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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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연수 작가의 첫 작품을 산문을 읽어서인지 다음 작품도 소설보다 비슷한 분위기를 찾게 됐다. 두 번째로 마주한 책은 <청춘의 문장들>이다. <여행할 권리>로 생면부지의 작가에 온 관심의 쏟고 있으니, 먹이를 찾아 헤메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된 것 같다. 온통 김연수의 작품에 빠져 있는 요즘이다. 

 

  아직 그의 소설을 접해 보진 못했지만, 그의 산문집을 읽고 나서 그에게 홀딱 반한 것은 사실이다. 소설이 어떠한 분위기를 띄고 있을지 모르지만 산문에서만큼은 독자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한 저력을 갖추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문학과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어서 부담이 없었다. 누구나 한번쯤 품었을 젊음의 한 때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추억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거기다 추억과 얽힌 문학의 버무림은 청춘의 열기 만큼이나 강렬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내온 유년 시절과 20대 초반의 경험들을 허심탄회하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모든 추억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과 다른, 걸러 버리지 않은 채 드러낼 용기를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감추고 싶은게 더 많다. 나의 청춘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에 좀 더 지켜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청춘을 더듬어 본 것은 단순한 간접경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넓은 문학세계를 탐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자가 풀어놓은 추억에 웃기도 하며,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문장 앞에서는 무릎을 탁 치며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수 많은 그림들을 한 곳으로 엉그러 모았다. 청춘이라는 나만의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장 큰 느낌 중 하나는 소소함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는 것이나, 자신을 사로 잡았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이나 저자의 개인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현재보다 과거, 나이듬 보다 젊을 더 말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 하다. 어느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자신의 생각을 집어 넣을 수 있었던 시간. 작가라는 위치보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저자를 만났기에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의 추억에서 꿈을 꿔보기도 했으며,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갔고,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던 시간까지 모두 만나보았다. 특히나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던 저자의 글을 읽을 때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더럭 겁이 났다.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던 저자의 고백은 현재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

 

  지나온, 혹은 지나고 있는 청춘을 끌어내는 것만큼이나 회한에 빠지는 일이 있을까. 즐거웠던 기억도 많지만 점점 더 깊은 고독으로 빠지는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회한이 주를 이루지 않은, 문학과 함께 얽힌 저자의 청춘 여행이 좋았다. 나의 고독을 즐거운 추억으로 만들어 주는 펼침이 인상 깊었다. 문학이 있기에 외롭지 않고, 앞으로의 삶이 있기에 좌절하지 않을 용기를 얻었다. 아마도 그것이 김연수의 작품에 빠진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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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읽은 책


 
 
1. 잘 되는 나 - 조엘 오스틴
2. 탐서주의자의 책 - 표정훈
3. 사랑하기 때문에 - 기욤 뮈소
4. soli's cartoon grammar - daniel E. Hamlin, 옥문성
5. 지구 끝의 사람들 - 루이스 세풀베다
6. 감상적 킬러의 고백 - 루이스 세풀베다
7.  모비 딕 - 허먼 멜빌
8. 배고픔의 자서전 - 아멜리 노통브
9. 해저 2만리 1 - 쥘 베른
10. 복덕방 - 이태준
 
----------------------------------------10권
 

2월에 읽은 책
 
 
11. 창조적 디자인 경영 - 이병욱
12. 하나님의 휴식 - 마크 부캐넌
13. 힐링 다이어리 - 샌디 그레이슨
14. 조지 뮬러의 기도 - 조지 뮬러
15.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 다케타즈 미노루
 
----------------------------------------5권
 
 
3월에 읽은 책

 

 

16. 몰입 - 황농문

17. 조용한 믿음의 힘 - 토니 던지

18.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 곤살로 모우레

19. 문제아 - 제리 스피넬리

20. 리버보이 - 팀 보울러

21. 해저 2만리 2 - 쥘 베른

22.~23. 아더와 미니모이 3,4 - 뤽 베송

24.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석영중

25. 스타시커 1 - 팀 보울러

 

