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기둥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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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진진한 소설! 어서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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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수다 - 여자, 서양미술을 비틀다
김영숙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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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저자 이름만 보고 사게 되는 책이 있다. 그런 저자들은 내게 무척 특별한데, 미술 분야에서는 김영숙님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이란 책으로 처음 만난 뒤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으로 이름만 보고 책을 사게 되는 반열에 올려놓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을 때 <그림 수다>란 책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그동안의 무관심도 메울 겸 책을 바로 읽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저자에 대한 애정이 다시 샘솟았다. 나처럼 그림에 대해선 아는 것은 없어도,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주는 저자의 책을 꼭 만나보길 바란다.

 

  <그림 수다>의 추천사에서 노성두님은 "이 책은 아줌마가 쓴 서양미술 이야기이다."라고 했다. 아줌마가 썼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명화들을 특유의 솜씨로 요리해 내는 아줌마의 불가사의를 칭찬하고 있었다. 제목에도 '수다'가 들어가 있는 만큼 이 책은 서양미술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늦깎이로 미술사를 공부한 탓인지, 자칫 배웠다는 사람들만 즐길 것 같은 미술, 보통 사람들에게 여전히 어렵게 다가오는 미술을 쉽고 재미나게 풀어주는 매력을 지녔다. 아줌마들의 수다에 그냥 서양미술을 끼워 넣은 것처럼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재미나게 읽었고, 어려워서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미술에 한 발짝 다가간 기분이다.

 

