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게르만 신화와 전설, 라이너 테츠너(범우사, 2002)
범우사에서 출간하는 세계의 신화 시리즈는 현재 6권(이집트, 인도, 유럽, 스칸디나비아, 중동, 게르만 신화)까지 나왔으나 좋은 책을 허접하게 번역하고 엉망으로 편집한(교정을 본) 대표적인 책이다. 라이너 테츠너라는 이름에 걸맞는 번역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최근 북구 신화를 소개하는 다른 책들(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2>, 외대출판부에서 나온 <동유럽신화>)이 출간되었으므로 그것으로 대체해서 읽어도 좋겠다.
게르만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와 영웅들의 이야기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들의 이야기는 북유럽 신들 중 최고의 신인 오딘의 탄생과 세계의 형성, 아제신족(오딘과 대지의 여신 요르트=농업신 토르, 비프뢰스트 파수꾼인 하임달, 루네문자을 알고 있고 푸른구름을 타고 망또를 입고 있는 흰수염의 오딘과 지혜의 여신 프리그=태양과 빛의 신 발더, 후일 로키의 간계에 속아 토르를 살해하는 장님인 회트와 황금사과를 관장하는 이둔 여신, 거인족의 젊은이이지만 오딘의 양아들로 받아들여져 후일 아스가르트를 파괴하는 로키)과 바네신족(평화와 번영 수확을 관장하는 풍요와 여름의 신 프라이과 결혼하는 거인족 기미르의 딸 게르티, 그들의 자식인 인간의 왕 푈니르, 프라이의 친구인 스키르니르), 그리고 라그나리크라고 불리는 펜리스 늑대족, 거인족, 난쟁이족(어둠의 요정이라고도 하며 구더기들에서 태어났으며 이들이 사는 곳은 슈바르츠알펜), 요정족(알펜하임) 들의 발생과 정착, 장소의 형성 과정(미드가르트-아스가르트-우트가르트, 신들의 회의장소이자 우주목인 이그드라실은 물푸레나무), 세계창조 과정과 불화, 그리고 신들의 황혼을 이야기 축으로 전개된다.
로키가 신들을 배신하는 것은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시킨다. 로키가 토르(발데르)를 살해하기 위해 장님 회트에게 화살을 쏘게 하는데 그 화살이 토르의 심장을 맞추게 된다. 모든 사물들이 토르를 지키기 위해 계약을 맺었으나 겨우살이만이 그 계약을 듣지 못했는데 회트가 쏜 화살이 그 겨우살이 가지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벌로 로키는 바위에 묶이고 이마 위에서는 독뱀이 침을 흘리고 있기 때문에 그 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로키의 아내 지긴의 역활이 재밌다. 지긴은 로키를 지켜주기 위해 그 옆에서 독뱀의 독을 그릇에 받는 벌을 자진해서 수행하게 된다. 로키의 무엇이 지긴으로 하여금 그를 지켜주게 해주었을까.
영웅들의 이야기는 이러한 신들의 황혼을 지나 지그프리트와 니벨룽엔의 보물의 주인 크림힐트의 만남, 브륀힐트와 지그프리트의 만남, 군터와 지그프리트의 만남을 축으로 해서 최후에는 하겐의 계락으로 지그프리트가 죽게 되고 이로 인해 훈족인 에첼왕의 부인이 된 크림힐트가 부르군트 사람들을 훈족의 나라에 초대함으로써 절정에 달한다. 물론 이 전쟁에서 크림힐트를 비롯해서 부르군트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다만 대장쟁이 뷜란트, 베른의 디트리히와 그의 스승인 힐데브란트만 살아남아 디트리히가 자신의 나라를 되찾는 과정이 전개된다.
독일 영웅서사시의 근간이 되었고 바그너의 오페라나 문학작품의 소재로도 고전이 된 '니벨룽엔의 반지'에 얽힌 이야기가 게르만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한 것이며 햄릿의 작품 또한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화가 이야기로 되어 구전되면서 각 시대의 전형적인 작품인 예술로 수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