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복수 - 시스티나 천장화의 비밀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4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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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언제나 흥미롭다.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라면 더우기나 그렇다.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작품,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소재로 함으로써 우선 독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고 있다. 게다가 이 피렌체인이 교황과, 나아가 교회 전체를 전복할만한 음모를 꾸몄다는 데에야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반덴베르크는 미술사, 기호학, 15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유럽사의 지식, 게다가 일반인들은 그저 호기심만을 가질뿐인 사제들과 바티칸의 세계를 얽어서 매우 흥미진진한 소설을 만들어냈다.

만일 독자가 미켈란젤로의 생애에 대해서, 특히 그의 고집 세고 자의식 강한 성격과 예술가라는 자부심에 대해서, 그리고 '전사 교황'율리우스 2세와의 갈등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이 책을 본다면 더욱 더 재미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모습을 한 자화상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는 우울한 천재였다.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의 모든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남성미의 찬미자였던 부오나로티는 볼품없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평생 지니고 있었다. 둘째로, 그는 자기 집안의생계를 내내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세째로, 그의 예술을 알아본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것을 자신들 마음대로 휘두르려 한 교황들로 그는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사실 그가 문자들을 숨겨 놓았든, 놓지 않았든, 시스티나의 그림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율리우스2세에 대한 복수라고 할만하다.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제단화<최후의 심판>도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천장화 역시, 그때까지의 종교화와는 너무나 달랐다. 후대의 교황들이 목욕탕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라는 둥 불평을 해대며 성인들과 천사들의 노출된 성기 부분을 가리게 한 것이 어쩌면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게다가 성서의 인물들 틈에 느닷없이 끼어든 이교의 여예언자들은 정말이지 이상하다.

이러한 수수께끼에서 저자는 이 소설을 시작하고 있는데, 곧 사건은 고문서 보관소와 비밀 문서고의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그리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반향을 보게 된다. 세계는 거대한 도서관이고 당신이 원하는 모든 지식을 담고 있지만 언제나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이 소설은 지적 자극을 주는 특이한 스릴러이다. 그러나 인물 묘사는 평면적이고, 사건 진행은 빠르나 <장미의 이름>이 주었던 깊은 울림은 없다. 아마 소재나 주제에 비해 분량이 좀 적은 탓도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어쨌든 잘 짜여진 소설이고, 이 소설로 인해 이 르네상스의 위대한 천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어빙 스톤의 소설처럼 쉽게 쓰여진 책,<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를, 그리고 피렌체의 역사와 분위기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께는 영의 <메디치>를 권하고 싶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의 후원자였던 위대한 가문의 이야기이며, 더불어 미술과 건축에 대한 지식도 많이 넓힐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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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전쟁 2 - 빛과 어둠의 여정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번 외 옮김 / 예문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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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우리나라에 판타지 열풍이 불기 이전에 읽었다. 정독도서관의 영문학 서가 한켠에 꽂혀있는 책을 발견하고는, 그 제목에 이끌려서 읽었는데, 읽은 후에는 책을 직접 사서 읽었고, 조금 더 지나서는 영문판도 구입하여 다시 한 번 읽었다.

이 책의 무엇이 그토록 나를 매혹시켰는지는 사실 말하기 쉽지 않다. 나는 원래 동화적인 분위기의 책들을 좋아하는데다, 읽어본 분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굳이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비트들이 없었더라도 과연 내가 이 작품을 그렇게 좋아할 수 있었을까. 사실 중간계에는 여러 매력적인 존재들이 살고 있지만, 호비트들만큼 사랑스러운 존재는 없다. 여러권의 책을 통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톨킨의 애정 역시, 이 조그맣고, 먹성 좋고, 명랑한 존재들에게 가 있었으리라는 것을, 행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 작품의 분위기가 밝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절대반지로 상징되는, '절대적으로 부패하고야 마는' 절대권력의 알레고리, 이종족간의 갈등, 잃어버린 낙원의 상징, 선악의 대립과 의지의 문제 등의 무거운 주제의식들이 깔려있다(그것이 그저 시간 죽이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수많은 판타지 문학과는 다른 점이다).

특히, 굳이 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심지어 악의라고는 없는 빌보 같은 호비트조차도) 타락시키고야 마는 절대반지를 통하여, 톨킨은 권력의 본질에 근접하고 있다.

그 두려운 선물을 짊어지고 운명의 산을 오르는 프로도와 샘와이즈에게 어떻게 박수와 격려를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들의 슬픔과 두려움,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세계가 나의 세계가 되고, 그들의 모험이 나의 모험이 되는 이 즐거움을 아직도 누리지 못한 독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이 책의 전편(빌보가 용과 싸우러 갔다가 반지를 발견하게 되는 경위가 자세히 나온다)인 <호비트>와 이 책의 시대 배경인 제3시대 이전의 신화와 전설에 관한 책인 <실마릴리온>도 함께 읽는다면 톨킨이 얼마나 방대하고 정교하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는지 실감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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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비망록 -상 - 세계현대작가선 9
주제 사라마구 지음 / 문학세계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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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마구의 다른 작품들, <눈먼 자들의 도시>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2복음>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고른 책이었다. 이미 영광을 잃어버린 18세기의 포르투갈을 무대로, 일종의 비행선인 '빠사롤라'를 만드는 바르톨로메우 신부, 그를 돕는 발따자르와 블리문다, 그리고 후손을 얻은 대가로 거대한 수도원을 지으려는 주앙5세의 이야기가 매우 섬세하게 얽혀있는 소설이다.

보르헤스를 위시한 남미 작가들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리고 유럽의 카톨릭 전통에 약간의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별 어려움 없이 이 소설의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권력자와 성직자들에 대한 시니컬한 위트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따뜻하면서도 약간은 슬픈 울림을 갖는 것은 언제나 발을 땅에 딛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조건의 서글픔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의지 간의 대립 때문이다.

바르톨로메우 신부는 빠사롤라를 만들지만 그것을 완전히 통제하는데 실패하고 결국은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마저 잃어버린다. 주앙5세는 로마의 산 피에트로의 복사판을 만들려 하지만 그렇게 거대한 성당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규모를 줄여야만 했다.

인간의 의지로 날아가는 빠사롤라에 타고 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날아가던 발따자르는 결국 종교재판소에 의해 화형당한다.

그들 모두,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해보려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 그것은 권력을 쓰는 사람이나 권력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이었다. 공동번역, 그리고 영어판에 의한 중역이라는 한계가 여러곳에서 발견되었다. 아마도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 수상 후에 급히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은데, 출판사들은 독자들이 수상작을 얼른 읽는 것 보다는 제대로 된 번역작품을 원한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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