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수피 탕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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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과 수업 사이에 잠깐 비는 틈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다. 에어프라이기에 치킨 텐더를 굽고, 냉장고에서 상하거나 오래된 반찬을 모두 버렸다. 된장국과 콩나물 불고기를 데우고 싱크대에 나와 있는 플라스틱 그릇은 씻고, 나머지는 식기세척기에 넣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부엌과 식탁을 정리한다. 수업 시작 30분 전, 에어프라이기에서 치킨 텐더가 익혀졌고 학원을 갔던 첫째가 돌아왔다. 따뜻한 치킨 텐더를 주고, 곁에서 나는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들쭉날쭉한 나의 일 때문에 언제부턴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꼭 한 번은 외식을 한다.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게 그립기도 하고, 주말만큼은 밥 짓기에서 해방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멋진 일이든 슬픈 일이든, 마치 재해처럼 강력한 힘으로 찾아와 인생의 흐름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너무 강력하게 멋진 것은 거의 슬픔과 비슷할 정도로 힘겨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증거다. 18쪽

살아 있는 존재라는 감각은 매일 다양하게 느끼고 있다.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가족들을 위해서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하고 돌아다녀야 하고, 일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 마음을 짓누르는 고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면 내 인생이 흔들리는 것 같다. 이게 살아 있는 증거라면 그전처럼 무던한 일상이기를 바라고 바라보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저 살아내야 하는 수밖에. 그 안에서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수밖에.

저자는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어릴 때 주로 밥을 지어주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함께 시작에 가서 장을 보고 온 일이며, 뿌리채소를 살 때면 택시를 타고 돌아오고, 재료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아버지의 성향에 따라 음식은 달라도 내용물은 거의 똑같은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다. 예를 들면 시금치나물, 시금치 된장국, 시금치 계란 볶음 등이라고 할 때 나와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고, 큰 관심이 없는 나도 그런 적이 많다. 콩나물무침을 하면서 콩나물국을 끓이고, 미역국을 끓이면서 미역무침을 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시간도 절약되기 때문이다.

처음 갓난아기가 옆에서 잠들었던 날, 어제까지 없었던 귀여운 인간이 불쑥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 여전히 놀라워, 하염없이 잠든 얼굴을 보고 있었던 일. 작은 손을 살며시 만졌던 일. 46쪽

그리고 저자는 자연스레 아버지의 음식에서 아이와의 추억으로 넘어간다. 한참 성장기인 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분명 나도 저런 적이 있는데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저자는 모유를 쉽게 끊었다고 했지만 나는 두 아이 모두 모유를 힘들게 떼었고, 오랫동안 엄마의 젖가슴에 집착하는 아이들이 힘겨웠다. 그러면서도 모유를 떼어버렸을 때의 서운함이 기억난다. 모유를 먹이는 일은 무척 힘들었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는 기분이 드는 일 중의 하나였다. 내 몸을 통해 한 생명이 살아가게 만드는 일. 감격스럽고, 신비롭고, 내 존재의 이유 같았다. 그런 다음 모유를 떼버린 아이를 볼 때마다 시원섭섭하고, 내 품에 안겼던 아이가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이제는 자기 방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며 앞으로는 더 멀어질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런 아이가 내가 해 준 음식 하나만이라도 소울푸드로 기억해 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한다.

네가 연인과 먹는 밥이, 언젠가 ‘가족’이 먹는 밥이 되기를. 그리고 그 축적이 둘도 없는 지층이 되어 너의 인생을 빚어 가기를. 가능하면 그 인생이 행복하기를. 72쪽

함께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장 행복하다. 그럼에도 얼마나 그 사실을 잊고 살았을까? 밥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겨워하고, 다 먹은 뒤에 치워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하고, 먹고 사는 게 왜 이렇게 빡빡한가 한탄을 하기도 했던 시간들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미안해진다. ‘인생은 한 번밖에 없으니 가능하면 행복한 편이 좋다. 가능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게 먹는 편이 좋다.’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나에게도,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꾸려갈 내 아이들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노력을 쥐어짜야 한다. 요리에 재능이 없으니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시간과 돈을 더 들여야 한다. 대만 일러스트레이터 수피 탕이 그려낸 따뜻한 식탁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건강과 정갈함이 어우러진 식탁에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있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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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와 나
장태완 지음, 이원복 엮음 / 이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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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보지 않았더라면 장태완 장군을 몰랐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던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먹먹했던 기억이 가득하다. 분명 12·12 군사반란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왜 저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지 답답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영화를 볼 때처럼 막막함이 나를 지배할까봐 두려웠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역사를 오롯이 목도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것도 분명 울화가 터질 것 같은 상황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책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읽기를 차일피일 미뤘는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열 때마다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 굳이 마주해야 하는지 몇 번씩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의무감 아닌 의무감으로 마주한 진실은 나를 그날의 사건 현장으로 데려다 놓은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생생했다. 당연하지 않아야 함에도 장태완 장군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씁쓸했다.


