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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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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온 세월 중, 다시 돌아가 새롭게 살아보고 싶은 시절이 있다면 과연 언제일까? 결혼하기 전? 마지막 회사를 관두기 전? 아니면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 볼 수 있는 그 시절? 예전에는 어떤 순간이 또렷하게 떠올랐는데 지금은 모든 게 두루뭉술하다. 콕 집어서 말할 수 없고 그 시절로 돌아간들 내 삶이 과연 크게 변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 것이다. 나의 성정은 쉬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과연 후회 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내 선택에 자신 있어 할 용기가 사라져 버렸다.

 

내가 이 작품 속의 주인공 수바시, 우다얀, 가우리라면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언제일까? 수바시라면 가우리와 결혼하고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전, 우다얀이라면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집으로 숨어들기 전, 가우리라면 우다얀과 결혼하기 전이나 수바시와 벨라를 두고 집을 떠나오기 전이라고 해야 할까? 잠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때로 돌아가 또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다른 갈등, 다른 고민, 그들이 살아온 삶과 크게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을 것 같지 않다. 내 삶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선택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가 열정적이지 않듯 그들도 당시에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반대의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 확신할 수 없었을 거란 뜻이다.

 

수바시는 홀로 남겨진 동생의 아내 가우리를 그대로 집에 두었다간 부모님의 구박을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또한 앞으로 창창한 그녀의 삶과 그녀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인 애정을 떨쳐낼 수 없었다. 자신과 결혼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 믿었다. 형제의 아내가 된 가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우다얀을 평생 떨쳐낼 수 없었대도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살았으며 좋았을 것을. 그녀는 아주버니에서 남편이 된 수바시도, 유일한 우다얀의 흔적인 핏줄 벨라를 사랑하며 함께 살지 않았다. 자신의 시어머니가 내다보았듯이 그녀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냉담함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과하지도 들끓지도 않는 저자의 문체 속에서 그 모든 사건들을 예감할 수 있었다. 좌익 운동에 가담한 우다얀의 죽음도, 수바시와 가우리의 결혼도, 비밀을 간직한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가우리가 떠날 것이고 때가 되면 벨라가 그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그 모든 걸 예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건 자체에만 매달려 대충 읽어 내려갈 수 없었던 이유는 저자 특유의 섬세한 문장 속에 담긴 그들의 내면과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 들이었다.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대에 대한 이해를 위한 내면 묘사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궤적을 남겼다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 수긍은 하지만 온전히 동조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지켜본 느낌이라 더욱 더 왈가왈부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인물은 가우리다. 수바시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감으로써 인도를, 우다얀을, 가혹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시댁에서 벗어났지만 그녀는 헌신적인 수바시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우다얀을 너무 사랑했다기보다 죽음으로 갑작스런 단절을 요한 우다얀의 그림자 속에 평생 살았다는 말이 더 맞을 정도로 자신의 삶에서도, 위태롭게 지어진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도 어떤 위안을 얻어내지 못했다. 외로움을 달래 줄 안락함, 서로를 이어 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뻔히 알면서도 극한 상황들을 선택했고 그 선택 때문에 오랜 시간 아파하고 힘들어했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깊은 공감과 안타까움을 드러낼 수 없었다. 자식을 버리고 떠난 여자,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남자를 배신했다는 꼬리표가 아닌 그녀 자체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끈끈하게 얽혀 살 수 없고 자유를 갈망하는 그녀의 본능을 어떤 식으로든, 어떤 누구든 막을 수 없고 자제시킬 수도 없었을 거란 깨달음 때문이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후회도 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빠져 나오려고도 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용서를 빌기도 하지만 이미 스스로 개척한 삶에서 무언가를 바로 잡는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한 사람이었고 그런 그녀를 비난하기보다 존중해야 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누구와 행복을 꾸리지 못하고 핏줄에게 외면당하고 우다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수바시도 마찬가지였다. 벨라를 사랑하고 자신의 딸이라고 여기는 마음을 가우리와의 결혼으로 인해 가질 수 있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은 긴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고통이 동반되었다. 다른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지극히 현실적인 그의 성정을 보건대 그럭저럭 보기 좋은 가정을 이뤘을 거란 아쉬움이 일었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기에 충실히 살아낸 그에게 보상이라고 하듯 노년에 찾아 온 행복이 그나마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기도 했다. 잃을 수도 있었을 벨라를 다시 찾았고 손녀까지 만났다. 그가 말한 대로 더 젊었을 때 엘리스란 여자를 만났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란 말처럼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나보다. 그 시기란 것을 어떻게 기다리고 견디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걸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우다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시기가 닥쳤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옮긴이의 말처럼 이 작품은 주로 사적이고 가족적인 이야기를 다룬 그동안의 소설과 달리 1960년대 후반의 인도 좌익 운동을 배경으로 정치, 사회적인 내용을 중점으로 다뤘다는 점이 특기할만 하다. 또한 시간적 배경이 대하소설 급이라는 말에 동조하게 되는 게 우다얀과 수바시의 어린 시절부터 수바시가 할아버지가 되는 시기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을 뛰어 넘어야 하는 부분을 어떻게 써 내려갈까, 벨라에게 자신은 친아빠가 아니라는 고백을 어떻게 그려낼까란 궁금증에 어색함이 더하지 않는 자연스런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 저자의 문체와 잘 맞물려 책장을 덮을 땐 앞으로 살아내야 할 나의 미래를 이미 살아버린 기분이 들 정도였다.

