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할아버지 일공일삼 4
페터 헤르틀링 글, 레나테 하빙거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를 모셔와 같이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웃음과 행복, 갈등과 조화를 담은 책이다. 얼마쯤 독특한 할아버지가 집에 오신 날, 우려하던 대로 벽 색깔이 맘에 안 든다며 가구를 모두 가운데로 몰아놓고 새로 페인트 칠을 하신다. 그리고 아버지와는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하지만 어느덧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소파의 오른쪽 자리는 늘 비워두고 앉는 식으로 '가족'으로 서로 맞춰가게 되고, 할아버지 때문에 신나고 멋진 일들을 함께 하게 된다.

처음엔 할아버지의 독특한 말투인지, 작가의 독특한 대화체가 낯설어 빠져들기가 힘들기도 했는데, 뒤로 갈수록 할아버지를 둘러싼 재밌는 사건들에 빠져들게 됐다^^ 끝부분에 할아버지가 쓰러진 뒤 치매에 걸려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부분, 할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잘 그려낸 작품이다.

빈들빈들 쉬면서 꿈꾸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생각에 잠기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침묵하고 있기에 이 방이 안성맞춤이었다. 즉 사교실인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부르는 데 동의했다.(29쪽) - 특별한 일이 없어도 평화롭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하다. 참 좋다.

뒤로 갈수록  할아버지의 '욕망'이 드러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외출을 할 때면  언제나 와이셔츠에 나비 넥타이를 매시더니, 점점 더 대담해져 가더니 빨갛게 불타오르는 듯할 나비 넥타이. 그리고 어느날 저녁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할아버지의 수줍은 고백.

당황스럽지만 모두들 할아버지의 연애를 지지하는데 손자 녀석이 그만 혼잣말을... 할아버지께서 아직도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몰라? 이에 목의 혈관이 밧줄처럼 솟는 할아버지는, "그러니까 나같은 늙다리는 더 이상 연애를 할 수 없다는 뜻이냐? 그러엄, 못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는 것도 아니지. 머리는 텅 비었고, 심장도 텅 비었고, 혈관의 피는 먼지처럼 푸석거리니까. ...내가 원한다면 나는 아직 백 사람에게 반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연애할 수 있다."(115쪽) -브라보, 욘 할아버지!!

크리스마스에 할아버지가 준비한 선물은 너무나 아름답고 멋졌다. 할아버지가 직접 염색한 티셔츠를 가족들에게 선물한 것이다.밀납으로 모양을 떠서 염색하는 납형염으로, 각자에게 어울린다 싶은 나무를 골라 하나 하나 염색한 티셔츠. 어머니는 사과나무, 아버지는 호도나무, 라우라는 벚나무, 야콥은 자두나무, 베제버 부인은 배나무.

욘 할아버지의 '얼마쯤'의 이야기~~ '얼마쯤'이 뭐냐, 조금인가? 아냐, 얼마쯤이라는 것은 조금보다 훨씬 많아. 그리고 다른 거야. 얼마쯤은 뭔가 특별한 거지. 내가 치즈에서 얼마쯤 냄새가 난다고 하면 그건 지독히 냄새가 난다는 뜻이야. 내가 얼마쯤 아프다고 하면 그건 그냥 얼마쯤보다는 얼마쯤 많이 아플 수도 있는 거다. 누군가 난 얼마쯤 행복해, 하고 말하면 그것은 뻥 하고 터져 버릴 만큼 기쁘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얼마쯤이란 작은 것은 크게, 큰 것은 작게, 무거운 것은 가볍게, 가벼운 것은 무겁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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