--------------------------------------10권

 

 

4월에 읽은 책

 

 

26. 스타시커 2 - 팀 보울러

27. 여름이 준 선물 - 유모토 가즈미

28. 내 생애 최고의 축복 3:16 - 맥스 루케이도

29. 사랑에 관한 연구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30. 물은 답을 알고 있다 - 에모토 마사루

31. 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감 - 리처드 용재 오닐

32. 완득이 - 김려령

33.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 - 호아킴 데 포사다, 앨런 싱어

34.  바다 바다 바다 - 샤론 크리치

35. 나폴레옹 놀이 - 크리스토프 하인

36. 아르네가 남긴 것 - 지크프리트 렌츠

37. 성과 이성 - 리차드 포스너

38.  귀향 외 -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39. 착한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 박경철

40. 안데스의 비밀 - 앤 놀란 클라크

41.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 존 버거

42. 열세살 로즈의 아주 특별한 일년 - 루이자 메이 올컷

 

---------------------------------------------17권

 

 

5월에 읽은 책

 

43. 어린왕자 - 생텍쥐페리

44.~45. 인연 1,2 - 정찬주

46. 최후의 끽연자 - 츠츠이 야스타카

47. 젊음의 탄생 - 이어령

48. 닥터 코페르니쿠스 - 존 반빌

 

----------------------------------------------------------- 6권

 

 

6월에 읽은 책

 

49. 책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

50.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 존 버거

51. 지킬 박사와 하이드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52. 하늘에 있는 나의 집 - 맥스 루케이도

53. 네가 어떠한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공지영

 

--------------------------------------------------------  5권

 

 

7월에 읽은 책

 

 

54. 그리운 메이 아줌마 - 신시아 라일런트

55.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

56. 소녀, 소년을 만나다 - 알리 스미스

57. 여행할 권리 - 김연수

58.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59. 이스탄불 - 오르한 파묵

60.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 호어스트 에버스

61. 행운아54 - 에프라임 키숀

 

--------------------------------------------------------- 8권

 

 

- 8월에도 슬로리딩을 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이 읽은 것 같다. ㅋㅋㅋ

예전에 비하면 소소한 권수지만 이젠 권수에 치중하지 않기로 했으니...머..^^

8월은 김연수에 푹 빠진 달이었다. <여행할 권리>,<청춘의 문장들>이 참 좋았다.

김연수의 책을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김연수의 책을 세권이나 대기시켜 놓았으니..

8월에는 김연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권수에 치중하지 않고, 이벤트에 치이지 않는 슬로리딩을 이어갈 지어다.

 

 

 

2008년도에 생긴 책
 
 
280.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다카하시 겐이치로

281.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 팔란티리 2020
282. 톨스토이의 비밀일기 - 톨스토이
283. 목마름 - 맥스 루케이도
284. 설타누나, 나의 멘토가 되어줘 - 설보연
285. 꾸르제뜨 이야기 - 질 파리
286. 악인 - 요시다 슈이치
287. 서진규의 희망 - 서진규
288. 날아라,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 윤무부
289. 영광의 왕과 마주치다 - 제임스 w. 골, 마이클 앤 골
290. 소외 - 루이스 세풀베다
291. 귀향 - 루이스 세풀베다
292. 섬 - 장 그르니에
293. 태양의 여행자 - 손미나
294.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 이명권
295. 디지로그 - 이어령
296.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 박경철
297. 셰익스피어는 없다 - 버지니아 펠로스
298. 안녕이라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299.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 알랭 드 보통
 

