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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랑 ㅣ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1
윤이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2월
평점 :
'한서영'은 29살에 데뷔작 <달의 송곳니>를 쓴 작가로, 최근 2년 동안 <스틸 라이프>라는 시리즈를 썼다. <스틸 라이프>의 독특한 점은 그 제목의 연속성에 있는데, 알파벳 <A>부터 <L>까지 구성된 12권의 책이다.
한서영은 자신이 '늑대가 되는 꿈'을 꾸며, '박물관에서 사람을 먹어치우는' 꿈을 꾼다. 한서영은 그러한 자기자신(늑대)를 혐오하고 두려워한다.
최소운은 <하줄라프 Hajullaf>라는 책을 데뷔작으로 낸 작가로, 한서영보다 3살 어린 31살이다. <하줄라프>에는 급진 수니파 IS에 참여(?)한 아들을 둔 4명의 어머니가 등장하며, 파충류 알, 용, 용기사 등이 등장하는 독특한 이야기이다.
이 책 <설랑>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한서영과 최소운, 둘다 작가이기에 그들이 '쓴 책'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트뤼포 등 다양한 현실세계의 작가들도 등장한다. ( 모르는, 낯선 이름의 작가들이 상당히 많았다. )
한서영은 <하줄라프>를 읽고 그 책의 저자 최소운의 팬이 되었다. 최소운은 <달의 송곳니>를 읽고 그 책의 저자 한서영의 팬이 되었다. 2명의 작가가 서로 상대방의 책을 읽고 팬이 된 것이다. ( 이야기의 중반부에 등장한다. )
일종의 "꿈속 늑대 증후군"을 앓고 있는 한서영은 무척이나 괴롭다. 초승달이 시작될 무렵 '사랑에 빠지고', 보름달 무렵 '꿈속에서 늑대로 변신하여 상대방을 잡아먹고' 그 여파인지 서로 100%합의 하에 이별을 한다. 남은 보름동안 한서영은 '상대방에 관한 글'을 쓴다. 그리고 다음 1달 동안 한권의 책이 완성된다. 이렇게 두달에 걸쳐 '특정인물 가'에 대한 매혹-혐오-글쓰기-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바로 <A>라는 이름으로. 이런식으로 완성한 책들이 바로 <스틸 라이프>이며, A에서 L까지 12권이 있다. 한서영이(의 늑대가) 2년동안 12명을 잡아먹은 것이다. 바로 한서영의 꿈속에서 늑대로 변신하여.
설정 자체가 굉장히 독특했다.
두 여성 한서영과 최소운은 서로를 실제로 만나기 이전부터 '좋아하는 작품을 쓴 작가'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스타를 만나게 된 '팬'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무 반가워서 말문을 못이을까? 아니면 팬이 아닌 척 시치미를 뗄까?
한서영이 최소운을 직접 대면했을 때, 한서영은 최소운을 모른채한다. 아마도 "둘 다 같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둘의 직업이 다르거나,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당신의 팬이에요"라고 보다 더 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 그러한 내용이 나온다.
ㅡ 작가와 작가가 만나 하는 사랑은 지뢰밭이다.
....
누가 더 인정받고 덜 인정받느냐 하는 지극히 속물적인 욕망과 열등감의 암투가 있고, 자부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초라한 현실의 배고픔이 있었다.
( 217쪽)
여하튼, 서로가 서로의 팬인 두 작가가 만났다. 한명은 현실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쓰는 작가이고, 한명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유머와 농담을 활용하여 위트있게 글을 쓰는 작가이다.
서로 다름에도,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작가가 겹친다던지, 좋아하는 노래가 겹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사실 책을 읽기전에 책의 앞,뒤쪽만 보고는 정말로 "늑대인간"과 "인간"의 이야기일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늑대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책과 책을 쓴 저자에 관한 이야기이며, 믿음과 방법찾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백했을 때 상대방이 "나는 늑대인간이다"라고 말을 한다면, 누구라도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소운은 한서영의 말을 믿었다. 아마도, 한서영의 글 <달의 송곳니> <스틸 라이프>를 읽었고, 글 속에 숨겨진 한서영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서영 역시 최소운의 <하줄라프>를 읽었고, 그 속에 있는 최소운을 알았기에 '자신의 비밀 : 나는 늑대인간이다'를 밝혔겠지.
여하튼 서로는 서로의 작품을 읽은 '팬'이었고, 상대방을 직접 만나기 전에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해본 사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최소운은 '한서영이 늑대인간이다'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방법을 찾고자 노력한다. 이 부분이 상당히 멋있었다.
터무니없다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포터>속에 등장하는 '투구꽃'을 구입하는 노력, 케이지를 구하려는 생각, 비행기를 타고 계속 이동하면서 '보름달'을 피하려는 생각 등등.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서영은 '현실세계의 늑대인간'이 아니라 한서영의 꿈속에서 '늑대인간으로 변신할' 뿐이다.
두 여성이 작가답게(?) 말로, 작품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이해시키기 위해 주고받고 하는데, 여하튼 독특한 느낌이다.
특히, 정사장면을 책읽기에 비유한 부분은 정말 특별한 느낌이었다.
ㅡ 책처럼 천천히 펼쳤다. 표지가 서걱거렸고, 늑대가 그려진 띠지가 벗겨져 땅으로 떨어졌다. 소운은 서영의 목차를, 소제목을 읽었다. 페이지를 넘기고,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한 줄 한 줄 문장을 따라가듯 읽다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속도를 냈고, ....
....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여백을 발견하면 호기심을 내며 바라보다가, 이내 입술을 가져다 대고는, 거기에 자신의 문장을 깊고 진한 필체로 눌러 새겼다.
( 170 ~ 171쪽 )
언젠가 한서영과 최소운은 '서로에게 첫 페이지조차 들춰보기 싫은 무료한 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반면에 '여전히 매혹적인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굉장히 독특한 설정이었으며, 독특한 방식의 이야기전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