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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 창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민 해결 프로젝트
에릭 메이젤 지음, 안종설 옮김 / 심플라이프 / 2015년 8월
평점 :
월요일에 학교에 갔더니 택배가 하나 와 있었다. yes24에서 배달된 책인데, 나는 주로 교보문고를 이용하니까 '무슨 책이지?'라는 생각보다 '누구지?'가 먼저 떠올랐다. 물론 나는 궁굼증을 이기지 못하고 yse24에 전화를 걸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누가 배송했는지 알려면 그쪽으로 전화를 걸어야 한다고 =_= 하아. 철저한 나라가 되었구나.
그래서 짐작만 하고 있는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각 잡고 리뷰를.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채찍이군요.)
자기계발서 류의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어쩐지 꼭 뭔가 해답을 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의 제목에 혹 해서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e-book으로 몇 권 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별로 읽지 않았다. 그런 느낌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한 제목을 붙이는데에만 공을 들인 것이군! 하는 생각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겉봉에도 '자기계발'이라고 써있길래 '누구지?' 다음에는 '허억!! 누가 자기계발서를 보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제목과 목차를 보고 '음, 혹시?'하고 짐작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각종 문제로 고민하는 예술가들이(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 화가, 배우, 연출가 등 직업도 다양하다) 고민을 털어놓고현실적이고도 상황을 저격하는 짧은 답변을 보내주면, 그걸 보고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 내용을 다시 보내는 형식이다. 저자가 보내는 답변은 짧지만 단호하다.
'정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계시는군요. ... 문장 두어 개로 그 소설 내용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독자층을 겨냥한 작품인가요?'라고 직접적으로 질문자의 횡설수설을 지적하기도 하고, '잘 아시겠지만 당신이 안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은 대부분 당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라고 질문자를 다독이고 조언하기도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생계와 창작의 고통 사이에서 그래도 무언가 만들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다는 생각에 절로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통제할 수 없는 구조에 맨몸으로 맞서며 생활과 예술을 일구는 사람들의 투쟁이 감동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그들이 말하는 자신의 문제의 여러 부분은 추천사에 있는 말처럼 '핑계'다. 차분히 앉아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조금씩만 실천하면 된다. 그런데 다들 너무 바쁘고 힘들고 그러니까 생각은 못하겠고 누가 옆에서 코칭해 주기를 원한다. 아, 그래서 참 답답하기도, 나약해 보이기도.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준 것은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온전히 시간을 내어 무언가 쓰라는 것'이다. 알고 있지만 안되는 것을 누구나 갖고 있다(아, 설마 나만?) 그걸 해결하는 방법도 알고 있지만 안한다는 것은 역시 핑계라는 결론과 함께. 예술에 관심은 없지만 자신의 생활이 엉망이라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누군가에게도, 어울릴 책이다.
나에게는 남모를 두려움이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덫에 구속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남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지 못하는 두려움,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복잡한 세상에 ‘소음`을 하나 더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두려움, 이미 퇴색해버린 꿈에 집착하는 두려움, 작가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두려움,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권태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왜 그런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내가 다시 글을 쓰고 싶어한다는 것은 알아요. 글을 쓰려는 충동은 있지만 일기나 기사, 고객에게 보내는 전자우편을 쓸 떄 말고는 애써 그 충동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이 뒤집히곤 하죠. 결국은 그것이 온갖 실존적 절망으로까지 이어지고 맙니다. 057
어떤 소설은 작가가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또렷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소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작가는 몇 년에 걸쳐 다섯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가 아홉 걸음을 후진해 원점으로 돌아오는 롤러코스터를 수없이 경험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런 사태가 생길 줄 알았다면, 그래도 그 롤러코스터에 몸을 맡겼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066
작품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것을 최우선 목표에 올려두셨으니, 우선 질문부터 한 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로 작품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길 필요가 있나요?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굉장히 어렵거나 새롭거나 까다로운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그럴 경우에도 그 과정을 즐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기는 할 것이고 일단 완성이 되어야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107
손가락을 한 버 탁 튕겨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인간의 심리적 복잡성에서 나온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154
얼굴 비추기. 밀어붙이기. 발등에 떨어진 일 처리하기. 버티기. 노력하기. 일하기. 떠나지 않기. 당신이 하지 않으면 그 일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림, 음악, 소설은 모두 빵 덩어리 혹은 마천루와 같다. 누군가 만들지 않으면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이 말이 틀렸음을 입증할 방법이 있는가? 그런데도 수많은 예술가와 예술가 지망생들은 반죽도 하지 않은 밀가루가 부풀어 오르기만을 기다린다. 243
한때 나는 온갖 종류의 작법과 창의성을 다룬 책들에 빠진 중독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코앞에 닥친 마감과 사시사철 각각의 이유로 골골대는 몸과 바닥을 드러낸 통장잔고와 매일이 새로운 결혼생활을 고민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 떄문이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사연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솔직히 말하자. 굳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핑계일 뿐이다. 중요한 건 행동으로 옮기도록 만드는 것이고, 이 책은 바로 그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나는 추천사를 쓰기 위해 이 책을 읽다가 계획에도 없던 2주간의 계획표를 짜게 됐다. 이제야 이 분야와 관련된 짧이 않은 내 독서 이력에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다. 나는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추천사 | 북칼럼니스트 금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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