300. 아이반호 - 월터 스콧
301. 돈키호테 - 미겔 데 세르반테스

302. 80일간의 세계일주 - 쥘 베른

303.~304. 15소년 표류기 1,2 - 쥘 베른


305. 잡식동물의 딜레마 - 마이클 폴란

306. 잘 풀리는 여자 스타일 - 신영란

307.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 히라노 게이치로

308.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더글러스 애덤스

309.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 - 다나카 마치

3103. 가스등 이펙트 - 로빈 스턴

311~312. 타임슬립 1,2 - 오기와라 히로시

313.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

314. 나를 벗겨줘 - 까뜨린느 쥬베르

315.~316. 콜레라 시대의 사랑 1,2 - 가르시아 마르케스

317. 성공미학 - 이지수

318. 국어랑 한자랑 같이 공부해 - 정우상

319. 바쇼의 하이쿠 기행 1 - 마츠오 바쇼

320. 2008 열린책들 매뉴얼 -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321. 클래식 인생 변주곡 - 윤미숙

322. 건강한 생리 - 조연경, 김경숙

323. 카라바조 - 질 랑베르

324. 질문상자 - 다니카와 슌타로

325. 낭만과 모허의 고고학 여행 - 스티븐 버트먼

326. 시각의 의미 - 존 버거

327.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할까 - 마르틴 우르반

328. 테메레르 4 - 나오미 노빅

329.  롤리타 - 블라지미르 나보코프

330. 고흐보다 소중한 우리미술가 33 - 임두빈

331.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 - 캐슬린 에릭슨

332. 외면 - 루이스 세풀베다

333. 스무살 도쿄 - 오쿠다 히데오

334. 종소리 - 신경숙

335. 19세 - 이순원

336.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 - 오영욱

337. 그림에 마음을 놓다 - 이주은 

338.~339. 장외인간 - 이외수

340. 최초의 인간 - 알베르 카뮈

 

341. 삿뽀로 여인숙 - 하성란

342. 우울한 얼굴의 아이 - 오에 겐자부로

343. 책이여, 안녕 - 오에 겐자부로

344. 부활 - 레프 니꼴라예비치 톨스토이

345. 코코 샤넬 - 앙리 지델

346.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 루이스 세풀베다

347. 꾿빠이, 이상 - 김연수

348. 그늘의 집 - 현월

349. 피는 물보다 진하다 - 아스트리드 트롯찌

350. 우동 한그릇 - 구리 료헤이

351.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352. blessing of the rainbow(무지개 원리) - norbert d.y.cha