 

초반 30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낑낑대다 쉼 없이 넘어가는 책장을 주체 못하고 결국엔 다 읽어 버리는 게 아까워 조금씩 읽어대던 날 들. 유일하게 좋아하는 여류작가인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읽는다는 사실이 행복감으로 다가왔을 정도다. 책의 내용은 그다지 밝다고 할 수 없으나 인생은 결코 혼자 살아지는 게 아니며 마음속에 비밀과 피해왔던 일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음을 낱낱이 목도했다. 마음속에 거리낌을 오래 간직하며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낭비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작품 속 인물들 중 누군가를 오랫동안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고충을 여실히 드러냈기에 되도록 긍정적인 사고로 타인에게도 너그러워 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만 잘 지켜도 앞으로의 삶이 생각처럼 팍팍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느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복잡다단한 마음을 이렇게 뻔하게 마무리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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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 사진편 - <하루키의 여행법> 에세이편의 별책 사진집, 개정판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마스무라 에이조 사진 / 문학사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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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서를 글로 읽는 것과 사진과 함께 보며 읽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글로 읽을 때는 묘사에 의지해 나름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 상상이 글을 읽는 풍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사진과 함께 읽는 글은 내가 상상할 틈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점이 있는 반면 어떤 의문을 달 여지없이 정확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하루키의 여행법』을 다 읽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함께 봐야하는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하루키의 여행법』을 읽으면서 그곳이 궁금할 때 이 책을 펼쳐 현장감을 느끼도록 했다.

