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시대 1 - 오늘을 움직일 혁신적인 역사소설
문성근 지음 / 효민디앤피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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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에는 점자느낌이 드는 오돌토돌한 무늬가 있어서 독특한 질감을 준다.
이 책 <삼포시대>에서 말하는 삼포는 부산, 울산, 진해의 항구를 의미한다. 영어로 된 책의 제목은 <Three ports time> 이니, 3개의 항구라는 의미가 좀 더 명확하다.
요즘들어 흔히 말하는 삼포(3가지를 포기한다)라는 뜻이 아니라, 3개의 항구를 말하는  것이다.
 
 

책의 맨 뒤쪽에는 책의 내용 중 일부(5장, 변법)가 발췌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읽으면 무척이나 씁쓸하다.

 - 양반들의 권력다툼이나 재산 강탈에 법이 무슨 소용이겠어. 법은 그저 구실에 불과한 것이지. 원래 형벌이 남용되고 가혹해지면, 그것은 법의 목적이 아니고, 반드시 어떤 교묘한 정치적 술수나 뭔가를 뺏어 내려는 비겁한 수단으로 전락되는 게야. 이는 동서 고금의 수천 년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 않나.

 
 
 
책의 맨뒤쪽에 있는 '5장, 변법'의 내용구절은,  주인공 영학의 의술스승님이 영학에게 하는 말이다.
관련된 사연을 살펴보면, '옥비 후손의 쇄환 사건', '노비쇄환 사건'이라 불리운다. 
세종때 실시한 사민정책으로 노비들이 면천되었고, 본인들이 개간한 땅을 소유하게 된다.
성종때 선왕(세종)의 법(사민정책 관련된)을 폐지하고, 그로 인해 면천되었던 자들이 다시 노비가 되고, 그들의 땅 또한 모두 빼앗긴다.  몰래 빼돌려진 옥비라는 노비는 고위 군관의 첩, 후에 아내가 되고, 전처의 자식 5명, 본인이 낳은 7명을 키우게 된다. ( 성종에게 실망이다. )
그로 100년 후(영학이 15~17세 ), '옥비'라는 노비가 빼돌려진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노비의 후손을 모두(1000여명에 육박) ,  다시 노비로 만드는 일이 바로 '노비 쇄환 사건'이다.
 
 
 
영학의 스승님은 '옥비 노비 쇄환 사건'이  양반들의 권력다툼, 세력싸움임을 말한다. 또한 '추노(도망친 노비를 잡는 일)'또한 양반들의 권력과 관련된 일임을 영학에게(그리고 나에게) 알려준다.
 
 

이 책 <삼포시대>는 영학의 이야기이다.
어머니 이씨, 아버지 문광우의 아들인 문영학은 어린 시절 경상도 산음에서  부유한 양반가의 자제로 살았다.  아버지 문광우가 권력층의 눈밖에 나서 누명으로 사망하게 된다.   문씨 집안은  멸문지화를 피하기 위해,  집안의 절반이 넘는 재산을 대비의 형제에게 뇌물로 준다.
어머니 이씨는 아들 영학이 5살 되던 해, 경상도 산음을 떠나 하동으로 이사를 한다. 시댁에서 겪는 과부의 설움이 힘겨웠기 때문이다.
 
 
 
