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남자들이 반성적 질문을 던질 기회를 거부하는 이유는, 포르노가 자신의 섹슈얼리티, 여자와의 관계와 소통에 미치는 영향에 좌절하며 고통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포르노 세계 속 엄격하게 통제된 형태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 포르노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미친 영향을 감정적 측면에서 재고하는 영역으로 진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문화가 남자에게 포르노는 재밌고 무해하며 그 본질은 판타지라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 P184
미디어 학자들은 이미지가 현실 세계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이미지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성별화된 존재로 바라보는 방식과 더불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요소는 하나의 특정 이미지가 주는 노골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미지의 기저에 존재하고 그체계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의 점증적 효과로, 이들은 합쳐져서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방식을 만들어 낸다. 인간은 문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로부터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 감각을 발달시키며, 포르노는 섹스, 관계, 섹슈얼리티에 관한 유일한 이야기꾼은 아닐지 몰라도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 P185
"포르노가 강간으로 이어지는가?" 여기서 묻히는 건 포르노가 문화와, 그 이용자인 남성을 어떤 방식으로 형성하는 지를 묻는 더 예리한 질문이다. 내가 아는 반포르노 페미니스트 중 그 누구도 단일한, 혹은 소수의 특정 이미지가 비강간범이 강간하도록 이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장은, 포르노 이미지가 총체적으로 작용할 때, 최소 여자에게 적대적이고 최악의 경우 여자의 신체와 정서 건강에 매우 위험한 세계를 구축한다는 논리다. … 앤드리아 드워킨과 캐서린 매키넌은 포르노는 남성 섹슈얼리티에 복잡하고 다층적인 영향을 미치며 강간은 단순히 포르노 때문에 발생한다기보다 남성 지배적 사회구조와 얽힌 문화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논리는 포르노가 그러한 사회의 중요한 행위자 중 하나이며, 포르노가 여성혐오적 이데올로기를 너무도 완벽하게 담고 있지만, 그것이 단순하게 무조건 강간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은 포르노가 성차별적 이미지와 이데올로기로 넘쳐흐르는 사회의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간과한다는 주장이었다. - P191
포르노 이용을 문화적 맥락 안에 위치시키면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지가 비로소 보인다. 남아가 성인 남자로 자라는 동안 미디어는 이들에게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쏟아붓는데, 이 메시지는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며 동시에 여자를 남자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성적 대상물로 묘사한다. 남아와 성인 남자는 비디오 게임, 영화, 텔레비전, 광고, 남성잡지에서 그러한 이미지를 접하며, 그 이미지는 그들에게 여성, 남성, 섹슈얼리티에 관한 서사를 제공한다. 포르노의 역할은 이 같은 여성에 대한 문화적 메시지를 가져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간결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 P192
해방을 위해 싸워 온 집단이라면 누구나, 미디어 이론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깨달은 사실, 즉 미디어 이미지가 억압당하는 집단을 체계적으로 비인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안다. 이 이미지는 결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집단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억압을 합리화하는 메시지의 더 광범위한 체계 안에 연루되어 있고, 그것이 가진 권력은 대개 태도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묵인하는 이데올로기를강화하고 정상화하는 데서 나온다. 이 주장을 포르노에 적용해 본다면, 포르노가 미치는 어떤 영향은 태도와 행동의 즉각적 변화보다 더 미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남자가 처음 포르노를 접할 때쯤이면 대부분은 우리문화의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이미 내재화한 상태고, 포르노는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대신 그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생각을 굳히고 공고히 한다. 게다가 이는 그들에게 강렬한 성적 쾌락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섹시하고 화끈한 것으로 프레이밍하는 행위는 포르노에, 다른 형식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여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자격을 부여한다. … 포르노는 분명 그것을 보고 자위하는 남자의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 P194
