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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항아리
유익서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0월
평점 :
표지가 무척 예쁘다. 표지에 등장하는 항아리가 바로 솔이가 얻게 된, 솔이에게 기쁨과 고생을 주는 그 '노래 항아리'인가 보다.
목차가 무척이나 세밀했는데, 각 소제목마다 솔이의 고난의 여정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이 상당히 낯설었다. 책의 뒷면에 "참된 노래를 찾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라고 적혀있었는데, 책의 첫부분은 '나무들의 이야기'였다. '왜 나무들이 나오지?' 라며 의아했었고 뜬금없었는데, 솔이가 '노래 항아리'를 얻게 된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름 이해가 간다.
이 책은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령, 인간세상 바깥의 것, 신외의 기물 등이 등장하고, 귀신도 등장한다. 물론, 이러한 존재들의 등장은 '항아리에 새노래를 담으려는 솔이의 여정'과 큰 관련이 있다. ( 그렇기 때문에, 나무들도 이야기를 하고, 항아리도 이야기를 한다. 물론 들을 수 있는 자는 선택적이다. )
책의 구절 중에 '반정'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는데, 이야기의 시기상 인조반정 후나 중종반정 후 같은 느낌이 든다. ( 반정으로 서인이 득세한 시절 )
이야기는 상당히 낯설었으며, 익숙하지 않은 어휘들이 많았다. ( 두멍, 오지 그릇, 파수, 소종래, 검 것, 마하지, 하냥 다짐 등 )
이야기를 간략히 살펴보면,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16살 소녀 솔이가 있다. 솔이는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솔이 어멈은 솔이가 노래부르는 것을 질색팔색할 정도로 싫어한다. 솔이가 노래를 부를때마다, 솔이 어멈은 솔이의 종아리에 피가 날정도로 매질을 할 정도이다.
솔이 어멈이 왜 이렇게 독한가ㅡ의아했는데, 나중에 등장하는 솔이 어멈의 사연을 듣고보니 이해가 갔다. ( 양갓집 셋째딸이었던 솔이어멈은 노래를 즐겨불렀고, 그 노래로 인해 가문 사람들의 핍박을 받았다. 또한 그 노래로 인해 남편과 시어른들의 학대를 받았다. )
우연히 솔이 어멈은 장독대에서 '노래하는 항아리'를 발견한다. 빈 항아리 뚜껑을 열고 손을 휘저었더니, 세상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깜짝 놀라고 감탄하던 솔이 어멈은 노래부르는 항아리를 시장터에 가져가, 노랫소리를 판다.
이 소문을 들은 마을의 사또가 솔이 어멈을 부르고, 사또는 항아리의 노랫소리에 심취한다.
그러던 어느날, 사또의 귀물이 된 항아리가 노래를 하지 않는다. 화가 난 사또에 의해 솔이 어멈은 죽게 된다.
솔이는 '자신이 대나무 숲에서 얻은 검 것인 항아리'를 어머니로부터 되찾아오려 노력하지만, 어머니는 그 항아리를 항상 끼고 다녀서 되찾을 기회가 없었다. 장에 노래를 팔러 간 어머니가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자, 솔이는 어머니와 항아리를 찾아 길을 나선다. ( 중략 )
책을 읽으면서 울화가 터지는 장면들이 몇 군데 있었는데, '관노가 된 솔이'라는 구절, '개동과 박초시'의 사건이 그러했다. 일반 평민이었던 솔이가, (추측컨대) 사또에게 속아서 관노라는 노비 신분으로 내려간 듯하다.