하동에서, 영학이 15살 되던 시점부터,  이 책 <삼포시대>는 시작한다.
영학과 어머니 이씨, 그리고 7마지기의 논을 가진 나름 양반가인 것이다. ( 영학의 신발이 짚신인걸로 보아,  부유하지는 않다. )
7마지기의 논도 있겠다, 양반이라서 세(세금)도 없으니, 영학네는 그럭저럭 살만하다. 양민이라면 세금을 1/2이상 내야하지만, 양반이라는 이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영학의 집에는 노비도 2명 있는데,  산음에서부터 따라온 분이와 분이의 아들 선돌(20살)이다.
분이의 이름을 처음보았을 때, '노비치고 예쁜 이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분이가 왜 '분'이 인지 알게 되고,  참 당혹스럽다.
분이의 어머니가 똥을 누러 변소에 가다 아이를 나아서, 아이 별명이  똥 분, 분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또 하나, 노비에게는 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이름도 없다고 한다. 노비에게 있는 것은 성도, 이름도 아닌, 단지 별명만 있을 뿐이라는 '선돌'의 말은,  분이(똥)라는  호칭을 보면 더더욱 동감할 것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귀한 아이를 귀신이 해꼬지를 한다고, 이름(혹은 별명)을 험하게 지었다고 들었다. 개똥이, 말순이 등등.  그때의 어른들 마음에는 귀신이 해꼬지하지 말라는 좋은 의도가 숨어있었고,  내게도 그런 아주 이상한 별명이 어린시절 있었다. ( 어린 시절, 정말정말정말 싫어했던 호칭이다. )

그런데, 분이라는 호칭은 정말 슬프다. 어미가 똥누러 변소가다 낳아서 분이라니.  사람의 이름을 지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분이의 임신은 더욱 씁쓸하다. 노비 분이는 14세때, 한 양반의 잠자리 시중을 열흘간 들고, 그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된다. 분이의 임신사실을 안 주인마님(!!)은 임신한 분이를 멀리 팔아버린다.  '새끼 밴 암소 1마리 값'을 받고서.

천만다행으로 분이가 팔려간 집이 바로, 영학의 어머니 아버지가 살던 경상도 산음이었고, 영학의 어머니 이씨는 노비 분이를  (양반치고는) 잘 대우해 주었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분이가 산음에서 하동까지 따라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 어쩌면 이또한 나만의 생각일지도. 당시 노비는 그냥 주인이 가는데는 무조건 따라가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
 
 

영학은 12살에 천자문, 동몽선습, 논어 맹자를 다 떼었고, 4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3경(시경 서경 역경)또한 뗀 나름 영재였다.
그런 영학은 12살 어느날, 산음에 가게 되고, 무당으로부터 '일찍 관직에 가면 멸문지화를 일으킨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할머니는 영학에게 관직에 나가지 말라하고, 영학은 그 후 의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의방유취'는 의학대백과사전인데 책의 권수가 무려 365권이라고 한다. 영학의 스승님은 의방유치를 요약한  30권짜리 책을 가지고 있는데, 영학은 그 책을 '의방유취 요결'이라고 말한다. 이럴테면 핵심요약집인데, 스승님의 설명을 들어야만 이해가능한 의술서이다.
나름 영특하다고 자신만만한 영학이, 12살에서 15살까지 3년동안 7권을 배웠다고 한다. 아직 23권이 남아있는 것이다. ( 책의 후반부에는 영학이  한살두살 차츰 나이들어 간다. )
 
 

책의 곳곳에 몰랐던 역사적 이야기가 가득하다. ( 예를 들어, 옥비 사건,  양민여성 가이와 노비 남성 부금의 결혼 사건,  화엄사의 이름 유래, 섬진강의 이름 유래 등등 )

또한 책의 곳곳에 풀(약초)에 대한 정보 또한 한가득이다. 영학은 스승님으로부터 의술을 배우면서 '식약동원'이라는 것을 배우는데, 그래서인지 곳곳에 나타나는 식자재의 효용들이 무척이나 신기하다.
하동에서 많이 나는 재첩은 간에 좋다는 이야기, 산수유의 유래와 효능, 삼지구엽초에 관련된 이야기(건망증 , 치매 등) 등 여러 가지 풀에 대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나온다.
 
 
 
영학의 스승님이 사는 곳은 영학이 보기에 무척이나 신비로운 마을이다. 그 마을 사람들은 경사지에 집도 축사도 잘 짓고, 온실도 지어서 겨울에 갖가지 채소를 먹는다.
스승님은 '온실농법'이 '산가요록'이라는 아주 옛 책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농부에게 유용한 책을  (글을 아는) 양반들이 농부들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반은 농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기(관심없기) 때문이고,  책(글)은 양반만의 권리이기 때문에.
온실농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스승님은 영학에게  책->글->한문, 한글(정음)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양민들이 한글을 배우는 것을 왜 그토록 양반들이 경계하는지에 대해서도.
 
