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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ㅣ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청소년 문학을 보면 이제는 그리움이 인다. 내 책장을 어느 정도 차지했던 청소년 문학에 손을 뻗을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책들을 모두 두고 타지로 나와 보니, 내가 얼마나 행복한 공간에서 지냈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오히려 내 방을 쓰고 있는 조카가 부러울 지경이다. 조카에게 책장의 청소년 문학을 추천해 주고 왔으면서도, 정작 내가 이렇게 멈춰 있는 것이 조금은 어불성설처럼 느껴져 타지에 와서 한참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빵과 장미>를 손에 쥐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낯선 저자라서 갸웃거리다가 '뉴베리 상 2회 수상작가'란 타이틀과 <내가 사랑한 야곱>의 저자라는 사실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뉴베리 상'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상이고, 상의 타이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작품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에 그 타이틀에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엔 책 제목을 보고 풋풋한 연애소설일거라 착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겉표지의 소녀와 소년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제목을 좀 더 생각해 본다면 익히 들어온 슬로건이라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파업을 배경으로, 그 당시 머나먼 버몬트 주로 보내진 아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쓰인 청소년 소설이라고 한다. '빵과 장미'라는 슬로건이 나오는 배경을 소설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당시 역사적인 파업의 현장을 아이들의 눈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라는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빵도 원하고 장미도 원했던 것처럼, 파업을 정의롭게 외치는 어른과 비난하는 어른 속에서 아이들의 혼란과 성장을 그려내고 있었다.
로사는 총명하고 가족을 무척이나 생각하는 아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더 기울어진 가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해 선생님의 총애도 받고 있었다. 엄마와 언니가 공장에서 벌어오는 주급으로 넉넉한 생활을 못하고 있었지만 가족 간의 끈끈함을 알고, 불평이 있더라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착한 아이었다. 그런 로사 네의 빵의 공급처이자 온 식구의 생계수단인 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난다. 그것도 모자라 로사의 엄마와 언니가 파업에 동참하면서 로사는 갈수록 걱정이 늘어만 간다. 학교에서는 파업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수입이 없자 로사 네는 더 궁핍해져만 간다. 어떤 것이 옳은지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파업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몰랐고, 그런 로사 앞에 제이크라는 소년이 나타난다.
제이크는 로사처럼 파업하는 어른들 틈에서 더 심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었다. 제이크 또한 자신을 감싸주는 무리와 비난하는 무리를 모두 겪게 된다. 하지만 제이크에게는 형편없는 주급과 공장주의 횡포보다 자신이 벌어온 돈을 모두 뺏어가고 그것도 모자라 매질까지 하는 아버지란 존재가 더 두려웠다. 당연히 늘 춥고 배가 고팠고, 아버지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했다. 로사를 만나게 된 날도 아버지를 피해 쓰레기 더미에서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다. 로사는 그런 제이크를 자신의 집 거실에서 몰래 재웠고, 그때부터 둘은 인연을 맺게 된다. 둘 다 평안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로사와 제이크의 시선은 무척 달랐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로사는 엄마와 언니가 파업을 하지 않기 바랐고, 공부도 계속 할 수 있기 바랐다. 파업의 정당성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반면 제이크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원했다. 그러다보니 자꾸 도둑질을 하게 되고, 늘 어디론가 도망칠 생각만 하게 되어 늘 불안하고 두려움이 가득 몰려왔다.
로사와 제이크의 시선에서 비춰지는 파업의 현장은 생생하긴 하지만 아이들의 의식만큼이나 혼란스럽고 또렷하지 못했다. 파업이 진척되는 상황을 아이들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달리 보여주다 보니, 아이들만큼이나 무엇이 정당한지 어지러운 현실만 보였다. 그런 혼란스러움을 조금이나마 잠식시켜 주는 사건이 있었다면 로사가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란 슬로건을 쓰게 된 일이었다. 유명한 운동가의 방문 환영회 때 쓰일 피켓의 글씨를 쓰면서 로사는 어른들이 파업을 하는 것을 선생님이 알려준 것처럼, 자신과 가족들이 배를 곯는 어리석은 일로만 생각하지 않게 된다. 제이크 또한 도둑질과 거짓말을 일삼으며 배고픈 생활을 하면서 파업의 현장을 또렷이 보게 된다. 파업에 동참하면서 음식을 얻어먹기도 하며, 물벼락을 맞고, 여성운동가의 모습에 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이크의 삶에 필요한 것은 파업의 혼돈이 아니라 안정이었다.
로사가 집을 떠나게 된 것은 장기화되는 파업 가운데 아이들이 점점 피폐한 생활을 하게 되자 잠시나마 안정된 곳으로 보내자는 위원회의 의견 때문이었다. 우선 로사가 버몬트 주로 떠나게 되고, 이상한 우연으로 제이크 또한 로사가 탄 기차에 불법으로 탑승하게 된다. 명단에 없던 제이크를 위해 로사는 오빠라고 거짓말을 하고, 함께 노부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자아이만을 맡기로 했던 노부부는 제이크를 반기지 않았지만 로사의 부탁으로 같이 머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사는 노부부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안정을 되찾는가 싶었지만 끊임없이 가족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게 된다. 반면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고 도망치듯 버몬트 주로 온 제이크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두려움 때문에 그곳이 좋으면서도 자꾸 떠나려고 했다. 파업의 쟁점 속에서 두 아이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품으며 노부부의 집에서 풍요로운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로사는 파업이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늘 도망칠 궁리만 하던 제이크는 아들을 잃고 마음을 닫고 사는 자신을 보살펴 준 할아버지에 의해 신분이 탄로 나고 만다. 하지만 제이크의 비밀과 두려움을 알게 된 할아버지는 제이크를 어느 곳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 머물게 함으로써 잠정적인 해피엔딩으로 책은 끝이 난다. 파업으로 인해 제이크는 따뜻한 가정과 보살핌을 받게 되었고, 로사 또한 혼란스러운 과정을 잘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잠정적인 해피엔딩이라고 했지만 두 아이들이 모두 안정을 얻게 된 만큼, 지속적인 해피엔딩이 될 가능성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책의 제목처럼 빵이 필요한 제이크와 장미가 필요한 로사를 그리고 있지만, 결국은 두 아이 모두에게 빵과 장미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소설이었다. 당시 미국 산업혁명에 필수 불가결했던 이민 노동자와 토박이 아이의 시선을 통해 저자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빵도 중요하고 장미도 중요하다는 의미는 물론, 그런 가운데도 아이들은 성장해가고 그 모든 것을 흡수하며 기억한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