353.~358. 배터리 1~6 - 아사노 아쓰코

359. 사랑이라니 선영아 - 김연수

360.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 정끝별 해설

361.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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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54
에프라임 키숀 지음, 이용숙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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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자신감이 너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무엇에 대한 자신감이냐고 상대방에게 묻기도 전에 나는 의기소침 해지고 말았다. 학창시절부터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비하하기 바빴고, 누군가 나를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당황스러워 하며 늘 부정만 했다. 그렇다보니 내게 따끔한 충고라도 들려오는 날에는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 앉아 버리고 마는 고질병을 달고 살고 있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소리에 내 자신을 내려놓고 생각해 보다가도 교만과 자신감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해 헤메고 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심한 자책감 속에서 살고 있는 딱한 남자를 알게 됐다. 젊다고 할 수 없는 50대 중반 줄에 접어드는 그에겐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고, 삶의 의미조차 찾을 수 없는 무기력감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나의 처지를 놓고 그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지 동병상련의 고통을 나누어야 할지 심하게 헷갈렸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어 놓았을 법도 한 50대의 칼 뮐러는 현재 최악의 상황이었다. 희미하게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삼류배우라는 딱지도 사라져 버리고 지금껏 그래왔듯 교사인 아내 힐데에게 빌붙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배역을 주지 않았고 자신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TV속 미녀 배우를 상상 속으로 가두곤 했다. 한마디로 존재감 없이 생활을 유지해 가는 중년의 사내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일거리가 생긴다. 유명 영화제작자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칼 뮐러를 캐스팅 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듣고 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중요배역이긴 하지만, 좋은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수락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아내와 자신의 에이전트의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그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다른 배우의 변덕으로 칼의 역할은 바뀐다. 미녀 배우 카를라의 남편 역할에다 베드신도 있었다. 하지만 첫 촬영은 끔찍했다. 무명배우에다 별 볼일 없는 자신을 모든 사람이 무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카를라는 더 심했다. 카를라는 자신의 몸에 손이라도 댈까봐 마치 벌레보듯 칼을 대했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대사도 똑바로 외우지 못하고 형편없는 촬영을 끝낸 칼은 다시는 그런 촬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역할은 칼을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칼은 자신이 찍은 미니시리즈가 절대 방영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칼의 생각과는 다르게 엉망으로 찍은 미니시리즈는 방영이 되었고, 다음 날 칼은 엄청난 스타가 되어 있었다. 대사를 제대로 읊지 못해 느낌대로 하라는 영화감독 말대로 한 것인데, 많은 시청자들은 감동을 받은 것이다. 지금껏 그런 연기는 본 적이 없다는 비평가의 리뷰는 칼을 더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때부터 칼의 운명은 달라진다. 계단에서 울고 있던 우울증에 걸린 무병배우 칼이 아니라 혜성처럼 등장한 최고의 배우가 된 것이다. 말도 안되는 언론의 농간으로 하루 아침에 스타덤에 오른 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그의 모든 행동과 언행을 부풀려서 생각하고 말하며,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주변 사람들이든 언론이든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조차 칼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온다. 칼의 인기에 힘입어 조금이나마 이익을 보려는 무리들인 것이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인기에 칼 자신 조차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많은 혼란이 야기 되고 있었다. 카를라 조차도 칼에게 은밀하고 다가오고 있었으니 칼은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그가 힘들거나 고민을 하다 해답을 찾을 수 없을 때, 윗층에 사는 심리학자가 건네 준 책에서 방법을 찾곤 했다. 스포 박사의 '남편과 남성들의 상식'이라는 책이었다. '결혼한지 108개월이 지난 남자들은'으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글은 칼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주곤 했다. 칼 스스로가 짜맞추기를 해서 억지로 해결책을 찾는지는 몰라도 칼이 당면한 상황과 그 책은 묘하게 맞물리고 있었다. 카를라와의 만남 속에서도, 아내에 대한 감정도, 자신을 버겁게만 한 인기 속에서도 그는 스포 박사의 책과 동고동락하며 자신에게 처해진 상황을 나름대로 헤쳐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인기인이 된 그를 사람들은 가만 두지 않았다. 왜곡된 사실로 스캔들을 터트리는 여기자,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딸, 인기에 따라 변덕스러운 감독과 언론들. 상황은 갈수록 최악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언론의 농간에 얻게 된 인기였고, 그로 인해 펼쳐진 상황이였으므로 그가 내리막길을 걷는 건 순식간이었다. 언론의 조작으로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칼은 그렇게 얻은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진짜 행운의 반전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이 엉망으로 뒤얽혀 갈 때, 의외의 방법으로 그에겐 물질의 평화와 일상의 평온함이 찾아온다. 더불어 카를라와의 관계까지도.



