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나무의 신화, 자크 브로스(이학사, 1998)
자크 브로스는 나무를 중심으로 신화를 재해석한다. 켈트 신화에서 라그나뢰크(신들의 황혼기)에 살해된 발데르가 전 우주의 화재 속에서도 불타지 않은 물푸레나무로 아침에 핀 장미를 양식 삼아 살아나고 제우스와 토르는 참나무를, '나무 속에 살며 일하는 자'인 디오니소스는 담쟁이덩굴과 무화과나무를, 포세이돈(포티조potidzo와 이다ida가 합쳐져 '숲이 우거진 산 속에서 마실 것을 주는 자'라는 뜻)은 물푸레나무의 신이 된다. 각 지역의 우주목, 생명의 나무인 북구의 이그드라실, 에리두(물의 집)의 키스카누(에덴 동산의 나무가 아닐까. 훌룰프나무?), 중국의 키엔 모우建木(??)나 복숭아나무, 뽕나무, 북아시아의 전나무,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참나무 등에 얽힌 신화와 역사가 재미나다. 인도에서는 고행자들의 깨달음의 나무인 거꾸로 선 나무 아슈밧타(바타나무는 무화과나무, 아슈밧타는 불멸의 무화과나무이다. 이는 기독교의 세피로스의 나무나 유대교의 상징인 메노라menorah 촛대와 같은 성물이다)가 있다. 온갖 박해에도 되살아난 보드 가야의 나무, 석가모니가 출생한 룸비니 정원의 아소카나무(고통을 파괴하는 나무), 히말라야의 전설적인 숲에 사는 '감부'(어린 싯다르타가 무상보리의 달콤함을 맛보았던), 석가모니가 돌아갈 곳을 정해놓은 살라 나무,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고독의 나무인 플라타너스...
나무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 어린 딸에게 남무南無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아서 구해놓고 천천히 읽었다. 읽다보면 나무는 우주가 창조될 때 최초로 생겨난 말(言, 르쉬트reshith)에서 온 것 같기도 하다. 창세기(베레쉬트)는 나무로부터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르카디아인들은 자신들이 인간이 되기 전에 참나무였다고 믿었으며 그리스어로 매미(드뤼오코이테스dryokoites)는 '나무 안에서 잠자리에 드는 자'라는 뜻이다. 고어로는 테틱스tettix라 하여 '노래하는 자' 즉 시인과 동의어였다고 한다. 인간이 매미와 형제지간이라면 꿀벌(멜리사melisa, 시인)이나 청딱따구리(드뤼오코푸스 마르티우스dryocopus martius, 나무를 쪼아대며 점을 치는 자, 그리스의 마르스, 금성까지 확장된다) 또한 형제였을 것이다. 이뉴잇이 천둥이 치기 전에 나오는 뿔이 난 천둥벌레를 보며 미스타페우 할아버지를 상상한 것과 같은 원리다.
*참나무 열매로 만든 빵은 페고스phegos라 하여 18세기까지 말랑한 빵의 주원료였다고 한다. 물론 이는 다산을 기원하는 최음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참나무 열매는 그리스어로는 발라노스balanos라 하고 라틴어로는 글란스glans라 하는데 동일한 어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둘다 '발기된 남근'을 지칭하는데 엣지 있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밸런스balance나 글래머glamour도 여기서 오지 않았을까. 페고스에서는 페니스penis를 추측할 수도 있는데(아님 말구) 그러니까 어쨌든 먹는 거구나.
두 '나무' 사이에 줄을 매고 판을 놓고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그네' 또한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인 충동을 놀이로 위장함으로써 흥분을 느낄 수 있었던 놀이였던 셈이다. 실제 그네를 탈 때 약간의 짜릿함은 오르가슴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 왜 오줌을 쌀 것 같은.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내려올 때 아악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도 비슷하다. 나만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젊은 시절 연예 코스 중 놀이공원에 한두 번쯤 다녀오는 것도 비슷한 심리가 아니었을까. 인도에서는 그네의 움직임을 낮과 밤이 교대하고 계절이 순환하는 시간의 리듬으로 보았으며 비를 기원하는 봄철에 그네를 띄우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앗싸, 단오놀이가 있구나. 성적인 발산과 다산, 비, 풍요가 연결되는 오래된 습관이 젊은이들을 놀이공원으로 모이게 하는 걸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