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살아 있는 숲, 레미 사바르(검둥소, 2008)

가령 아주 먼 곳을 땅이라고 하지 않고 얼음이라고 해본다. 술래가 나를 잡으려고 할 때,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얼음일 때,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하다 술래의 손끝이 내 몸에 닿기 전, 구원자임을 포기해야 하는 찰라, 그때를 아주 먼 곳, 얼음이라고 발음해본다. 땅은 아마도 땡에서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춥고 척박한 땅을 우리는 얼음이라고 배웠다. 얼음의 땅에 씨앗을 심으려면 여름을 훔쳐와야 하고 여름을 여름답게 하려면 겨울이 필요하다는 균형감을 이야기를 통해 전달해내는 어른들이 있는 땅, 가령 그곳을 숲이라고 발음한다면 그 숲은 얼마나 깊고 어두울까. 이뉴잇은 자신들을 '이뉴잇'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뉴잇은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얼마나 절박한 단어인가. 얼마나 넓은 단어인가. 얼마나 어두운 단어인가. 그들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이야기라고 한다. 사람들의 작은 무리가 흩어져 살아가다 한 해가 지나기 전 흩어졌던 강줄기로 다시 모이는 때, 그때 그들은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다른 영토의 사위와 딸들이 돌아오고 아들과 손자들이 돌아오고 딸들과 어머니들이 모여 먼 곳을 돌아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자신들이 보고 겪은 이야기를 전달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털실 삼아 모자를 짜듯 이야기를 엮어 들려준다고 한다. 하늘이 내린 고아 차카페슈가 사냥꾼의 생활을 접고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 하늘다리(은하수)를 만들어 달이 된 이야기, 버려진 아이가 미스타페우 할아버지를 만나 울음으로 여름사냥을 독려하는 이야기, 여름의 끝에 흩어진 가족들이 만나 이야기를 만드는 축제 우에파타우취히카트, 여름아이들과 겨울아이들이 나누어 힘자랑을 하는 이야기, 늙은 부모를 버리자 늙은이가 점차로 젊어져 손녀를 아내로 삼았으나 말라빠진 고추와 다 빠진 이빨 때문에 들통이 나는 심술맞은 이야기, 하늘로 올라간 동생이 누나를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 밑에서 치마 속을 훔쳐보는 이야기, 하루라도 빨리 축제에 참석하고 싶어 어린 아이를 양말도 안 신기고 얼음땅에 버리고 도망치는 부모 이야기, 여름을 훔치고 달아나다 여름 무리에게 잡혀 겨울을 나눠주고 여름을 얻기 위해 딱따구리의 발가락을 보고 여름을 여섯 달로 정한 이야기, 버려진 아이의 피를 빨아먹는 머릿니를 모두 잡지 않고 머릿니 가족인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서캐까지 다섯 개는 남겨놓은 이야기...

 

가령 봄을 봄이라고 하지 않고 '쉬쿠안'이라고 해본다. 여름을 여름이라고 하지 않고 '니핀'이라고 해본다. 가을을 가을이라 하지 않고 '타쿠아췬'이라고 해본다. 겨울을 겨울이라 하지 않고 '피푼'이라고 해본다. 아프리카 어느 곳에 열세 번째 달이 있듯 피푼과 타쿠아췬 사이 초록이 돌아오는 다섯 번째 계절 '미니슈카마우'를 넣어본다. 타쿠아췬과 피푼 사이에는 초록이 돌아가는 여섯 번째 계절 '피취피푼'을 넣어본다. 꽃을 '우아피쿤'이라고 해본다. 이제 아주 먼 나라의 깊은 단어들을 발음해본다. "목소리는 하나의 의미이며 삶의 표현"이라고 믿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