  한 남자의 운명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에 놀라워 하기도 전에 책 속에 흩뿌려진 풍자 분위기에 어쩔줄을 몰랐다.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세태는 주인공의 내면속으로 들어가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혼란스러워 하는 그의 심리를 통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저자가 이끄는 대로 나 또한 주인공 처럼 끌려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울함으로 점철되어 지지 않는 주인공의 태도라고나 할까. 자신에게 처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거나 깊은 고민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난국을 헤쳐나가려는 의지는 있었다. 그 의지를 빌미로 삼아 웃지못할 상황을 만들어 가는 저자의 유머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았다고 말하고 싶다. 억지를 써서 절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을 농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커다란 악의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독자였으며, 그에게 닥친 운명으로 인해 세상의 오류를 철저하게 맛보았다. 칼이 스포크 박사의 책에 메달렸던 이유가 어쩌면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을 잃어 버려 의지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현대의 우리는 너무나 나약하고, 의지박약이며 쉬운 방법으로 인기를 얻으려는 기질을 가졌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풍자 작가로 알려진 에프라임 키숀의 소설을 통해 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해 보며, 세태에 찌들여 살지는 않았는지 한번 쯤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을 읽는 묘미가 더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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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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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마주하고 보니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한참 책에 대한 열망이 들떠  있던 시절, 친구가 이 책을 선물해 달라고 해서 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선물해 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무조건 내가 읽은 책을 선물 해야 했으며, 읽지 않은 책은 읽고서라도 줬다. 선물할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중고책을 만들어 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에 저지른 만행이었다.) 조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읽었었다. 그러나 조금 읽다가 집중이 안되어서 곱게 덮어서 선물을 했는데, 그 책을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나기 힘든게 읽다 만 책인데, 재발행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책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예전에 이 책이 읽히지가 않았을까. 재미없는 책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덮어버렸을까 라고. 아마 그 때는 나와의 만남이 유쾌할 조건이 되지 못했나 보다. 문학에만 열과성의를 보였던 내가 이런 분위기의 책을 흡수할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제서야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된 인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흥미가 없었던 책이 지금은 아주 유쾌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호어스트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아주 게으르고 보통 사람이라면 발견하기 힘든 유쾌함과 엉뚱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일상을 지켜보면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를 알아가면 갈수록 진솔한 유쾌함에 웃을음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타인의 삶을 엿본다는 것은 경직된 자세로 일관하기 일쑤다. 나 또한 호어스트라는 게으른 남자에 전혀 흥미가 없었으며, 그에게 열게 된 마음이라곤 침착한 상태로 그를 만나보자가 전부였다. 다른 사람이 신경을 쓰던 말던 자신의 일상과 흩어지려는 상념들을 엉그러 모은 이 책을 읽다보니 그의 내부로 들어가 비로소 본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호어스트 씨가 나에게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어 주었던 건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과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사건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모든 사건을 만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대해 가는 호어스트 씨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꼭꼭 닫고 다니는 생각의 틀을 반쯤 흘리고 다니는 호어스트 씨. 자잘한 일상의 가벼움을 담고 있다가도 허를 찌르는 그의 유머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웃음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그 웃음의 이면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봄직한 사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게으름에 몸부림 쳐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며, 자신의 상상속에서 주무르고 싶은 세상을 가꿔보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머리 속에서만 흩뿌려 버리는 생각들을 호어스트씨는 당당히 헤쳐 나가고 있었다.

 

  이 책은 5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야기 모음집으로써 간단한 규칙이 있는 정기 낭독 무대에서 공연된 작품이라고 한다. 이 글이 탄생된 배경만 살펴보더라도 결코 쉽게 씌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읽고, 웃음으로 넘겨 버리는 사이에도 저자는 그 속에 많은 것들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남들이 비웃어 버리는 자신의 일상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감추어 놓음으로써 그 너머를 보아주기 바랐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유머로만 점철되어 지는 호어스트 씨의 하루가 아닌 웃는 사이에도 나름대로의 호어스트 씨만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달아놓은 주석만 보더라도 이제껏 만나왔던 주석과는 다른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주석이라기 보다는 생각의 편린을 옮겨놓은 듯한 작은 세계. 그 세계로 말미암아 호어스트 씨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 모두가 금요일을 꿈꾸고 있지만, 언제나 금요일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호어스트 씨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일상을 잘 견뎌내야만 금요일의 달콤함이 우리를 맞이하기에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다. 호어스트 씨처럼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는 일상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대하다 보면 호어스트 씨보다 더 심한 실수투성이의 삶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엉뚱하고 유쾌한 웃음 속에서 만난 호어스트 씨는 내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만, 금요일을 꿈 꿀 수 있는 건 바로 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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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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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아닌 안개에 덮여 있는 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까지 답답해 진다. 온 몸이 높은 습도에 눅눅해 지는 기분까지 들어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계절의 실감도 나지 않고, 날짜에 대한 감각도 무뎌져 무기력감만이 나를 휘감고 돈다. 이토록 낯선 날씨를 마주하고 있으니 몇몇 진부한 풍경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안개하면 런던이 떠오르듯이 비애하면 이제는 이스탄불이 떠오른다. 이런 날씨가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는 낯설지만, 이스탄불이라면 도시의 폐허를 그대로 보여줄 것 같은 느낌. 이스탄불을 이렇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조금은 씁쓸하다.