 
 
영학이 말한, 효강조 사상이 '사상통제'라는 부분은 정말 획기적이었다.  영학은 '군사부일체'라는 말의 위험성에 대해, '충, 경, 효'를 나누어서 이야기하고, '법과 도덕'을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책날개를 보면, 저자는 20년 넘게 변호사일을 했다고 하는데, 정말로 깊이있는 내용이 가득한 책이 바로 이 <삼포시대>이다.
 
 

책 속에는 영학의 귀에 들려오는 이야기속의 여러 인물들이 조선을 떠난다. 뛰어난 기술을 가졌으나, 조선에서 경시하기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어서 타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 김감불, 검동이 )

이런 현상은 사실 지금도 있는 것 같다.
 
몰랐던 사실인데 ( 어쩌면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일수도 있다. ) , 휴대폰에 있는 'play store,  안드로이드'를 처음 만든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한국의 대기업에 해당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려하였으나 잘되지 않았던 모양인지, 미국의 구글사에 팔았다고 한다.  
현재 폰은 양대산맥이다.  '애플 스토어', '구글 스토어'
얼마전에 위의 이야기를 우연찮게 듣게 되고, 깜짝 놀랐으며 아쉬워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상법 및 기술직을 천시하고 있는 것일까?
 
 
 
고려때는 유리제품이 흔했으나, 상공업 등 기술직을 천시한 조선때는 유리 구경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스승님의 말에 의하면, 조선의 선비정신이 화려한 상감청자를 못만들게 하고 백자를 만들게 했다는 것이다.
스승님은 조선200년동안 사라진 기술(청자제조술, 조선술, 항해술, 화약제조술, 채광술, 화폐주조술, 건축술, 제지술, 목축술, 농업술, 임업술, 어업술 등), 무예, 예술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떻게 조선의 사회가 발전하겠느냐?'라고 영학에게 반문한다.
아마도 스승님은 문화의 다양성, 다름의 인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영학은 스승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의술공부를 배우고, 의술동기(스승님에게 함께 배운) 명원, 영호와 함께 길을 나서 신의원과 만나고, 여러 환자들도 만나게 된다.
 
 

영학은  노비 여성인 가희를 만나게 되어 육체적 정서적 교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가희와 결혼하고 싶지만 양반과 노비의 결혼은 법적으로 허가되지 않는다.

노비 선돌은 양민 여성 길례를 좋아한다. 이 두 남녀는 서로 좋아하게 되지만, 누구에게도 밝힐 수는 없다. 예전의  '가이와 부금'처럼 법으로 인해 불행하게 갈라서고 사형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영학-가희, 민지의 이야기,  선돌 -길례의 이야기가 나오며 남녀간의 정, 사랑, 법의 한계 등에 대해 고민한다.
영학은  노비 가희와 결혼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고,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어린 시절 좋아했던) 양반 민지와 혼인을 할 예정이다.
 
 

선돌과 길례는 길례의 임신으로 인해 큰 고비를 맞게 된다. 
2권에서 길례, 가희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보여줄거라 생각된다.
 
책의 곳곳에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부시, 갈비, 벌깨덩굴 등등.  아마도 그 당시 ( 1568년 ~ )에 흔히 사용하던 단어들이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책의 93쪽에 있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종묘사직을 위한 결단'이라는 무척이나 황당한 그 말.

책의 앞 표지에는 '삼포시대는 지금의 부정적인 의미와는 다르다'라고 하는데, 1권에서는 긍정적인 내용을 찾기가 어렵다.  양반, 노비, 이상한 법, 공공연한 비밀 등등.
2권에서는  '긍정적인 삼포시대'가 나올지 기대된다.
 


***  한우리 book cafe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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