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대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풀뿌리 교육은 변화를 효과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수단이다. 하지만 이 운동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 가만 논할 수는 없다.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동참을 유도하여 힘을 결집할 강력한 비전을 기획해야 한다. 우리 존재의 대안적 방식, 즉 평등, 존엄, 존중에 기반한 섹슈얼리티를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그 일환으로, 인간의 필요와 욕구의 상업화에 대항하는 힘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여남 모두가 이 산업화된 이미지를 침실과 머릿속에서 몰아내, 포르노 문화에서 주어지는 가소화, 일반화, 정형화된 섹스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도 성적인 존재로 살아갈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그러한 섹슈얼리티는 사회 운동이 정해줄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에게 귀속된 것이고 우리 각자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성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 P321

평등에 기반한 섹슈얼리티는 결국 평등에 기반한 사회를 필요로 한다. ... 여자들은 여전히 경제적, 정치적, 법적 차별에 직면해 있다. 포르노는 이렇게 더 큰 구조 안에 놓여 있으며, 이만큼 불평등의 관행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포르노에서 우리는 포르노 섹스 이외에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 일차원적 대상물이다.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우리 삶의 전 분야에서의 평등이고, 이를 통해 생식권의 말살, 결핍, 상실이나 남자가 가하는 폭력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포르노가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남자들이 가진 모든 권리를 동등하게 가질 자격이 있는 온전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활발히 운동을 펼쳐 여자가 자신의 삶에 온전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다. 정의로운 사회에선 포르노가 설 곳이 없을 테니까. - P322

포르노랜드에선 어떤 여자든 올라탈 수 있는 놀이기구나 마찬가지다. 그 ‘환상의 나라‘에서 착취당하는 건 인형이자 기계로 전락한 현실 세계의 여자다. 그 여자가 포르노 배우든, 불법 촬영물 피해자든, 실제 크기의 인형이든, 모니터 안과 밖은 서로 격리된 세계가 아니며, 사실상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전체가 거대한 포르노랜드다. - P330

리버럴은 과잉성애화된 이미지라고 할지라도 여자 스스로 선택했으면 주체적이라고 생각한 반면, 래디컬은 기존에 여자의 선택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과연 포르노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지에 대해 회의를 품고 새로운 여성문화를 만들어 나가려 했다. - P336

여자가 선택한 삶이라는 것이 여자들에게 족쇄를 채우고 여자끼리 경쟁하면서 더 날씬하고 더 예쁘고 더 어려 보이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완벽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뫼비우스 띠에 불과하다는 점을 여자들이 깨달으면서 탈코르셋 운동에 불이 붙었다. 여성에 대한 억압을 여성이 기꺼이 수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조가 문제임을 인식하고 나자 ‘선택‘ 이데올로기까지도 반성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 P337

‘퀴어‘ 활동가들은 여자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페미니스트들과는 달리 모든 성적인 제한을 억압으로 규정하고 이를 당장 철폐하고자 한다. ... 때문에 포르노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는 성해방을 외치는 퀴어 및 트랜스젠더 운동과 선을 그을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 P339

안드레이 드워킨은 포르노그래피가 "성적 파시즘과 성적 테러리즘의 선전", "여성에게 선포하는 전쟁이며 여성의 존엄이나 자아 그리고 인간적 가치에 대한 끝없는 공격"이자 "남성의 권력과 증오, 소유권, 계급제도, 사디즘, 우월성이 성욕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캐서린 매키넌은 이를 "성적 불평등 제도"이며, "상업적 성착취와 함께 남성지배를 제도화"한 것이라고 보았다. - P346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폭력을 분석하는 도구로서 ‘동의‘를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모든 성인 여자가 동의 능력을 가졌다고 간주하고, 이런 동의 능력을 흐리는 정신적, 정서적,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회유와 협박, 사회구조적 억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지우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런 ‘동의‘ 이데올로기는 성인 여자에 대한 성착취를 가능하게 만들며, 이를 여자의 자유로 포장하도록 만들기까지 한다. - P347

동의 능력이 없는 아동을 보호하는 만큼 성인여성의 동의 능력은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에 동의하는가? 그 ‘무엇‘의 문제성을 문제삼지 않고 다만 여자가 그것에 "동의했는가 아닌가" 만을 묻는 사회에서 성인 여성이 출연하는 포르노는 문제시되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이 스스로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그래서 페미니즘적인 것으로 까지 포장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르노로 유포되는 것 뿐이며, 포르노가 합법화된 나라에서 사기, 기만, 협박, 회유와 같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여자들과 젊은 여자들을 끌어들이면서 산업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포르노는 아무 문제도 아닌 게 된다. - P3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