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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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미국의 현대사 외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스승을 찾는 다는 것의 의미, 성장, 지식과 행동, 부재를 메우려는 한 인간의 간절한 소망, 돈과 명예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예술과 글쓰기의 위치를 묻는 제사, 그리고 대가를 치르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


특히 스승을 찾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하는  책이다. 스승을 찾아가는가 스승이 내 앞에 나타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밑줄이 많다.


“예술이 무기일까?” 그가 내게 물었다. 그 '무기'라는 말은 참으로 경멸적이었고, 그 자체가 무기였다. “예술은 모든 것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해야 할까? 예술이 좋은 것들의 옹호자야? 이걸 다 누구한테 배웠지? 예술이 슬로건이라고 누구한테 배웠어? 누가 너한테 예술은 '민중'을 위한 거라고 가르친거야? 예술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거야.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관심을 끌만한 예술은 나우지 않아. 심각한 작품을 쓰려는 동기가 뭐지, 주커먼 군? 물가 억제에 반대하는 적을 무력화시키려고? 심각한 작품을 쓰는 동기는 심각한 작품을 쓰는 것 그 자체야. 사회에 반항하고 싶어? 그렇다면 내가 방법을 알려주지. 잘 쓰는거야. 잃어버린 대의에 헌신하고 싶어?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을 위해 싸우지 마. 그들은 잘해나갈 테니까. 플리머스 같은 항구에는 노동자들이 차고 넘칠 거야. 노동자는 우리 모두를 정복할 거고, 그들의 어리석음에서 이 속물적인 나라의 문화적 운명을 가득 채울 구정물이 솓아져나올 거야. 이 나라에 곧 노동자와 농민의 정부보다 훨씬 더 끔직한 게 생겨날 거야. 바로 노동자와 농민의 문화지. 잃어버린 대의를 위해 싸우고 싶나? 그렇다면 말을 위해 싸워. 거창한 말이 아니라, 감격적인 말이 아니라, 이걸 찬성하고 저걸 반대하는 말이 아니라, 네가 짓밟히고 억압다는ㄴ 자들의 편에 선 훌륭하고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걸 존경스러운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광고하는 말이 아니라, 형벌처럼 미국에서 살아가는 교양있는 소수에게 내가 말의 편이라는 걸 알리는 말을 위해 싸우라고! 네가 쓴 이 각본은 쓰레기야. 끔직해. 정말 화가 나. 조악하고, 유치하고, 멍청하고, 선동만 있는 헛소리야. 말로 세상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어. 너의 도덕적 악취를 하늘 끝까지 피워올리고 있어. 예술가의 미덕을 입증하려는 욕망보다 예술에 더 사악한 영향을 끼치는 건 없어. 이상주의의 끔찍한 유혹이라고! 넌 너의 이상주의, 너의 미덕을 완전히 정복해야 할 뿐 아니라 너의 사악함도 정복해야 해. 애초에 너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 것, 너의 분노, 너의 정치적 동기, 너의 슬픔, 너의 사랑, 이 모든 걸 미적으로 정복해야 하는 거야! 처음부터 설교하고 자기 입장을 내세우면, 처음부터 우월한 관점을 들이대면 예술가로서 무가치하고 한심한 존재가 되고 말아. 왜 이런 선언문을 쓰지? 주위를 둘러보고 '충격'받아서? 주위를 둘러보고 '감동'을 먹엇?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너무 수비게 포기하고 거짓 느낌을 꾸며내. 무엇이든 적석에서 느끼고 싶어하는데, '충격'과 '감동'이 가장 느끼기 쉬운거야. 가장 멍청하기도 하고. 드문 경우가 있긴 하지만, 주커먼 군, 충격은 항상 가짜야. 선언문. 예술은 절대 선운문의 수단이 아냐! 너의 사랑스러운 쓰레기를 여기서 치워주면 고맙겠군.” 366


