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구 H 양이 남자친구를 선보인다고 친구 몇을 불렀다.

H 양은 대학 같은 과 동기로 알고 지낸지 올해로 10년 째이며 그 중 5년은 함께 살아온 각별한 친구다. 그런 그녀가 남자 친구를 선보이기는 처음이다. H 양은 나이 스물하고도 아홉에 첫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내가 '남자 친구를 소개'시켰다고 했나? 어쩌면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 남자 친구를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분은 나와 H 양과 어제 모인 친구들의 과 1년 선배이며, 고로 역시 10년째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러므로 남친을 소개시킨다기보다는 친구와 선배가 연인이라는 관계로 질적 변화를 겪었음을 보여주는 자리라는 게 맞을 것 같다.

두 사람을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났다. 웃음을 참으려고 허벅지를 꼬집고, 옆에 있는 친구의 팔뚝을 꼬집고,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고자 무던히 애를 썼건만 도대체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난 그 두 사람을 불과 한 달 전에도 친구와 선배로 만났고, 석 달 전에도 친구와 선배로 만났고, 여섯 달 전에도 그랬다. 지난 9년 몇 개월간 쭉 그랬다. 그 친구와 선배와 내가 함께 술을 마신 횟수를 세어보면 일 백번은 족히 될 것이며 함께 간 엠티 열번, 뛰어나간 데모 숫자 역시 그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먼 옛날부터 친구와 선배는 징그럽게 어울리고 부딪혀온 사이인 것이다.

그랬던 두 사람이 연인이랍시고 같은 편에 나란히 앉아 실실 쪼개고 있으니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난 한 달 만에 달라져버린 이 모든 관계가 흥미진진했다. 이제 친구는 선배의 여자 친구가, 선배는 친구의 남자 친구가 되었다. 난 이제 술 자리에서 선배의 옆자리에 앉을 수도 없고, 친구 앞에서 선배의 옛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할 수도 없겠지. 푸훗.

..어떻게 하면 10년을 알던 남녀가 연인이 될 수 있을까? 그들은 왜 진작 연인이 되지 않았을까? 궁금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난 묻지 않고 참았다. 두 사람도 충분히 알 것이다. 둘의 관계가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낯설어 보일지를.. 그리고 얼마나 큰 폭탄 같은 사건인지를.. 충분히 숙지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하기로 결정하였다면 두 사람을 마음을 크게 먹은 것이다. 그런 만큼 아주 오래 행복해야 할 것이다. 

(아... 친구 하나를 또 커플 제국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리 잔인한 세월은 아니다. 세 명의 친구가 다시 솔로부대로 귀환하였기 때문이다. 솔로부대원들은 커플제국인들을 부러워하지 말지어다. 여름에 붙어다녀봐야 땀띠밖에 더 나겠는가? 긴 여름, 건재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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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7-0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극히 훌륭한 태도입니다. 그렇죠, 커플이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죠^^

mannerist 2004-07-0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마지막 괄호친 곳이 압권이군요. 그런 데는 굵은 글씨로 바꿔주셔야죠.
저도 외쳐봅니다. 건재하자! ^_^o-

비로그인 2004-07-07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는이들에게만 그렇지 커플 두분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애틋한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봤을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들만의 언어로 오래전부터 충분히 교감을 했을지~~ ^^ 솔로가 최고죠!

미완성 2004-07-0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 저지른 다음 공개선언하신 걸 수도 있죠-_-
이..이런...이렇게 빈티나게 악의적인 코멘트를 달다니....
그 분들이 아름다운 사랑하시기를 빕니다.
(녜, 사랑은 없던 미모도 되찾아주는 힘을 가지고 있죠. 뭐, 전 미모가 더 필요없으니까..;;)


진/우맘 2004-07-0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여기에서 서니님이 나랑 동갑이라는 게 확인되고.....그 나이에도 그렇게 귀여울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분개한 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가끔 저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더군요. 같은 나이인데 누구는 5살 2살 아이들의 엄마라....나는 언제 낳아 키우나...어흑...뭐 그렇게요. 서니님은 그러지 마세요.
(이거...아무래도 염장지르기인 듯. 도망가자. =3=3=3)

sunnyside 2004-07-0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마태우스님, 매너리스트님, 퐈이링!!
폭스님, 그런가봐요.. 그 선배에게 '도대체 언제부터냐'고 물었더니 시침 뚝 떼고 '95년도부터'라고 얘기 하더군요. ㅋㅋ 정답이죠. (95년도부터 지금까지 그 선배가 몇명의 여인과 사귀었는지 물론 저는 다 알고 있지만 ^^)
멍든사과님, 조짐은 물론 있었답니다. 약간 예상은 했었지만 현실로 다가오니 또 놀랍드라구요. ^^ 아, 그리고 미모 되세요? 미모 클럽에 찾아오세요. 여기 명함 놓고 갑니다. ㅋㅋ
진/우맘님, 흠.. 염장 지르기 다소 성공하셨습니다. -.- 뭐,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쩌겠어요? 진/우맘님 따라가기는 애초에 글렀고, 이제 목표를 가수 원미연씨나 탤런트 김보연(둘다 얼마 전 연하와 결혼)씨로.. ^^;

sooninara 2004-07-0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니님..님도 10년된 지기중에 눈 맞은분 없으신지?
혹시 님을 맘속에 담아둔 분이 있을지도 (이것도 염장지르기죠^^)
저도 신입생때부터 알던 친구둘이서 3년후에 군대가는것을 기회로 사귀게 될때..참 이상하더이다..
그런데 10년된 선후배 사이라면..왠만한 부부보다 더 잘 알텐데..친구분이 꼭 해피엔딩으로 결혼식장까지 무사히 들어 가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