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밀키웨이님 서재에 놀러가서 미하엘 엔데에 관해 쓰신 글을 읽고 따라쟁이 대장인 나, 미하엘 엔데에 대해 떠들고 싶어졌다. (밀키웨이님, 욕하지 말아주세요. ㅠㅠ)
내가 유명인의 부고를 접하고 충격을 받은 적이 세 번 있는데, 그 첫번째가 아이작 아시모프(1992), 두번째가 리버 피닉스(1993), 그리고 세번째가 미하엘 엔데(1995)였다. 아시모프는 아니지만 뒤의 두 명은 좀더 오래 살아 세상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줄 만한 사람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아쉽다.

미하엘 엔데를 처음 접한 건 역시 <모모>를 통해서였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어쩌고 하던 노래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우리 나라에서의 <모모> 열풍은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당시 너무 어렸던 나로서는 <모모>가 다루는 그 세계 자체의 심오함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재미있는 동화책이라고만 생각하고 되풀이 읽었었다.
그러다가 '모모'의 열풍에 힘입어 엔데의 책 몇 권이 더 우리 나라에 소개되었는데, 그 하나는 모모의 남자친구 이야기라나 뭐라나 하는 <제제>(제목이 정확치 않은데, 하여튼 두 글자짜리 사람 이름이었다)라는 책이었는데 이건 지금 생각해보면 엔데 작품이 아니라 우리나라 출판사들에서 잘 만드는 급조된 짝퉁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현재 찾아볼 수 있는 엔데 작품 목룍에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 즈음 진짜 엔데 스타일의 동화를 발견했으니 바로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 시리즈. 진짜 제목은 저게 아니고 시리즈의 각 권마다 다른 제목이 붙어 있었지만 나와 내 동생은 그냥 '짐 크노프' 또는 '루카스'라고만 불렀다. 매일 밤마다 서로 자기 베개맡에서 읽느라고 얼마나 싸워댔던지.. ("야, 내 '짐 크노프' 내놔!" "이게 언니 거야? 내 거지!" -_-; 사실, 동생 책이었다) 예쁜 빨간 기관차가 폭폭거리며 터널을 지나가고, 귀여운 임금님이 계시고, 마음 착한 아주머니가 개구쟁이 짐을 보살펴주는 그 작디작은 섬나라. 얼마나 그 곳에 가서 살고 싶었던지...(물론 짐이 자라면서 인구 문제를 걱정할 정도의 쪼끄만 섬이었으니, 내가 감히 어찌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을까만은..)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가 가장 라븅하는 엔데 작품은 <끝없는 이야기>!!! 읽고 읽고 또 읽고 책장이 나달해질 때까지 읽다가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운 장정으로 나오면 또 사고 또 사고.. 그리고 언제던가 <끝없는 이야기> 영화가 국내 개봉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너무 설레며 기다렸는데, 전혀 유명하지도 홍보를 제대로 하지도 못한 그 영화는(근데 이상한 건 그 영화가 분명 별로이긴 했지만 어쨌든 스티븐 스필버그 사단의 작품이었는데 어찌 그리 소홀히 대해졌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일류 개봉관에는 전혀 안 걸리고 이름도 처음 들어본 압구정동 뒷골목의 영화관에서만 상영되는 바람에 물어물어 간신히 찾아가서 봤었다. 그리고 영화 자체에는 너무 실망했지만(역시 엔데의 상상력을 화면에 그대로 펼쳐내기에는 당시의 영화 기술이 너무 열악했었고, 주인공들도 별로였다. ㅠㅠ 특히 아트레유가 그런 모습이면 안 된다구!!!) 기념품으로 준 짝퉁 '아우린' 메달과 책받침;;을 받아들고는 나름대로 만족하며 극장문을 나섰던 기억이.. 그 아우린 메달은 아직도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 만난 <자유의 감옥>도 정말 엔데스러우면서도 어린 시절에 읽던 책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아 좋았고.. <마법의 술>이니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니 <마법학교>니 하는 책들도(사실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엔데 작품들은 여기저기에 실린 단편들을 긁어 모아 한 권으로 만든 경우가 많아 이 책 저 책 다 읽다 보면 상당 부분 중복된다. 부디 미출간본들을 좀 내주면 좋으련만) 커서 읽긴 했지만 전부 사랑스러웠고.. 그가 암에 걸리지 않고 한 10~20년만 더 살아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해줬더라면 내 책장이 얼마나 더 풍성해졌을까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슬프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어린아이들을 무릎 근처에 모아놓고 후덕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네버엔딩 스토리를 들려주고 있길 바란다.
엔데 할아버지, 나중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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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5-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진짜 멋집니다.
근데 이런 걸 가지고 미안스러워하시면...안되는 거 아닌가요? 히힛.
책이야기를 서로 하다보면 뇌관을 건드릴 때가 있어요.
그이의 어떤 이야기로 인해 내 속에 있던 것들이 터져나오게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스타리님의 뇌관을 건드린 셈이니 저야 고맙지요 ^^
자주 좀 건드리면 좋겠구만요...

저도 엔데 할아버지 팬인지라 이런 이야기 접하면 정말정말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