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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 사진편 - <하루키의 여행법> 에세이편의 별책 사진집, 개정판 ㅣ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마스무라 에이조 사진 / 문학사상사 / 2013년 3월
평점 :
여행서를 글로 읽는 것과 사진과 함께 보며 읽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글로 읽을 때는 묘사에 의지해 나름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 상상이 글을 읽는 풍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사진과 함께 읽는 글은 내가 상상할 틈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점이 있는 반면 어떤 의문을 달 여지없이 정확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하루키의 여행법』을 다 읽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함께 봐야하는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하루키의 여행법』을 읽으면서 그곳이 궁금할 때 이 책을 펼쳐 현장감을 느끼도록 했다.
사진이 떡하니 실려 있으니 글에 의지한 나의 상상력이 빈약했음이 단박에 드러났다. 그러나 그런 움츠러든 모습으로 글을 읽어나간다면 이도저도 아닌 소심한 접근법이 될 것이 뻔해 내가 상상한 것과 사진을 비교해갔다. 그랬더니 오히려 편안히 볼 수 있었고 글에서 보지 못한 생생함으로 저자의 여행지를 더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와 함께 동행한(고베 도보 여행만 제외하고) 마쓰무라 에이조의 사진은 오글거리는 감성을 일깨울 정도로 멋을 부리지 않아 편안했다. 분명 보통 사람과 다른 시선을 가졌다는 것은 알겠지만 문외한인 나의 시선과 거리감이 깊지 않아서 느긋하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며 찍었을까 하는 사진도 많았고 저자가 묘사한 부분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부분도 있어 놀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진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 생각되어지는 장면들도 있었다. 전쟁의 상흔 때문인지 노몬한의 모습이 특히 그랬고 사살된 늑대의 모습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정도로 마음이 찡했다. 새끼 호랑이를 안고 찍은 사진은 웃음을 자아냈지만 저자의 글과 사진이 크게 초점이 흔들리지 않아 이 책을 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글과 사진의 관계는 늘 결론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묘사를 풍부하게 해도 한 장의 사진이 더 정확하게 보여줄 때도 있고 사진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을 글이 표현해내는 것도 있다. 글과 사진을 함께 보았지만 역시나 그런 느낌이 들었고 그런 괴리는 어떤 글과 사진이라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저자가 설명한 멕시코의 작은 마을은 대도시와는 또 다르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말았는데 사진으로 만나니 쓸쓸함과 적막감, 시골이라는 특수함이 주는 짠한 마음이 단박에 드러났다. 거기다 시골에서 자란 나의 추억까지 더해져 부모님만 두고 자취방으로 홀로 돌아와야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까지 떠올랐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런 기억의 추적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때 사진이 잘 찍고 싶어 열심히 셔터를 누르다보면 나도 좀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셔터를 눌러도 사진이 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후에 마음가짐의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가짐을 고쳐먹어도 사진은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진다. 기술보다 사물을 보는 마음가짐. 그리고 뷰파인더 안을 넘어 그 이면까지 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에 한발 더 나아지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지 않다. 그러다 내가 그런 사진을 찍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런 사진을 자주 보는 게 더 빠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조금씩 사진집을 들춰보고 있다. 그래서 콕 집어 이 사진은 이러이러하다 말은 못하지만 대강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찍었는지 짐작할 수는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이긴 하지만 이 사진집을 보면서 왜곡된 마음가짐과 시선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없는 나는 편안하고 좋았다는 표현으로 자꾸 이렇게 다른 소리를 늘어놓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