  사진이 떡하니 실려 있으니 글에 의지한 나의 상상력이 빈약했음이 단박에 드러났다. 그러나 그런 움츠러든 모습으로 글을 읽어나간다면 이도저도 아닌 소심한 접근법이 될 것이 뻔해 내가 상상한 것과 사진을 비교해갔다. 그랬더니 오히려 편안히 볼 수 있었고 글에서 보지 못한 생생함으로 저자의 여행지를 더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와 함께 동행한(고베 도보 여행만 제외하고) 마쓰무라 에이조의 사진은 오글거리는 감성을 일깨울 정도로 멋을 부리지 않아 편안했다. 분명 보통 사람과 다른 시선을 가졌다는 것은 알겠지만 문외한인 나의 시선과 거리감이 깊지 않아서 느긋하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며 찍었을까 하는 사진도 많았고 저자가 묘사한 부분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부분도 있어 놀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진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 생각되어지는 장면들도 있었다. 전쟁의 상흔 때문인지 노몬한의 모습이 특히 그랬고 사살된 늑대의 모습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정도로 마음이 찡했다. 새끼 호랑이를 안고 찍은 사진은 웃음을 자아냈지만 저자의 글과 사진이 크게 초점이 흔들리지 않아 이 책을 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글과 사진의 관계는 늘 결론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묘사를 풍부하게 해도 한 장의 사진이 더 정확하게 보여줄 때도 있고 사진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을 글이 표현해내는 것도 있다. 글과 사진을 함께 보았지만 역시나 그런 느낌이 들었고 그런 괴리는 어떤 글과 사진이라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저자가 설명한 멕시코의 작은 마을은 대도시와는 또 다르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말았는데 사진으로 만나니 쓸쓸함과 적막감, 시골이라는 특수함이 주는 짠한 마음이 단박에 드러났다. 거기다 시골에서 자란 나의 추억까지 더해져 부모님만 두고 자취방으로 홀로 돌아와야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까지 떠올랐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런 기억의 추적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때 사진이 잘 찍고 싶어 열심히 셔터를 누르다보면 나도 좀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셔터를 눌러도 사진이 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후에 마음가짐의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가짐을 고쳐먹어도 사진은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진다. 기술보다 사물을 보는 마음가짐. 그리고 뷰파인더 안을 넘어 그 이면까지 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에 한발 더 나아지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지 않다. 그러다 내가 그런 사진을 찍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런 사진을 자주 보는 게 더 빠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조금씩 사진집을 들춰보고 있다. 그래서 콕 집어 이 사진은 이러이러하다 말은 못하지만 대강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찍었는지 짐작할 수는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이긴 하지만 이 사진집을 보면서 왜곡된 마음가짐과 시선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없는 나는 편안하고 좋았다는 표현으로 자꾸 이렇게 다른 소리를 늘어놓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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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마스무라 에이조 사진,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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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북소리』의 여운 때문인지 하루키의 여행서가 더 읽고 싶었다. 그래서 읽게 된『하루키 여행법』은『먼 북소리』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단기간으로 여러 곳을 방문하고 체험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어떠냐에 따라 글의 분위기도 미묘하게 달랐다. 맨 먼저 실린 작가, 배우들의 성지로 알려진 이스트햄프턴의 이야기는 저자도 썩 내켜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으나 그곳의 특성상 쉽게 접근할 수 없고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곳. 그런 곳이어서 그런지 겉도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반면 꼭 그런 곳에 살아야 대단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도 아님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이스트햄프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무인도에도 가고 멕시코, 우동 맛여행, 전쟁의 흔적을 따라 나선 노몬한 탐방, 아메리카 대륙 여행기, 그리고 고베까지의 도보 여행기가 펼쳐진다. 한권의 책에 실린 여행 이야기로는 굉장히 다양한 노선이다. 그래서 글의 분위기가 그때그때 달랐고 여행의 목적을 갖고 떠나는 저자의 관심과 마음 상태에 따라 그곳의 이야기는 더 진하게, 때론 고독하거나 관람자의 시선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해 준 지인은 무난히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했고 특히 손님에게 직접 파밭에서 직접 파를 뽑아다 먹게 하는「우동 맛여행」이 재미날 거라 했다. 우동이나 실컷 먹자고 떠난 여행이기에 졸지에 우동가락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매일 우동을 먹는 여행이었지만 굉장히 신나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동을 좋아하고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 정확했기에 고장마다 다른 우동맛을 느끼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지인의 말마따나 파밭에서 직접 파를 뽑아다 먹는 우동에 저자도 흥분했고 나도 너무너무 궁금할 정도였다.

  목적이 따르는 여행을 하는 저자라는 사실을 언급한 것처럼 무인도에 가든 멕시코에 가든 나름의 목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어나는 변수가 여행을 더 풍부(?)하게 해주었다. 무인도에서 며칠 묵겠다는 야심찬 포부와 함께 섬으로 가지만 정작 벌레 때문에 학을 떼고 하루만에 철수하는가 하면 왜 하필 멕시코를 여행하게 되었는지 타인이든 스스로든 궁금증이 일 정도의 여행을 하고, 운명에 의해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그곳까지 갔다고 할 수밖에 없는 노몬한 방문기, 아무런 특색 없는 모텔방과 기나긴 고속도로만 생각났던 아메리카 여행, 그리고 고향으로 쉽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던 도보 여행이 그랬다.