아버지라면 아들의 행동을 걱정해야 하고, 자신의 꼬마 톰 페인을 사회화 하는 일을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남자의 세계에 발을 들인 꼬마 톰 페인을 아버지가 여전히 아이처럼 교육시킨다면, 아버지는 그걸로 끝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예상치 못한 구덩이를 걱정할 테고, 만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아버지로서는 끝난 것이다. 꼬마 톰 페인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없는 셈 치고, 아버지를 배신하고 과감하게 뛰쳐나가 인생의 첫번째 구덩이에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다. 그다음부터는 진정한 삶의 일관성을 실천하며 일생 동안 한 구덩이에서 다른 구덩이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마침내, 딱히 추천할 만한 다른 이유가 없어도 어쨌든 빠질 수밖에 없는 최후의 구덩이인 무덤으로 걸어들어간다. 60

자신의 변절을 그가 어떻게 설명했느냐고? "그땐 똥인지 오줌인지 구별을 못했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던 거야." 그러고는 날 보고 얘기했다. "꼬마야, 저 친구 얘긴 듣지마라. 넌 미국에 살고있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이자 가장 위대한 체제에서. 물론 똥통에 빠지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소련이라고 똥통에 빠지는 사람이 없을까? 저 친구는 자본주의가 먹고 먹히는 체제라고 말할 거야. 그런데 삶이란게 먹고 먹히는 체제가 아니면 뭐겠니? 이게 삶과 어울리는 체제야. 164

그러니까 잘 돌아가지. 봐라, 공산주의자가 자본주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다 옳은 얘기고, 자본가가 공산주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다 옳은 얘기야. 하지만 이런 차이가 있어. 우리 체제는 인간은 다 이기적이라는 진실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잘 돌아가고, 저쪽 체제는 인간은 다 형제라는 동화같은 믿음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저렇게 개판인 거야. 그 미친 동화를 믿게 만들려고 사람들을 잡아다 시베리아로 보내고, 그 형제애란걸 믿게 만들려고 사람들을 잡아다 시베리아로 보내고, 그 형제애란 걸 믿게 만들려고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거나 총우로 쏴 죽여.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미국과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은 이 동화를 계속 믿어. 물론 한동안은 모를 수도 있어. 하지만 모를 게 또 뭐 있겠니? 인간이 어떤지 알면 다 아는거지. 너도 이도 ㅇ화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 거다. 네가 어리다면 그렇게 믿어도 괜찮아 …" 165

공산주의가 문제라고. 사만 명, 육만 명, 십만 명 밖에 안되는 공산주의자가 문제라고. 그들이 인구가 일억 오천만인 이 나라를 전복시킬 거라고. 내가 바본 줄 아오? 이 빌어먹을 나라가 무엇 때문에 망해가고 있는지 얘기해 볼까?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노동자에 대한 차별 때문이오. 우리나라를 망치는 건 공산주의자가 아니오. 우리나라는 인간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차별 때문에 저절로 망해가는 거야! 216

로절린드가 노게라 가문의 어마어마한 부에 대해 열정적이고 순수하게, 자부심과 성취감에 도취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선 이런저런 생각이 맴돌았다. 하지만 담배농장에서 일하는 쿠바의 농부들은 어떤가요? 가문의 결혼식을 위해 손님들을 실질적으로 뉴욕에서 아바나까지 실어나르는 그 노동자들은? 아름다운 담배농장에서 그들은 어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나요? 핼러데이 양, 당신네 담배 노동자들 사이에 만연한 질병과 영양실조와 무지는 어떤가요? 당신의 스페인풍 결혼식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을 추잡하게 낭비하는 대신 노게라 집안사람들이 부당하게 차지한 농토의 대가로 쿠바 민중에게 변상해주는 건 어떨까요? 238

네이선, 지적인 대화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구나. 나는 많은 걸 읽는데, 내가 독서에서 얻은 것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자극을 받아 모양을 갖춘다고 믿는단다. 너는 그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야. 너처럼 젊은 친구를 알게 되어 조금이나마 미래를 덜 비관적으로 느끼게 되는구나. 1949년 4월, 아이라 261

