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비망록 -상 - 세계현대작가선 9
주제 사라마구 지음 / 문학세계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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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라마구의 다른 작품들, <눈먼 자들의 도시>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2복음>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고른 책이었다. 이미 영광을 잃어버린 18세기의 포르투갈을 무대로, 일종의 비행선인 '빠사롤라'를 만드는 바르톨로메우 신부, 그를 돕는 발따자르와 블리문다, 그리고 후손을 얻은 대가로 거대한 수도원을 지으려는 주앙5세의 이야기가 매우 섬세하게 얽혀있는 소설이다.

보르헤스를 위시한 남미 작가들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리고 유럽의 카톨릭 전통에 약간의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별 어려움 없이 이 소설의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권력자와 성직자들에 대한 시니컬한 위트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따뜻하면서도 약간은 슬픈 울림을 갖는 것은 언제나 발을 땅에 딛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조건의 서글픔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의지 간의 대립 때문이다.

바르톨로메우 신부는 빠사롤라를 만들지만 그것을 완전히 통제하는데 실패하고 결국은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마저 잃어버린다. 주앙5세는 로마의 산 피에트로의 복사판을 만들려 하지만 그렇게 거대한 성당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규모를 줄여야만 했다.

인간의 의지로 날아가는 빠사롤라에 타고 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날아가던 발따자르는 결국 종교재판소에 의해 화형당한다.

그들 모두,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해보려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 그것은 권력을 쓰는 사람이나 권력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이었다. 공동번역, 그리고 영어판에 의한 중역이라는 한계가 여러곳에서 발견되었다. 아마도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 수상 후에 급히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은데, 출판사들은 독자들이 수상작을 얼른 읽는 것 보다는 제대로 된 번역작품을 원한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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