12·12 군사반란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거듭 말했듯 오래전부터 정권 찬탈을 목적으로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 정치군인들이 주도하에 치밀하게 계획된 쿠데타였다. 214쪽


장태완 장군의 기록이 드러나면 날수록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계획된 쿠데타’였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군대에서 사조직은 엄연히 이뤄져서는 안 되지만 자꾸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일명 ‘윤필용 사건’ 때 하나회를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호를 받았기 때문에 거대해졌고, 10·26 사건부터 12·12 군사반란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윤필용 사건’이 일어났을 때라도 하나회 조직을 와해시켰다면 이런 참담함은 겪지 않아도 됐을 거라는, ‘만약’이라는 가정에 자꾸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장태완 장군의 생생한 증언으로 그날의 상황을 상세하게 알게 되었지만 참담함의 몫도 만만치 않았다.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 장군을 무장 병력까지 동원해 강제 연행하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협박 같은 재가를 요구하고, 그런 상황에서 노재현 국방부 장관은 공관에서 총소리가 나자 이웃에 있는 단국대학교 체육관으로 아들과 부인 등 가족을 데리고 피신을 가 있었다. 느지막이 국방부에 도착해서 ‘소수 정치군인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황에 대처하지 않고’ 경계가 허술해서 불안하다며 실병력이 있는 수도경비사령부로 옮기자고 지시한 뒤 본인은 미 제8군 벙커로 숨어버렸다. 군대라는 체계가 이렇게 허술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과 곪을 대로 곪아버린 조직에 제대로 된 군인이 몇 없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지켜보는 이도 이러한데 현장에서 이 모든 사실을 겪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장태완 장군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이 모든 일이 수도경비사령관으로 부임한지 24일 만에 일어났으니 죄책감과 무력감도 엄청났을 것이다.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불충의 죄를 갚기 위해 진압의 유일한 책임 지휘관으로서 진압 작전의 상세한 상황일지 및 경위, 진압 실패 원인 등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언젠가 있을 공정한 진상규명과 주동자들에 대한 단죄를 위해서라도 실증적 증언을 기록으로 남겨 둬야 또다시 군사 쿠데타와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332쪽


이 책은 12·12 군사반란 기록의 의미로 엄청나다. 하지만 한 사람의 군인으로서 죄책감과 참담함을 가눌 길이 없어 쓴 울분을 토하는 독백으로 볼 수 있다. 장태완 장군은 시종일관 군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죄인으로 법의 단죄를 받아야 할 인물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 장태완 장군은 반란군을 진압했다는 이유만으로 옥살이를 하고,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난다. 결국 예편을 하고, 아버지는 장태완 장군이 군대에서 강제 퇴출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얼마 안 가 돌아가시고, 서울대 자연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아들은 의문을 죽음을 당하고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견딘 뒤 장태완 장군이 심장 수술을 받기 직전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일념하에 초고를 쓰고 6년 뒤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 이후의 장태완 장군의 삶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2010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2년 뒤에 부인은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삶을 이렇게 몇 줄로 읽어 내려가도 되는지 복잡다단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버텼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군인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왜 정의로운 편에 선 사람은 더 고통받아야 하는지 영화를 볼 때 보다 더 참담해졌다. 그럼에도 역사는 그 과정에서 희생된 3명의 군인들(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 과정에서 사살된 김오랑 소령, 국방부 헌병중대 정선엽 병장, 수경사 33헌병대 소속 박윤관 일병) 을 포함해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기록이 진심으로 ‘공정한 진상규명과 주동자들에 대한 단죄를 위해서라도 실증적 증언을 기록’이 되어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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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영화를 보면서 답답함에 옆에 있는 팝콘을 먹지 못하고 거의 남기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몇 번이고 쿠테타를 막을 기회가 있었는데, 왜 못 막았는지 너무 답답했다.

그리고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이 혼자서 바리게이트를 뚫고 나갈 때 슬펐다.

너무 외로워 보였다.

눈물이 날 장면이 아닐 수도 있는데 울컥했다.








