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정택용, 너희는 고립되었다-기륭전자비정규투쟁 1890일 헌정사진집(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10)

카메라는 본다. 차벽에 낙서된 퇴진하라. 카메라는 밖에 있지만 안을 보고 있다. 철문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아이 뒤에서 아이가 무엇을 만지려고 하는지. 카메라는 비켜서지 않고 당당하게 그들을 본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철문을 사이에 두고 연대하는 사람들. 검은 밤 기타를 든 노래를. 팔뚝질하는 여성 노동자의 웃음들. 포크레인이 갈아엎고 있는 투쟁장을. 투쟁장이 사라진 밤의 눈들. 공장의 사망을 선고하는 행렬을. 손바닥으로 쓰여진 구속하라는 결기를. 시민들에게 절을 하는 오체투지를. 빗속에 어깨까지 쳐진 처량함을. 머리칼을 깎는 울음들을. 포크레인에 올라탄 투쟁가를. 천막 속에서 노는 아이를. 한 이불을 덮고 추위를 녹이는 이야기를. 봄 속에 활짝 핀 한때를. 투쟁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을. 생일파티를. 결혼을, 출산을. 죽음을. 결혼식의 팔뚝질을. 길거리의 춤을. 눈보라 속의 연대를. 그들은 카메라를 본다. 그들을 보는 카메라가 그들을 닮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팔뚝질도 한다. 그들은 본다. 고립된 우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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