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수 집단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들.





행복 대본은 우리가 대본을 따르지 않거나 거부할 때에도, 심지어 욕망이 그 선에서 이탈할 때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런 방식으로 대본은 어떤 진실을 말한다. 이탈하면 불행해진다는 진실 말이다. 행복 대본은 이탈의 불행한 결과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그런 결과를 피하도록 한다. ‘전체 세계‘가 올바른 길, 올바른 것들로 인도된 주체들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탈이란 늘 한 세계를 걸고 감행하는 일이다 (당신이 건 그 세계를 늘 잃게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퀴어와 페미니스트들의 역사는 이탈의 결과를 기꺼이 걸고 감행한 사람들의 역사다. - P167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서 불행해질 수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당신이 그랬으면 하고 원하는 모습을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 P175

퀴어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세상이 퀴어의 사랑에 불행해 하기 때문이고, 그 사랑이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함께 사는 타인들에게 불행-원인이기 때문이다. 퀴어들이 애초부터 슬프거나 비참한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니다. 퀴어 불행이 출발점이 아닌 것이다. 어떤 주체들이 슬프거나 비참해 보이거나 슬퍼지거나 비참해지는 것은, 그들에게는 행복을 유발하는 그것이 없다고, 그것이 없어서 불행을 유발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P178

수치스러운 것은 ‘평화로운 생존을 위해‘ 행복한 이성애 아래 숨어 있는 바로 그 행위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고통의 끈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84

우리는 또한 우리의 희망을 단순히 행복한 퀴어 같은 대안적 형상에 걸기보다는, 불행한 퀴어들을 포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불행한 퀴어는 퀴어들을 불행하다고 보는 세상과 불화한다. 행복한 퀴어를 진작할 때 우리는 이 세계의 불행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우린 이런 세상과 계속 불화해야 한다. - P191

이렇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욕망을 잠자리의 행복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 그것은 행복을 좋은 삶의 특정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P217

퀴어들이 결혼을 넘어설 수는 있지만, 그 대가로 행복이 약속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행복의 약속 없이 살 수 있고, 또 ‘행복하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불행- 원인이 되었다는 결과를 안고 살아간다. 바로 이런 이유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살아가는 과정이 계속해서 가능성과 투쟁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 P218

견딜 만한 삶을 위한 투쟁은 퀴어들이 숨 쉴 공간을 가지기 위한 투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리 루티의 말대로 숨 쉴 공간을 갖는 것,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것, 그것이 열망이다. 숨쉬기와 더불어 상상력이 온다. 숨쉬기와 더불어 가능성이 온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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