  하루키의 여행서를 읽다보면 그의 감정대로 고스란히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은 과하게 포장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만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감정 상태에 따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경우에도 그것 또한 그곳에 있었던 당사자의 시선이니 그러려니 하고 봐지는 것이다. 시각적, 내면적, 공감각적인 시선이 섞여 그곳에 내가 있는 듯하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지켜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저자가 어느 곳에 가든지 낯선 느낌보다 어떤 시선으로 풀어낼지가 더 기대되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어떤 곳에 내놔도 꿋꿋하게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해줄 것 같은 질긴 근성이 오히려 독자를 안도하게 만든다.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사진기가 된다.’고 했는데 그런 노력이 있어서인지 억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때론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것들, 글이 아니면 표현해 낼 수 없는 것들을 느낀 그대로 그려내는 모습이 종종 청승맞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랬기에 더 인간미가 넘쳤던 것 같다. 저자가 했던 여행을 해보라고 하면 단박에 거절을 할 나지만 혼자서 여행을 해 본적이 없는 내게 가끔은 이런 여행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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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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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나를 떠올려보면 정말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면 좀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가면, 지금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이 아닌 다른 직장을 다닌다면. 온통 이런 만약에 때문에 20대의 나는 심적으로 심각한 방황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원했다면 그에 상응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니가 책 읽는 거 외에 하는 게 뭐 있냐는 뒤통수를 때렸던 말처럼 20대를 떠올려보면 5년의 긴 연애 뒤의 차임(그것도 군대에 있는 녀석한테. 이런.), 그로 인해 신앙을 갖게 되고 책에 더 빠지게 된 것. 그것밖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 그렇다고 신앙을 갖고 책을 읽게 된 게 첫사랑의 실패 때문이라는 게 아니라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나마 20대의 나를 건사시켜줬다는 말이다.

미래를 꿈꾸는 건 자유지만 지금 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

미래의 자신이 진짜고, 지금은 임시라고 생각하는 거네. (34~35쪽)

  이 문장 때문에 20대의 내 모습, 혹은 현재를 중요시하지 않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으며 지금보다 나을 거라며 무한한 희망만 갖았던 나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찔렸다. 20대의 나는 정말 임시라고 생각하고 미래만이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 미래의 내가 현재 내 모습이다. 과연 그때는 지금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내 일은 갖지 못한 채 아이를 키우며 너무나 평범하게, 때때로 남편 바가지 긁으며 감정조절 못해서 짜증 부리고,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을 한탄하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도 든다.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재정비하며 과거를 반성하는 건 좋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또 희망고문이 시작되려고 한다.)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나아질 기미가 없을 거다. 미래를 대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거. 과연 그게 뭘까? 뭘 해야 과거의 나보다 낫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걸까? 그건 생각하기에 따라 정말 작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뭔가 거창한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도 미래의 내 모습도 진짜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현재의 ‘나’에게 충실 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수짱이나 친구 마이코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그녀들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진다. 일기를 쓰면서 무심코 흘러가버리는 생각과 자신의 모습을 담아보려는 수짱.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과감히 떨쳐내지 못했던 마이코. 그들 각자, 혹은 서로가 함께 나눈 이야기들 속에서 그녀들이 꿈꾸었던 미래의 모습에 현재 모습을 대입했을 때 과연 그녀들도 밝게 웃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만은 평범한 사람이면 그렇듯 최선을 다하려 살아가려다가도 이리 저리 흔들리다 다시 다잡기를 반복하면서 나이를 먹고 인격과 취향, 성향이 형성되어 가는 것 같다.