가끔 돌이켜보면, 내 삶은 지금까지 내가 귀기울여 들어온 하나의 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사법은 때로 독창적이고, 때로 즐겁고, 때로 허풍이고(익명의 이야기들), 때로 정신나간 듯 보이고, 때로 사실 그대로이고, 때로 바늘처럼 날카로웠다. 기억이 미치는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항상 이야기를 들어왔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떻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하지 말아야 할지,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존경해야 할지, 무엇을 포용하고 언제 도망쳐야 할지, 무엇이 황호라고, 무엇이 불길하고, 무엇이 쓰레기인지, 그러고 어떻게 영혼을 순수하게 지켜야 할지에 대해. 나에게 얘기할 땐 어느 누구도 벽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아마 여러 해 동안 내가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는 듯한 모습으로 돌아디닌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내 인생의 책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이루어졌다. 내가 어떻게 지금의 이자리까지 왔는지 스스로 묻다보면, 놀라운 답이 나를 기다린다. 바로 `듣기`였다. 373

원래 그런거라네. 인간의 비극이란 게, 일단 완성되고 나면 언론인들한테 넘어가 오락거리로 전락하지. 그건 그 말도 안되는 미친 이야기들이 우리의 문턱을 넘어 쏟아져들어오고, 신문의 어설프고 의심스러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우리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이야. 난 매카시의 시대가 전후에 가십,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민주공화국을 통합시키는 이념으로 끌어올려진 가십의 승리를 선포한 시대라고 생각하네. 우리는 가십을 믿노라. 가십이 복음이고 국교가 됐지. 매카시즘은 결코 진지한 정치의 출발점이 아니라, 대중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진지한 모든 것을 오락거리로 만드는 행위의 출발점이었네. 지금은 도처에 만연한 미국인의 몰지각함을 전후에 처음으로 활짝 꽃피운 게 매카시즘이었어. 473

난 사람이 살인 같은 죄를 저지르면, 도스토옙스키의 진실 같은 게 작동한다고 생각한다네. 평생 책을 가까이하고 영어를 가르친 교사로서, 아이라의 마음에 도스토옙스키가 묘사한 심리적 손상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어떻게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건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 안그렇겠나?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를 죽이고 나서 이십 년 동안 멀쩡하게 지내던가? 라슼ㄹ리니코프 같은 마음을 가진 냉혹한 살인자는 평생 자신의 냉혹함을 돌이켜보며 살아. 하지만 아이라는 자기성찰과는 거리가 멀었어. 아이라는 행동하는 기계였지. 라스콜리니코프의 범되는 그의 행동을 왜곡했지만… 아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치렀다네. 아이라의 참회, 자신의 인생을 되살려보려는 처절한 노력, 똑바로 서기 위한 안간힘. 그의 방식은 완전히 달랐지. 501

"자네가 궁굼할까봐 하는 말인데, 나 자신한테 당한 걸세. 그 모든 도의를 고집한 나 자신한테. 난 동생을 배신할 수 없었고, 내 교육을 배신할 수 없었고, 뉴어크의 불우한 사람들을 배신할 수 없었네. `난 아니다, 나만큼은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 난 도망치지 않을 테다, 다른 선생들은 자기 필요에 따라 그럴 수도 있자, 하지만 난 이 흑인 아이들을 버리지 않겠다.’ 그 결과로 내 아내를 배신하게 된 거였지. 난 내 선택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씌워버렸어. 내 공민의식의 대가를 도리스가 치른 거야. 그녀가 내 고집의 희생자가 되었지… 이보게, 이건 끝이 없다네. 내가 살아오면서 노력했듯 종교,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같은 명백한 망상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도, 여전히 자신의 선량함이라는 신화는 족쇄처럼 남는다네. 그게 최후의 망상이지. 또 내가 도리스를 희생시키게 만든 망상이고. 그만하세. 모든 행동에는 손실이 따르는 법. 이게 그 체계의 엔트로피야." 선생님이 말했다. "어떤 체계 말인가요?" 내가 물었다. "도덕체계 말일세."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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