였다. 그게 피부에 와닿지 않을 나이였고, 직접적인 피해자가 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므로 그걸 금세 잊었다. 친척들 사이에 이야기가 많았지만, 우리에게 자세히 이야기 해주지는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것이 2000년이고, 그게 큰 충격이어서 그랬나, 정말 그때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인터뷰어가 제시하는 어떤 카테고리에 딱 떨어지게 들어맞지는 않는 그냥 잘 살아남은 사람이지만, 인터뷰를 읽으며 내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무엇이지?’ 생각했다.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시간을 겪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길을 가는지, 참 당연한 명제 앞에 서있는데 그게 또 교묘하게 꼬이고 꼬여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IMF키즈가 제목이지만, 도식, 사교육, 가족과 결혼, 일, 젠더, SNS가 키워드다. 한계도 있지만, 그것을 잘 성찰한 서문이 좋다. 충분히 공감한 뒤에 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즐겨찾기에 살포시 넣어두고 김괜저씨의 블로그에서 글을 읽던 재미, 홍스시 언니와 만났던 서울대입구의 그 밥집이 생각난다. 그때 혼자 가면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하고 인사해 주셨는데.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분이 그분이라는 확신에 확신을 거듭한다. 괜히 또 만나보고 싶어서 검색을 했다. 인스타에 그분이 설대입구에서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관련 계정이 있다고 하던데, 인스타 실력이 짧아 검색이 잘 안된다. 아시는 분 저좀 알려주세요. 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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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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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용산에 있는 서점을 한 바퀴 돌았다. 베스트 셀러 자리에 꽂힌 《총.균.쇠》를 들춰보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았으니, 아마 그때 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잠시 맡겨두고 나온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을 것이다. 장면보다는 그 색깔에 매료되었고, 마지막에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으로 휘청휘청 걸어나왔다. 그 뒤로도 한참 진실공방을 벌이며, 원작 소설을 읽도록 만든 그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소설 《파이 이야기》에 관한 나의 기억이다. 오랜만에 얀 마텔의 소설을 읽게 되어 기쁘다.

— 이하에 소설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대체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 소설 <집을 잃다>의 주인공은 뒤로 걷는다. 뛸 때와 자동차를 탈 때를 제외하면 계속 뒤로 걷는다. 어쩔 수 없이 속도가 필요할 때는 앞으로,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느린 시간은 뒤로 걷는다. 그는 뒤로 걸으면서 마치 시간을 뒤로 돌리는 것 같다.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으로, 자꾸만 자꾸만 돌아가고 싶은 것처럼.

시간의 앞뒤 개념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보통은 미래가 우리의 앞에 놓여 있고,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보이지 않는 미래는 뒤에 있고, 앞에 있는 것이 과거가 아닐까. 과거는 보이고, 미래로 나아갈 수록 과거의 디테일은 사라지고 시야는 넓어진다. 과거에 대해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과거가 현재의 자신과 멀어지며 점점 보이지도 떠오르지도 않게 된다. 미래는 뒤에 있으므로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과 마주치게 될 지는 모른다. 오로지 내가 지나온 방향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뿐이다. <집을 잃다>의 뒤로 걷는 주인공을 보며,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의지 과거에 갇힌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보았다. 그는 아들과 아내와 아버지를 일주일 동안 잃는다. 그리고 자신이 의지하던 신부의 일기에 의지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간다. 마지막에 그는 두 번째 소설인 <집으로>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남편의 아이를 차로 치어 죽이고 만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세상과 신을 저주하려던 그는, 또다른 이들에게 구원과도 같았던 아이를 죽이고 세상에서 도망친다. 모두에게 구원은 없다.

인간에게서 얻을 수 없는 구원을 결국 마지막 소설의 <집>에 등장하는 침팬지에서 얻는다. 그는 동물과 함께 자연을 걷고, 그와 함께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파이 이야기》와 《포르투갈의 높은 산》 두 작품 모두에서 자연과 동물이 등장하고, 이는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구원의 중심이 된다. 특히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등장하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네 사람의 주인공들이 찾아가는 구원과 안식의 여정에 자연의 길이나 동물이 등장한다. 그들을 어루만지는 작가의 부드러우면서 단호한 손길은 따스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소설을 끝맺는 타이밍이 기가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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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에게 매달린 것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심상정 후보에게 보인 그의 애정 때문이었다. 그의 ‘망국 선언문‘과 ‘전태일들‘ 때문에 그를, 그리고 그의 글을 읽었다 생각했는데 정작 긴 소설을 읽은 적은 없었다. <소수의견>과 <디 마이너스>를 읽었다. 처음에는 문장이 경쾌하다거나 깔끔하다거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읽는 중간에 모두 잊었다.

문장의 힘으로 밀어내는 소설이 아니다. 끝없는 생각과 취재 속에 마음을 찌르는 것이 있다. 그의 글에는 현실의 사건과 그 사건을 살아낸 사람이 있다.

‘형사 전문 변호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개연성이다. 사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소설가다. 소설가가 하는 일은 특정한 기회에 특정한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변호사는 추정된 상황에서 평번한 사람이 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일을 보여 줄 뿐이고, 아무도 변호사가 그 이상의 일을 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 리처드 휴스, <자메이카의 열풍> 중에서‘

손아람은 소설가의 일을 하고 있다. 개연성이니 문장이니 시대이니 다 모르겠다. 그의 글에는 특정한 기회에 특정한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가 들어있다. 그래서 안쪽에서 사람을 흔든다.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서. 반복되는 도입의 오래 되었지만 늘 신선한 방법, 기억으로 읽는 이를 안내했다가 다시 현실로 끄집어내는 능력. 나는 2017년 6월을 손아람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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