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침대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고서야 흔들거리는 내 다리가 침대 아래 넣어둔 트렁크에 부딪히는 걸깨달았다. 지금의 나보다 한 살 많은 열여섯 살 때 엄마가 샀던 트렁크였다. 엄마는 그 안에 가진 짐을 다 넣은 뒤, 도미니카의 부모님 집을떠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미니카를 떠나 앤티가로 왔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독립하여 혼자 살 것인지, 엄마의 아빠 뜻대로 계속 부모님 집에서 살 것인지, 그 문제로 엄마의 아빠와 대판 싸운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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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트렁크 안에는 내 삶의 모든 것이 각 단계별로 담겨 있었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더라도 나에 대해 상당히 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내 발뒤꿈치가 트렁크를 칠 때마다 내 가슴이 무너져내렸고,
난 울고 또 울었다. 그 순간 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마가 그리웠고, 어딘가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또한 엄마가 죽어버려 완전히 쪼글쪼글해진 모습으로 관 속에 누워 내 발치에 놓여 있는 걸 보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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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나를 보며 원하믄 것이 있냐고 물었다.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 트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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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곁눈질로 엄마를 살폈다. 다시 반대쪽을 곁눈질하니 불빛을 받아 벽에 드리워진 엄마의 그림자가 보였다. 커다랗고 견고한 그림자였고, 얼마나 엄마를 똑 닮았는지 덜컥 겁이 났다. 앞으로 사는 동안 어떤 게 진짜 엄마고 어떤 게 세상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선 엄마의 그림자인지 구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 P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