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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요리 앞에서는 사랑이 절로 생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이온화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먹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요리책도 좋아하고 꼭 요리책이 아니더라고 음식과 관련된 모든 책들, 또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부류의 책에 가끔씩 등장하는 음식 이야기도 두루 좋아한다. 덕분에 이 책도 오랫동안 내 '미래독서목록'에 올라 있었고 얼마 전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책은 읽기 전에 예상했던 그 어떤 부분도 완전히 만족시켜주지를 못했다. 괴테의 글 속에 나타난 음식들을 독일 최고의 요리사가 직접 요리해서, 괴테의 팬들이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자신의 우상이 먹던 음식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취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괴테의 글 쪽에 중점을 뒀다고 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인 글들만이 나열되어 있고 요리에 중점을 뒀다고 하기에는 소개된 요리의 가짓수가 너무 적은데다가 그나마 괴테 시대의 요리법도 아니다.
괴테의 글은 시와 여러 여자들(애인, 부인, 며느리 등)에게 보낸 편지글, 기행문 등이 섞여 있는데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지도 않고 어떤 특정한 카테고리별로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니라 산만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내용이 너무 단편적이라서 마치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된 발췌문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음식과 관련된 글들만 따로 뽑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뭔가 일정한 기준을 두고 정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편집자의 정성이 아쉽다.
또 요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요리사가 맡았는데, 독일식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정쩡하고 내가 보기에는 이탈리아식과 프랑스식이 섞인 요리법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괴테의 글에 맞춰 장만한 요리라고 하면 최소한 독일식이거나 아니면 괴테가 살던 당대의 요리법을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요리의 주재료만 괴테의 글 중에 언급된 것을 썼을 뿐 나머지는 요리사 마음대로다. 한마디로 책의 기획 의도와 사뭇 다르게, 글과 사진이 서로 어울리기는 커녕 삐걱거리며 겉돌고 있다.
물론 글내용과 요리를 따로 두고 본다면 둘 다 상당한 수준들이지만 전체적인 조화가 안 이뤄졌기에 내용도 빈약하고 볼거리도 없는 평범한 책이 되어버렸다. 이왕 이런 기획을 한 바에야 좀더 공을 들여서 괴테의 팬들도 만족스럽고 나같은 요리책 팬들도 만족스러운 책을 내줬더라면 좋았을 걸, 결국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졸작이 되어버려 아쉽다. 큰 기대를 걸지 않은 사람만이 후회 없이 책장을 덮을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