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었는지에 따라 기억의 밀도는 달라지곤 한다. 박태순 선생의 중편소설 「밤길의 사람들」은 여고 2학년 때 순전히 제목 때문에 도서관에서 꺼내든 소설이었다. 처음엔 슬쩍 읽고 꽂아놓으려 했으나 나중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책장을 덮었다. 유월항쟁의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명동성당이 시간의 비탈길이었구나... 소설을 통해 그 혼란이 아름다운 것으로 스며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쓴 것이 아래 글이다.

오늘이 가기 전,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민중을 기록하라』(실천문학사, 2015)에 실린 선생의 「소신(燒身)의 경고(警告)」를 다시 보았다.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생의 고뇌가 보인다. 선생의 글에 대한 고뇌와 경고와 같은 발품, 글품을 새겨야겠다.

 

‘밤길의 사람들’과 명동성당, 그리고 광장의 비탈길

삼월 초 그 길을 다시 찾았다. 내가 가려는 곳은 서울의 가장 비싼 땅 언덕 위에 있었다. 예전 주소대로 하면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1번지. 명동(明洞)이라는 ‘밝은 동네’의 1번지라면 그곳의 역사를 한 마디로 대변해주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명동성당’이라는 이름은 1945년 바뀐 것이고 그 전에는 ‘북고개’라는 지명을 따서 종현(鍾峴)성당으로 불렸다. 이름이란 건물보다 힘이 세서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가을 축제명도 ‘종현제’였다.

지하도를 나오면 바로 보여야 하는 곳, 그 언덕의 뾰족지붕이 고종 시대에는 문제였다고 한다. 임금이 있는 경복궁보다 높은 곳에 성당이 지어진 것도 문제인데 그 성당의 건축 양식이 하늘을 찌를 듯 뾰족했던 것이다. 뾰족할 뿐 아니라 건물은 나무나 돌이 아니라 벽돌로 지어졌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건축물이면서 벽돌로 지어진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고딕이라고 불리던 이런 건축 양식이 조선조 말 양반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고종은 즉각 성당의 건축을 중단하라고 명하고 금교령을 내려 성당으로 모여들 새로운 종교 세력, 즉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하도를 빠져나오자 당연히 보여야 할 뾰족지붕이 보이지 않았다. 명동4지구 개발로 언덕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언덕을, 그 위에 라틴 십자가형 삼랑식 위에 지어진 46.7미터의 종탑을 가리고 있었다. 서울에 경복궁보다 더 높은 건물은 지어질 수 없다고 상소를 올렸던 조선의 권력자들도 성당의 종탑보다 더 높은 자본의 시대를 예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변한 것은 성당을 둘러싼 건물들만이 아니다. 개발은 성당으로 오르는 길 자체도 지워버렸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매일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 예수님 상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학교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세상을 껴안을 듯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 상도 없어졌고 양 옆에 계단을 끼고 오르는 비탈길은 작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김성희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에 관한 만화 『빨간약』(보리, 2015)에서 그 비탈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명동성당 비탈길은 시위자들의 요구가 버티던 곳”으로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도록 내준 곳”이었다고.

내게도 이 비탈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비탈길에 들어서 있던 수많은 천막들과 밤을 잊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그들의 요구를 힘겹게 걸어놓던 곳, 그리고 1991년 6월 말 37일 만에 농성을 풀고 저 비탈길을 걸어나오며 “국민들이 어느 정도 당신을 믿는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그를 기억하고 있다.

 

“상식을 갖고 있는 국민은 모두 저를 믿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상식이 무너진 험악한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그때는 몰랐다. 유서를 대필했다는,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던 강기훈의 죄 없음이 24년이 지나서야 무죄 선고를 받게 될 줄을. 그가 왜 성당으로 피신했고, 저 비탈길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어야 했는지를. 당시 이 사건을 전두 지휘했던 법무부장관이었던 김기춘이 이제야 구속 수사를 받게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었던 것을 보면 어떤 각인된 기억의 유효기간은 진실이 밝혀지는 시효와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계단을 올라 성당을 둘러보았다. 지하성당에도 들르고 성바오로 수녀회 앞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런데 3월 초 평일 오후인데 성당 뜨락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안의 모습도 어딘지 스산했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올 시간인데 계성여고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그때서야 학교가 이전할 거라는 소문이 떠올랐다. 집에 와 찾아보니 실제로 학교는 작년 초에 마지막 졸업식을 하고 더 이상 그곳에서 입학생을 받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면 이름도 사라지는 것이다.

이제 고백해보자. 수녀원과 붙어 있는 저 학교의 도서관을 나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도서관에서 뽑아본 책들 중 하나가 채광석과 김명인이 엮은 풀빛소설서 중 첫 권이었던 『밤길의 사람들』(풀빛, 1988)이었다. 도서관에서 저 책을 뽑아들던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나는 그저 소설 제목이 좋았다. ‘밤길의 사람들’이라니, 뭔가 흥미진진한 밤의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의 시작은 이랬다.

 

“만약에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이 시대를 찾아왔다면 도대체 이처럼 이상한 야단법석이 어떻게나 되어버린 퉁구니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영등포에서 시작된 남자와 여자의 맞선이 명동의 밤으로 이어질 때는 선 채로 책을 보다 다리가 아파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문예부 선배들이 얘기하던 6월 항쟁이, 경적을 울리기로 약속된 시간으로 향해가는 명동의 밤이, 밤길을 돌아 명동성당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나도 모르게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내가 매일 오르던 비탈길을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시간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시간의 비탈길은 이 광장에서 여섯시를 향하여 가파른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길에서 해매이던 그 시간의 비탈길은 내가 6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가 된 셈이다. 작가는 1987년 6월 10일을 다섯시 오분, 다섯시 사십분 등으로 쪼개어 조각보처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명동이 해방구가 되어가는 그 시간의 멈춤과 폭발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명동은 시민들의 해방 공간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커다란 삼태기에 콩을 잔뜩 담아 까불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였다. 병신춤, 배꼽춤을 추듯이 하는 사람들. 문자 그대로 길길이 날뛰고들 있는 사람들.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열나게 외쳐대고 있는 청춘들. (…) 그야말로 병신 꼴값들을 하는 것이었으며 놀랄 노 자(字)의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 혼란, 무질서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간은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해방을 구가하고 있었다. 서춘환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가를 정말이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 시간의 폭발과 무질서 속에서 남자는 여자를 찾아 명동성당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날마다 밤길의 사람들 속에 끼어 “마치 알지 못한 자력에 끌리기라도 하듯” 새로운 기질을 만들어가는 밤길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은 “최루탄이 터지면 마치 불꽃놀이에 놀란 강아지들처럼 흩어졌”다가 “금세 다시 모여들”면서 “결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무너진 상식을 되돌리는 사람들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숨 가쁘게 달려왔던 탄핵 촛불 항쟁이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헌제 앞에서 탄핵 인용을 기다리다 ‘파면’이라는 말이 터지자 “이겼다”는 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30년 전 명동성당으로 모여들며 20여 일을 버티던 밤길의 사람들은 이번에는 연인원 1,700만이 넘는 촛불이 되어 스무 번의 토요일을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상식을 세운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또 보았다. 왜 우리 애들은 안 되냐고, 광장에 우리만 남으면 어떻게 하냐고 고개를 숙이고 울던 유가족들이 “우리가 너희의 부모다”라고 울부짖으며〈약속해〉의 노래를 부르는 광장의 비탈길을. (<작은책> 2017.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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