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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그냥 소설로만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의 뒤쪽에 있는 "이 소설을 쓰기까지"를 읽고서야 이 책 <큰 비>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그 글에 의하면, 17세기 용녀 부인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고, "경기도 양주의 무당 무리들이 도성에 입성하여 미륵의 세상을 맞이하려 했다는 역모 사건 ( 275쪽)"이라고 한다.
<큰비> 는 무진년 7월 13일 새벽부터 7월 18일까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실상은 7월 13일부터 7월 15일까지, 3일간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 조선 숙종 : 조선 숙종 14년, 무진년(戊辰年), 1688년 )
이 책은 읽는데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다. 300쪽이 안되는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읽는 속도가 꽤나 느렸는데, 낯선 단어들, 낯선 대화법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한 듯 하다.
'대화체'같은 경우 따옴표("")안에 있지 않았고, 서술문안에 대화가 있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그로 인해, 나로서는 읽는 호흡이 끊기는 느낌을 상당히 자주 받았으나, 무척이나 독특한 문체임은 분명한 듯하다. ( 나로서는 처음보는 낯선 형태의 서술방식이었다. )
이야기에는 19살의 '크고 강한 무당' 원향, 미륵에게서 점 3개를 받은 '여환', 여환을 미륵의 현신으로 받드는 '황회' , 원향의 신어머니이자 신딸인 '계화'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책은 현재 세상의 시점과 죽은 이의 시점(만신 하랑 , 경술년)으로 교차되며 보여주는데, 무척이나 미스테리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그래서 읽는 속도가 더 느렸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의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하랑은 말했다' 부분이 바로 '죽은 이의 시점'으로 보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뜬금없이 등장하는 '하랑 이야기'에 상당히 당혹스러웠는데, 이야기의 중-후반부가 넘어가면서 '하랑'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차지함을 알게 되었다.
무당에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모르는 용어들이 너무 많았다. 책을 읽는 내내 ㅡ 책의 각주나 미주로 해당 용어들에 대해서 간단히라도 설명해주었다면ㅡ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인물 관계도 역시 상당히 헷갈렸는데, 이러한 헷갈리는 인물 관계도도 이야기의 중-후반부를 보고서야 파악하게 된다.
초-중반까지는 책을 넘기는 속도가 너무나 느렸으나, 다행히도 중반부 이후부터는 큰 호기심을 가지고 순식간에 읽게 되었다.
조선 유교에서 왜 무당을 경시했는지를 이 책을 읽고 나름 유추하게 된다. 하늘과 통하는 자는 임금, 혼자이고 싶은 욕망. 반면에 무당ㅡ이라는 존재는 신분에 상관없이 하늘과 통할 수 있다. (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무당에서의 '천신' )
경시하며 괄시하던 무당이지만, 경술년 대가뭄과 대기근을 해소하지 못한 조선의 왕과 사대부는 용신을 부리는 무당을 부른다. 바로 '하랑'이다.
용신을 불러서 비를 내리게 해도 죽게되고, 비를 내리지 못해도 죽게 되는 하랑.
9살에 별줄기를 봄으로 인해 무당의 신딸이 된 원향은, 무당이 된 후 만신 하랑을 맞이하게 된다.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을 안타까워하는 원향은 그네들의 원한을 풀고 싶어한다.
책의 초.중반부는 여환, 원향, 황회 등의 '미륵'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굿을 하는 장면이라든지, 용을 부리는 장면 등 무당에 관한 내용들도 상당히 있으나, 기본적인 바탕은 바로 천지개벽에 관련한 '미륵'이다.
미륵ㅡ에 관해서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제법있는데, 베를 짜는 미륵, 옷감을 만드는 미륵 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나, '미륵'이 중요한 기저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러한 궁금증은 역시나 책의 중.후반부에서 해소된다.
미륵을 보는 관점의 차이, 핍박받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서러운 여인들을 대하는 방법의 차이가 바로 갈림길의 시초가 되었음은 황회와 그의 처 '어진'의 대화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물론 그 대화 이전에 태아를 대하는 원향의 자세와 황회의 태도에서 드러나지만, 보다 명확한 것은 바로 황회와 어진의 대화이다.
다 읽고나서 무척이나 여운이 남았는데, 7월18일 이야기가 있어서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 나로서는 차라리 7월 18일 이야기가 없었으면ㅡ 하는 바람이다. 반면에 7월 18일의 이야기가 있음으로 인해 17세기 용녀부인에 대해 검색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미륵, 무당에 대해 상당히 깊이있게 알 수 있었으며,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 등 다양한 인물군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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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한 서평은 블로그 참고 : http://xena03.blog.me/221095517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