솔이 어멈을 매질해서 죽인 사또와 이방이, 항아리를 노래부르게 하는 솔이를 꾀기 위해서, 자신들의 죄를 숨긴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있는 자들이 흔히들 하는 행실이니.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솔이가 관노'라는 구절을 보고는 정말정말 화가 났다. 분명히 솔이는 엄마와 함께 살던 그냥 '평민'이있다. 그런데 '노비'가 된 것이다. 솔이의 자발적(?) 선택이었을수도 있지만, 솔이 어멈이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노비'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솔이에게 '대나무 꽃 항아리'를 알려준 신령(?) 녹색 손님도 마음에 안들긴 마찬가지이다. "고생을 할거다"라고만 알려주었지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 거다"라고는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노래 항아리를 얻게 됨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게 될 것을 알았다면, 솔이가 그렇게 쉽사리 "노래 항아리를 얻고 싶어요"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솔이는 "솔이 혼자만의 고생"이라고 생각해서 흔쾌히 "마음 편히 노래부를 수 있는, 노래 항아리를 원해요"라고 했겠지.
녹색 손님이 말한 '고생'이라는 것의 의미는 상당히, 무척이나 크다. 혹독한 음률 선생 심운보의 이유없는 지나친 체벌, 항아리와 함께 낯선 길을 떠나는 외롭고 고독하며 험난한 길, 그 이상이다.
어머니를 잃게 되고, 속세의 편안한 사랑을 택할 수 없으며, 귀신과 색정하게 되며, 각설이패에게 험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마음대로 죽을 수 조차없다.
책을 읽으면서, 솔이의 고난 여정을 보며 '바리데기' 이야기가 떠올랐다. 솔이는 항아리가 원하는 '새로운 노래'를 찾기위해 길을 나서고,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가 곳곳에 있다.
이야기를 파는 전기수 '대우', 중국의 것이 아닌 우리만의 그림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른 '고강'의 그림, '승종', 대우의 부친 '만후', 남사당패의 줄타는 광대 '도일'과 봉업 노인, 무당 선이네, 박초시의 송사로 인해 억울하게 땅을 빼앗기고 죽은 '개동' 등등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남사당패의 일원인 도일과 저승패인 '봉업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려장' 일화가 연상되었고, 무당 선이네의 굿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최근 본 소설 <큰비 / 정미경 >가 생각나기도 했다.
노래, 그림, 남사당패와 광대, 무당과 굿 등에 관한 이야기부분에서는 나로서는 낯선 용어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했는데, 아마도 해당 분야에서 쓰이는 관련 용어들인 모양이다. 저자가 자료조사를 무척이나 꼼꼼히 했구나를 느꼈다. ( 쇠김굿, 지노귀새남, 해원굿, 새남굿, 성주굿, 오방돌기, 재수굿, 성주 올림 , 명도, 바라 / 천품, 묘품, 능품, 수법, 석법, 영모법 / 장구재비, 돌림벅구판, 꼭두쇠, 곰뱅이, 버나재비, 살판쇠, 덜미쇠, 덜미재비, 어름사니, 상쇠, 부쇠, 종쇠, 북재비 )
항아리가 어떤 노래를 원하는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하던 어린 소녀가, 길을 나서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험한 꼴도 보고 도움의 손길도 받으면서, 새로운 노래를 찾아간다.
솔이는 고난의 여정 중에 '성진'을 무려 3차례나 만나게 된다. 아마도 인연인 듯하다. 물론 '고강'과도 두어번 만나지만(?) 그것을 과연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는 고강이 아니라 '녹색손님'일지도 모르고 검 것일지도 모른다.
성진은 솔이에게 지고지순하다. 그러한 지고지순함을 외면하고, 노래항아리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어야하는 고생. 그러나 그 고생은 솔이의 자발적인 고생이다. 얼마나 노래를 사랑한다면 그럴까? ( 왜 솔이는 '성진'보다 '고강'에게 더 끌리는 걸까? 고강이 자신의 몸을 불살랐기 때문에? )
순리와 역리(?)에 대해 심 전율이 성진에게 해준 이야기는, 만후가 솔이에게 하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만후와 심 전율은 '순리,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지만, 대우는 그와 다르다.
이러한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겪으며, 세상 어디에나 노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솔이.
나는 이야기가 조금 아쉬웠는데, 개동과 박초시의 사건에서 박초시에게 인과응보가 없었다는 점이 그러했다. 솔이와 성진의 결말이 그러했다.
억울한 약자는 계속 약자로만 있는 것일까? 솔이의 새노래를 담은 항아리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