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기도 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기호일 수도 있다. - P361

행복운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최소한 그것이 "존재‘ 하는 듯한 판타지를 심어 준다. … 행복은 우리가 열망하는 느낌의 상태 혹은 존재의 상태라는 점에서 흔히 낙관주의와 희망을 담아 발화된다. - P362

행복이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표현되는 것은 바로 행복에 대한 욕망 그 자체다. - P363

행복을 참조하면 논변을 보충할 때 다른 어떤 것을 참조한 의무도 유보된다. 행복은 우리의 방어책이 된다.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든 다수의 행복울 위해서든 어떤 것이 행복에 필요하다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방어할 수 있다. 어떤 것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공격할 수 있다. 행복은 논변에 무게를 더해 준다. 행복의 편에 있거나 행복에 찬성한다는 것은 ("찬성하고 있는 것을 찬성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선의 편에 있다는 뜻이다 - P368

행복이 어떻게 운 좋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행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선과 덕, 지혜를 갖춘 존재로 생각하게 만드는지 보여 주려는 것이다. 이제는 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행운데 대해 생각하기는 어렵다. … 행복은 행운만큼이나 우연히 얻어진 것일 수 있다. - P375

행복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대조를 이루며 능동성의 형식이 된다. 행복하다는 것은 당신의 운명을 능동적으로 결정한다는 뜻이지만, 불행하다는 것은 당신의 운명을 고통스럽게 겪어 낸다는 뜻이다. - P376

감정의 일치가 사회적 • 정치적 삶의 목적일 때,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과 일치를 이루라는 요구가 된다. 조화로움은 일치에 대한 요구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국민들이 슬프기보다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게 내 주장이다. 우리의 행복을 바라면서 그들은 우리가 슬픔을 인식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데. 이는 그 슬픔이 행복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행복에 대한 바람에도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 P383

나는 나쁜 느낌들을 장애 혹은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보다, 그런 말들로 이해되는 나쁜 느낌들로부터 무엇이 따라오는지를 설명해 보려 했다.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행복의 약속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서 나쁜 느낌과 연결돼 있다. 우리는 장애물들로부터,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분배되는지로부터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고통의 원인은 현상에 대한 무작위적 접근" (브라이도티의 관점) 이라고 가정하기보다는, 행복의 약속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쁜 느낌의 원인이 되어 왔는지, 무엇으로 인해 불행이 특정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때로 나쁜 일은 그냥 발생하기도 하고, 운이 없거나 재수가 없을 수도 있지만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라는 말이 담고 있듯), 아픔의 원인에 대한 우리의 접근이 절대로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내 주장이다. - P387

로드는 작품 내내 우리가 상처주는 것으로부터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단지 상처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상처를 야기하는지 알아차리기 위해 작업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 말은 알아차리지 않도록 배워온 것을 탈-배움 unlearning 하라는 의미다. - P388

행복을 우리가 옹호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옹호하고 있는 그 행복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삶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이 되기를 원하는지 물을 수 있다. 가능성은 가능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식돼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헤더 러브가 잘 묘사하고 있듯이, 되돌아가는 것, 심지어는 "거스르는 느낌" 을 수반한다. 가능성을 받아들이려면 과거로의 회귀, 즉 우리가 상실한 것 뿐만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것, 포기한 것뿐만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은 계보학을 하는 것, 현재의 도착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현재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에는 현재로부터의 일정한 소외가 수반된다. 익숙한 것이 물러나면 다른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서 이방인들은 창조적일 수 있다. - P392

우리는 그릇된 것들을 바랄 뿐만 아니라, 포기하라고들 하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이런 바람들을 중심으로 생활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가 행복에서 멀어져야 일이 벌어진다. 우연 발생이 생겨나는 것이다. - P392

이제 우리는 행복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긍정의 제스처로 제시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삶에 대한 긍정적 접근을 요청하거나, 윤리로서의 긍정을 요청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일에서 삶의 가능성을 긍정하려 한다. 올바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요구에 의해 부정된 가능성을 열어두려 한다. - P399

행복이 기쁨을 유발하는 대상과 가까워지고 싶게 하는 지향성을 형성하고 좋지 않은 정서를 만들어 내는 대상과는 멀어지게 한다면, 사회는 바로 이런 행복의 속성을 이용해서, 즉 기쁨을 유발하는 정서와 그렇지 않은 정서를 구분하고 특정 관계나 대상에 특정 정서를 귀속시킴으로써 행복을 정치적 지배 기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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