  ‘나’를 구성하는 것에 인격, 취향, 성향만 고려한다면 조금은 밋밋한 삶이 될 것 같다. 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내면과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 그러다 어느 지점에 안착하는 게 내 모습이고 그런 나를 구성하는 걸 일일이 따져 보지 않는다면 마음이 좀 더 편할 것 같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으면서 주인공들이 고민하고 고뇌하는 것들에 마음이 끌려 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는 사실만 확실해져 조금 힘이 빠졌다. 다만 이런 생각을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보다 미래의 나에게 너 괜찮냐고 묻고 싶어지는 이 불안감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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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세실 바즈브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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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데다 햇살이 좋아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마침 아이도 졸려 하기에 남편과 함께 나가기로 하고 챙기는데 별 것도 아닌 일로 남편이 짜증을 냈다. 나도 맞장구를 쳐서 그렇게 나가기 싫으면 나 혼자 다녀오겠다고 하자 정말 남편이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상황이 짜증이 나 한숨을 푹 쉬며 집 앞에 나가려던 계획을 수정해 좀 더 멀리 산책을 나갔다. 지난 주말에는 함께 유모차를 밀며 느긋하게 산책을 했는데 아이와 둘만 나가려니 뭔가 처량해 보였다. 그렇게 복잡다단한 마음을 다스리면서 산책을 하는데 햇살이 좀 뜨거워도 바람이 불어 그럭저럭 상쾌했다. 아이도 기분이 좋은지 스르륵 잠이 들고 바다는 눈앞에 펼쳐지고 잠시 유모차를 멈춰놓고 가져온 책을 읽었다. 지난밤에 조금 읽다 끝까지 읽어보고 싶어 가져온 책. 작가도 낯설고 책 내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지만 그래서 현재 내 상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바다에 관한 내용이 나와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읽으려고 가져온 책이 아니었는데 묘하게 현장독서가 되고 말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바다는 어디가 수평선인지 구분이 안가는 넓고 먼 바다가 아닌 은빛 물결을 가까이에서 내려다 볼 수 있고 바로 섬과 연결되어 있는 작고 아담한 바다였다. 그래서 네 편의 단편에서 나오는 거대하고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거친 바다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너무나 평온한 바다를 보고 있어서 작품 속에 드러난 이중적인 바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끼긴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런 반대되는 분위기였기에 어느 정도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거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사람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곳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단박에 나는 우울감에 빠져 버렸을 것이다. 글이 드러내는 분위기에 쉽게 매도되는 편이라 우울하거나 무서운 책은 절대 깊은 밤에 읽지 않는다. 이 작품 속에 드러나는 네 편의 단편은 죽음이 등장한다.(「등댓불」에서 주인공이 본 사람이 형체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지만) 여객선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활동하다 침몰로 인해 동료도 잃고 자신의 삶의 방향이 더 복잡해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페리의 밤」, 가장 가까워야 하고 마음을 나눠야 할 아내와 원만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며 외로움을 켜켜이 쌓아가는 등대지기가 등장하는「등댓불」, 사고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에게 생일 때마다 편지를 쓴 병을 던지는 애틋한 노부부지만 실상 아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던「바다로 보낸 병」, 아버지와의 약속을 위해 매주 일요일 바다에 동생과 함께 나갔다가 눈앞에서 동생을 잃고 엉켜있던 가족관계에서 벗어나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가 실린「혼자라면」이었다.

 

  짧은 단편인데도 뭔가 긴 이야기를 읽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떠한 사건은 일어났고 그 배경이 모두 바다라는 점,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삶을 한 단계 뛰어넘어 초월한 듯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초연하게 사건을 떠올리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 체념도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하다못해 바다를 미워하지도 않고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예고되어 있었기에 당연한 것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바다라는,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배경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늘 위험성이 뒤따랐다. 그리고 위험부담은 현실이 되었다. 남겨진 사람에겐 고통일 수밖에 없는 상실감. 그런 사람들의 내면을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어 어떻게 보면 이미 숱하게 보아온 주제일지도 모르나 저자만의 문체로 작품의 배경이 되는 바다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었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나는지 궁금해 검색해 보았지만 국내에 번역된 작품인 이것뿐이었다. 저자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 똑같이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에서 읽고 싶었는데. 그게 조금 아쉬웠다.

 

  우연히 책장에서 꺼낸 책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맛볼 때의 독서는 행위자체로 만족감을 준다. 비록 이 책을 읽게 된 배경은 썩 유쾌하지 못했지만(집에 돌아와서 여전히 툴툴거리는 남편에게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냐고 따지자 자기도 짜증낸 게 미안했는지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댔다. 내가 외출하기 직전에 큰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간 게 화근이었다나 어쨌다나. 자긴 화장실 들어가면 30분이 기본이면서! 하긴 외출 직전의 배우자의 오래 걸리는 화장실행은 그야말로 짜증 그 자체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 순간은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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