이태신 역의 실제 인물인 고(故) 장태완 장군의 회고록이 출간된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 책을 읽으면 더 답답해질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약 장바구니에 일단 담아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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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중요하고 믿을 수 없게 친근한 경제 - 경제 뉴스 앞에 작아지는 이들을 위해
베스 레슬리.조 리처즈 지음, 임경은 옮김 / 이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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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포기하지 말자! 어렵다고, 나와 상관없는 얘기라고 치부하지 말고, 이 책으로부터 친절한 안내를
받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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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씨의 친구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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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영원하다라는 말을 믿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오랫동안 유지 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던 관계는 분명 있었다. 그래서인지 띠지에 적힌 소중한 관계도 사소한 균열 하나로 간단히 깨져버린다.’라는 말이 참 씁쓸했다. 나이가 들면 좀 덜할 줄 알았는데, 늘상 익숙해지지 않는 건 어떻게든 얽히게 되는 관계다. 어떤 관계든 유지가 되려면 노력해야 하고, 시간을 쏟아야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 미우라 씨가 하우스 셰어를 하며 친구와 함께 지내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타인과 한집에 살면서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미우라 씨가 친구와 함께 대화하고, 동네 구경을 시켜주는 부분에서 이 친구는 참 말이 별로 없네.’라는 생각을 하며, 미우라 씨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본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책 제목이 자꾸 마음에 걸려 나중에 사이가 안 좋아지는 건 아닐까 계속 걱정을 했다. 사이가 멀어진 친구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미우라 씨의 친구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첫 부분으로 돌아가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미우라 씨의 친구가 로봇이었다니! 사람과 너무 비슷해서 로봇이라고 의심하지 않았고, <친구>라는 작품이 미우라 씨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하면서 저자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썼는지 놀라웠다.

 

저자의 작품을 많이 읽어 온 독자라면 이번 작품이 낯설었을 것이다. 나 또한 저자의 만화를 모두 소장하고 있는 터라 비슷한 느낌의 작품일 거라 여기고 편한 마음으로 책을 꺼내 들었다. 번역가도 스포 금지를 할 정도였으니 나도 친구의 정체를 밝히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친구의 정체는 반전이긴 하나 그 친구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 이 작품의 또 다른 의미들이 묻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 작품을 만든 카지 씨의 의도와 미우라 씨와의 설레는 로맨스가 그랬다. 물론 백만 엔이나 하는 로봇의 가격도 그렇고, 관처럼 생긴 박스에(적절치 않은 표현인 건 알지만!) 배달되어 온 모습이나, 초기설정 된 네 개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낯설고 무섭기도 했다. 왜 꼭 로봇이어야 했는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같은 직장 동료인 미우라 씨와 카지 씨가 서로가 엄청난 걸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서서히 호감을 갖는 과정에서 괜히 애가 타고 설레기도 했다. 서로가 언제 알아차릴지 궁금했지만 끝까지 밝혀지지는 않았다. 로봇을 만든 작가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여동생의 현재 모습을 추측하며 만든 <친구>라는 작품의 의도를 다양한 곳에 가보길 원할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하는 미우라 씨의 모습의 시선도 신선했다. 감정이 없는 로봇이고, 상대방의 표정과 눈동자를 파악해 네 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했지만 그런 로봇과 피크닉도 함께 가고, 산책을 하는 모습과 그 소식을 듣고 좋아하던 <친구>의 작가의 반응에 그제야 조금 공감할 수 있었다. 여동생이 어릴 때 세상을 떠났으니 현재 이런 모습으로 세상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해했다. 그런 의도를 미우라 씨가 공감해 주었고, 그랬기에 함께 살며 친구처럼 대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로봇이 등장했으니 먼 미래 사회를 말하는 것 같고, 사람과 너무 비슷한 모습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형태만 다를 뿐 인공지능이나 가상 세계는 우리 주변에 이미 상용화되어 있으며, 어쩌면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로봇을 인간의 어느 영역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찰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중에 미우라 씨가 로봇을 작가에게 다시 반품한 것도, 작가가 전액을 돌려준 것도 결국은 사람때문이라고 느꼈다. 애인이 생긴 미우라 씨, <친구>라는 작품이 진정한 친구를 만나서 행복한 경험을 하고 네 개의 단어를 모두 말한 것으로 <친구>를 만든 작가의 의도는 모두 발현된 것이 아닐까? 세상을 떠난 여동생이 다시 돌아올 수 없듯이 현재 누려야 할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했다. 그 관계에 로봇이 방해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매개물이 단지 사람과 너무 비슷해 놀랍고 무서웠던 로봇이었을 뿐, 복잡다단한 감정을 지닌 인간이 로봇보다 더 자유로운 존재였다고 말이다.

 

저자의 만화 데뷔 20주년이라는 사실도 놀랍고, 기념비적인 작품에 이런 주제를 쓴 것도 신선했다. 저자의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섬세한 감정 묘사와 타인과 자신에 대한 관찰 때문인데, 로봇을 등장시켰다는 것도 사회적 흐름을 관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면서 좀 더 친구라는 의미를 확장시켜 본다. 인간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자연적 조건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인간과 동등함의 기준을 더 확대시킬 때 좀 더 미래지향적인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의 미우라 씨와 <친구>의 어색하지 않은 다정한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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