내가 남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자기가 성적으로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들은 대학에 가면 섹스기회를 쉽게 얻을 거라 기대했고, 당연히 다른 남자들은 "하고 다닐" 거라 생각하며, 결국 자기한테 뭔가 문제가 있거나 혹은 자기가 한번해 보려고 시도하는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결론 내린다. 그들은 자기가 충분히 잘생기지 않아서, 말주변이 없어서, 혹은 남자답지 않아서 점수를 따지 못하는 걸까 봐 걱정하며, 포르노의 세계관이 여성을 언제나 접근 가능한 존재로 그리는 탓에 거절에도 몹시 당황한다. 그들은 대개 여자와 자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에 깊은 수치심을 표출하며, 이 수치심은 ‘야동녀‘와는 다르게 ‘싫어’라는 어휘를 가진 여자 학우들을 향한 분노로 바뀐다. - P196
이들이 현실 감각을 잃는순간은 어느 정도로 그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섹스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야동의 세계에서는, 여자와의 교류라면 그것이 어떤 형태든 -학생이든, 의사든, 가정부든, 교사든, 혹은 그냥 모르는 사람이든 무조건 성애로 귀결된다. 또한 남자들이 서로 최근의 정복사례를 공유하며 즐거워하는 얘기, 마치 이들이 방금 본 포르노 영화처럼 들리는 얘기가 덧붙여져 남자가 여자를 마주칠 때마다 여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세계가 만들어진다. 현실 세계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때 실망과 분노가 치솟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간다. - P197
그간 꾸준히 드러난 일종의 패턴은, 이들 남자 중 대다수가 섹스 파트너가 원나잇 상대라는 조건하에선 포르노 이미지가 자신의 성생활에 침투하는 걸 꺼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관계를 쌓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는데 포르노 이미지를 떨쳐낼 수 없을 때 비로소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포르노 영화의 장면이 성적 흥분을 느낄 때마다 밀려 들어온다. 그들은 여자친구를 좋아하는 포르노 배우와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이때 여자친구가 더 못한 존재가 된다. - P199
살과 살이 맞닿을 때 생겨나는 친밀감, 깨어나는 감각, 유대감은 아예 부재하거나 이들 남자가 성적 쾌락을 얻는 데 의존하게 된 산업의 상품에 압도당한다. 포르노 문화에서는 섹스를 친밀감과는 분리된 행위로 바라보도록 훈련받기 때문에, 이용자는 섹스를 정서가 아닌 수단적 측면에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 남자 이용자가 포르노를 "여자 안에다가 자위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고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202
이들 남성 집단에게 일반적인 곤조 포르노는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폭력적이고, 페티시적 성향이 강한 포르노로 점차 눈을돌렸고, 대개 그야말로 고문으로 보이는 행위를 찾아 나섰다. 이것도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그들 대부분은 아동 포르노로 넘어갔다. 아동 포르노를 처음 내려받은 시점과 실제로 아동에게 성폭력을 가한 시점 사이의 기간은 평균 1년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되기 이전에는 아동에게 성적인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 P205
포르노가 강간에 개입하는 방식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포르노를 이용하는 모든 남자가 강간을 저지르는 건 결코 아니지만, 포르노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상화하고, 합리화하고, 묵인함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이 ‘강간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한다. 대량 생산된 이미지 대다수가 여자에게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신체 온전성이나 영역, 경계가 없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들 이미지는 총체적으로 작용해 그러한 경계선을 넘는 행위를 여자가 원하고 즐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포르노가 그 이용자에게 전파하는 다양한 강간 신화 중 일부이다. … 포르노에는 다른 수많은 신화가 내재해 있는데, 모두 성폭력을 폭력의 행위가 아니라 합의에 기반한 행위로 묘사하는 게 목적이다. - P208
포르노는 사회화의 유일한 행위자는 결코 아니지만, 그 강렬한 이미지와 우리 신체에 미치는 영향 덕분에 강력한 설득의 도구가 되었으며, 남자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자기가 당연히 갖는 인권을 마찬가지로 당연히 가지는 존재로 보는 능력을 잠식하고 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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