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정혜윤, 그의 슬픔과 기쁨(후마니타스, 2014)

정혜윤은 이 책을 통해 국내에 '르포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는데, 독자들이 르포에 좀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는 장르로 '에세이'가 편하긴 하다.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조금 다른 지점을 보고 싶다. 우리가 안다는 것, 타자의 현실을 알고, 그간의 싸움의 과정을 알고, 그 싸움의 주체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사실이니까.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것이 소비된다는 점. 슬픔이 소비되고, 참혹한 현실이 소비된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작가의 시점을 망각한 것은 아닐까. 싸움의 주체들이 공장으로 들어가면 끝나버리는 것일까. 많은 질문을 던졌으나, 그리고 그 파장이 적지 않았으나 돌연 이런 생각으로 주저앉게 만든다. '그러니까 왜 싸우는 거지?' 그들의 싸움이 나의 싸움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런 싸움을 피하면서 살고 싶게 만드는 이 거지같은 감정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이건 타자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다 알겠으나 ''들의 고립감을 더 깊게 하는 이건 뭘까? 고민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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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공지영, 의자놀이-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휴머니스트, 2012)

올해 초 길 위에서 싸운 지 7년 만에 회사로 복귀한다는 고마운 문자를 받았다. 감동적이었다. 그분이 얼마나 회사로 들어가고 싶어했는지,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했는지, 다시 시작하고 싶어했는지,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었던 주변 사람 하나하나에게 문자를 돌리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2012년 출간된 '의자놀이'는 우리가 지켜주고 싶었던, 더이상 해고자가 죽음으로 몰려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에 의해 쓰여졌다. 나는 '의자놀이'라는 명명이 이 시대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여겼다. 책을 폈을 때 처음부터 7분간의 살려달라는 절박한 절규가 나왔다. 그것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1년 사이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들의 사연은 나 또한 모든 걸 버리고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끌어당겼던 사건이 아니었던가. 작가는 그런 순간들, 그러니까 작가인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꼈을 그 순간들을 찬찬히 기술하며 이입하도록 이끌고 있었다. 역시 공지영 작가의 글은 어렵지 않게 빨려드는 힘이 있구나. 괜히 공지영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작가의 진심을 공격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나라면 어땠을까'를 고민하는 작가의 질문들을 보았다. (책과 관련된 문제들을 보았지만 무엇이 맞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직접 들은 말이 없기도 하고. 좀더 솔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정도만 적자.) 그러나 자신의 진심이 공격당할 때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걸 보면, 무언가 쓴다는 건 여전히 힘든 싸움이라는 것만 간신히 알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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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박점규, 노동여지도-두 발과 땀으로 써내려간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의 풍경(알마, 2015, 4)

투쟁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박점규의 시선은 귄터 발라프의 시선과 닿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믿게 된다. 물론 투쟁을 전투의 양상으로 기술하려는 그의 긴박함이 너무 쉽게 적과 아를 구분하는 이분법이어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런 불편함 정도는 내것으로 흡수하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지난해 스타케미컬에 다녀온 후 바로 구입해 보았는데, 말 그대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노동여지도이다. 투쟁장은 이제 전투장이 아니라 너무 흔한 풍경이 되어버렸다는 인식이 나와 닿았다. 이 풍경을 바꾸고 있는 것도 투쟁이라는 비극적인 낙관의 세계가 내가 그의 글을 신뢰하는 이유다. 도시와 노동의 현장을 함께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글은 조금 느슨해지고 편집을 위해 이전의 글을 다듬어 엮은 듯 보이지만, 내 사고가 서울에 한정되어 있는 데 반해 그의 활동 범위는 현재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노동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어 그 분투가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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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박점규, 25-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울산공장 점거 투쟁 기록(레디앙, 2011, 7)

이 책이 나왔을 때 얼른 사서 보았다. 그때는 20101115일부터 129일까지 울산의 현대자동차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더 속속들이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예상대로 박점규의 기록은 그 현장의 상황을 치열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201011월 울산 제1공장으로 노동자들이 몰려들고 점거파업을 시작하는 그 장면들, 그리고 25일 만에 직권조인으로 허물어져버린 그 안타까움들이 책 속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뭘 본 걸까. 지금 다시 들쳐보니 너무 하얗다. 미안하다. 뭘 봤는지 알 수가 없다. 왜일까. 이건 내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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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정택용, 너희는 고립되었다-기륭전자비정규투쟁 1890일 헌정사진집(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10)

카메라는 본다. 차벽에 낙서된 퇴진하라. 카메라는 밖에 있지만 안을 보고 있다. 철문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아이 뒤에서 아이가 무엇을 만지려고 하는지. 카메라는 비켜서지 않고 당당하게 그들을 본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철문을 사이에 두고 연대하는 사람들. 검은 밤 기타를 든 노래를. 팔뚝질하는 여성 노동자의 웃음들. 포크레인이 갈아엎고 있는 투쟁장을. 투쟁장이 사라진 밤의 눈들. 공장의 사망을 선고하는 행렬을. 손바닥으로 쓰여진 구속하라는 결기를. 시민들에게 절을 하는 오체투지를. 빗속에 어깨까지 쳐진 처량함을. 머리칼을 깎는 울음들을. 포크레인에 올라탄 투쟁가를. 천막 속에서 노는 아이를. 한 이불을 덮고 추위를 녹이는 이야기를. 봄 속에 활짝 핀 한때를. 투쟁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을. 생일파티를. 결혼을, 출산을. 죽음을. 결혼식의 팔뚝질을. 길거리의 춤을. 눈보라 속의 연대를. 그들은 카메라를 본다. 그들을 보는 카메라가 그들을 닮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팔뚝질도 한다. 그들은 본다. 고립된 우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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