 

  오르한 파묵이 2006년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되었지만, 그 전에 그의 작품을 만난 터라 상을 받은 작가라는 가산점을 부여하고 이 책을 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껏 소설만 만나 왔었는데 에세이를 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갔다. 그것도 자전에세이라니. 오르한 파묵의 개인적인 내면 세계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일었다. 소설과 에세이에서 만난 작가는 분명 다르기에 소설 너머로 바라본 작가의 이면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옮길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전환해 주길 바라는 기대감. 내가 끄집어 올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드러냄. 그런 것을 바라며 대리만족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삶을 통해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되짚어 보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저자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에세이를 통해서 대리만족하고자 했던 나의 관심의 욕망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삶에서 경험하는 것들의-가장 깊은 희열조차-의미를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아는 것을 습관하 한다'라고. 그제서야 나의 욕망은 습관화로 이루어진 잔재물이며 당연하게 요구하게 되는 욕구충족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묘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저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후에 살 수 있는 두 번째 삶은,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책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용기를 얻고 책을 펼쳤다. 나의 두 번째 삶은 내 손에 붙들려진 <이스탄불>이라며 내 머릿속에 각인 시킨 후 오르한 파묵을 통해  깊은 희열을 느끼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부제목을 보면 <도시 그리고 추억>이라고 되어 있다. 처음엔 부제목을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책을 읽어 나갈 수록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추억이 진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성장하며 기억하는 이스탄불이 되기도 하고, 과거의 사람들이 지나쳐온 이스탄불이 되기도 했다. 삶에서 경험하는 것들의 의미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아는 것을 습관화 한다고 했지만, 이스탄불은 사람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도시 그 자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드러내며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화려했던 오스만 제국의 잔재가 다듬어 지지 못하고 폐허로 변해버린 모습을 도시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방치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꿈틀대며 삶을 꾸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이스탄불의 흔적을 좇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순환하지 않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낡아, 날로 우울함을 더해가는 도시. 과거의 화려함은 빛이 바래 사그라든지 오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저자는 이스탄불에서 성장했고, 이스탄불의 내면과 외부를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이스탄불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을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라고 말이다. 자신의 성장과정부터 도시의 폐허까지 저자는 모든 것을 고백했다. 가정의 불화, 줄어드는 재산, 첫사랑, 첫경험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스탄불의 존재 과정을 자신의 성장과 함께 맞물리며 고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냈듯이 이스탄불 역시 모든 것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이스탄불은 저자 뿐만이 아닌 독자에게도 절망을 안겨 주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탄불에 잔존하는 감정은 비애였다.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옮긴이는 우리나라의 '한(恨)'의 정서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한(恨)을 떠올리니 이스탄불이 안고 있는 분위기, 그 안에서 성장했던 저자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비애를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만끽했다. 그것이 이스탄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원동력이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내가 성장한 동네를 그려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시골스러움을 숨기고 싶고, 빨리 성장해서 그 곳을 떠나고 싶었던 그런 동네를 과연 사랑할 수 있으며 저자처럼 그려낼 수 있을까. 대답은 오래지 않아 'NO' 라고 말한다. 복잡하고 불완전하고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이스탄불을 좋아한다던 저자와는 다른,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두메산골에서 자란 나이기에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이유를 끌어다가 나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오르한 파묵) 알아가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여과지에 비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 것에 대해, 저자의 내면을 통해 이스탄불을 바라본 것에 대해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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