  어떠한 설명이 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느낌이 전달되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적절한 설명이 가미될 때 확 다가오는 그림이 있다. 아는 그림이 없어서이기도 했거니와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후자에 속한다.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진부한 설명이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리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나로서는 수다와 설명이 적적히 섞인 저자의 글이 무척 좋다. <화가에게 그녀는> <그들에게 사랑은> <우리 앞에 그림은> 총 세 단락으로 구성된 그림을 만나다 보면, 그림 속에는 참 많은 의미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그림에 혼신의 힘을 담는 화가가 있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그림이 있으며,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실감나게 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익히 알고 있다는 화가에 관한 개인사와 그림 속에 들어간 의미였다. 너무 유명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 화가와 작품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어쩔 땐 생경한 얘기가 들려와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몰라도 볼 수 있지만, 알면 더 잘 보이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라고 말한 저자의 말처럼, 그런 나의 무지를 앎으로 채워가듯 열심히 그림을 들여다보고 사연을 듣고 있자니 현실을 망각할 정도로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알지 못했던 그림에 대한 숨겨진 비밀은 분명 흥미로웠고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화가들의 개인사를 알고 나서 그림을 보니 그들의 삶이 그림에 온전히 녹아 있는 것 같아 더 애절하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오히려 반대로 화가들의 개인사는 너무 구구절절해서 금방 잊어버리고,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가는 것이 더 재미났는데, 그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해서인지 인생의 혼이 깃든 그림들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데모폰 장군과 트라키아 성의 공주 필리스의 사랑 얘기 안에 깃든 아몬드 나무 이야기는 너무나 절절했고, 로댕을 너무나 깊이 사랑한 클로델의 비극이 가슴 아팠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림을 그려낸 프리다 칼로가 대단한 반면, 그녀를 아프게 한 디에고가 미웠다. 그런 그들의 삶을 그대로 드러낸 미술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캔버스 안에 그려진 한 편의 그림이 아니라 삶 자제가 그 안에 들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이면이라는 것일까?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작품 속에 담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보는 육안을 조금씩 길러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책은 분명 서양 미술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나게 말하고 있지만, 수다를 떨다 화가나 작품에 대한 중요 점을 놓치게 놔두지는 않는다. 짧은 단락으로 이뤄진 글 안에는 수다와 설명이 적절히 섞여있어 독자를 저자의 시선 안에 머무르게 한다. 저자는 2003년에 출간된 책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초판을 살리되 보충할 부분과 더 많은 그림을 소개했다고 했다. 비교적 저자의 초기작이라서 그런지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느껴진 반면 최근 글에서 맛보지 못한 풋풋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곳곳에 화두를 던져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 누드, 분명 나쁜 남자인데도 여자가 더 나쁘게 알려지는 의아함, 유명 미술관에 걸린 대부분의 작품이 남자 화가들의 작품이고 여성은 남자들의 그림의 모델, 특히 누드였다는 것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페미니즘적인 발상이라고 말하지 모르나, 저자는 여는 글에 '남성들에게 다소 공격적일 수 있는 이 글은 미술사에서는 이미 공공연해진 이론을 바탕 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 공격의 대상이 결국은 '나쁜' 남자들을 겨냥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수다를 재미나게 들었다고 하면서도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던 나도 자칫 곁길로 빠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런 화두에 수긍이 가는 것을 보니, 한번쯤은 '나쁜' 남자들을 겨냥하고 싶은 여자였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난 후 처음으로 독립한 나의 공간에서 만족스런 독서를 했다고 느낄 정도로 뿌듯함이 밀려왔다. 독립된 공간의 이질감 때문에 그동안 익숙했던 공간에서처럼 편안한 독서를 할 수 없었다. 의무감으로 읽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밀려올 정도의 독서였는데, 오랜만에 나의 관심분야의 책을 읽어서인지 독서의 묘미를 회복한 기분마저 든다. 이래서 책을 멀리 할 수 없고, 책을 읽는 것에 감사하며, 새로운 세계로의 이끌림에 꼼짝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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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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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풍경, 감미로운 음악, 기분 좋은 산책을 할 때면 내 곁에 누군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곤 잠시 마음을 주었던 어떤 이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런 떠올림도 잠시, 설핏 웃음을 흘리면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황망했다. 그 사람을 떠올리기엔 나의 마음이 부족하다고, 어떠한 확신도 없으며, 상황에 따라 쉽게 마음이 변해버릴 거라고 스스로를 붙들었다. 깊은 열정 없이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을 발설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을 더 굳게 만든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22살에 읽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에게 큰 감흥을 주었기보다 어렵게 생각했던 작품이 쉽게 읽혔다는 것에 더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흘러 서른 살에 만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미 같은 작품이면서도 다른 작품이었다. 그 사이 베르테르의 선택을 극단적으로만 보았던 시선을 누그러트렸고, 인간의 내면이 사랑에 의해 열정적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에 위대함을, 절망감이 목숨을 앗아 갈수도 있다는 것에 위험한 유혹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드러낸 채 사랑에 온 몸을 던진 베르테르의 순정에 경외감이 생겨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게 무척 평화로운 시간이다. 가족들의 대화 소리가 나긋하게 들려오고, 사방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는 오랜만에 만끽한 휴가를 더 빛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당에 가득 찬 달빛을 보며 산책을 하다가도 명확하지 않은 누군가가 그리워져 살짝 쓸쓸해지려 했다. 베르테르였다면 이런 고즈넉함 속에서 로테를 떠올렸을 테고, 환희보다 가슴 아픈 고통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그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 로테. 그녀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그녀를 가슴에 품고 죽음을 선택했던 베르테르를 떠올리면, 마당을 거니는 나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첫 눈에 상대를 알아보고, 그동안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노라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이제나저제나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면서도, 정작 먼저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는 나이고, 주변에서도 그런 사랑을 꿈꾸느라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사랑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원하며 연애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나약하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눈에 반한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그녀 존재 자체를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게 드높이는 베르테르 앞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조금 나눠주는 것에도 겁내 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총 82편으로 구성된 베르테르의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 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로테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의 그의 삶은 온통 사랑과 고통, 절망과 환희로 뒤덮여 있었다. 로테가 곁에 있을 때 그의 삶은 빛이 났고, 그녀가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할 때면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무엇보다 현명하고 이성적이었던 그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피폐하게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로테를 향한 마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그를 위대하고 숭고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반면 세상에서 가장 고난 받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다네. 나는 오직 그녀만을 마음 속 깊이 흠모하고, 그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말일세!”

   로테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그는 친구인 빌헬름에게 고통에 찬 편지를 보낸다. 한 사람을 이렇게 고통이 가미한 깊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우면서도 마음 아팠던 구절이었다. 로테가 자신의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남편보다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을 거라는 베르테르의 독백이 가슴 절절하게 와 닿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한 쪽만 부풀려 진다고 해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났을 당시만 해도 이미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그녀가 결혼을 했음에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떠날 수 없을 만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로테였고, 그녀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사랑을 한 베르테르. 한 발짝도 물러 설 곳이 없는 그의 처지가 잔인할 만큼 안타까웠다. 그녀를 가질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지 그의 편지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말로도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베르테르는 ‘자살행위를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고, ‘나약함이나 병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일축해 버리는’ 알베르토와의 논쟁에서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예견했었다. 하지만 베르테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을지라도, 남겨진 사람들에겐 슬픔과 고통, 죄책감이 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 것은 여전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베르테르의 고통을 남겨진 사람들과 비교한 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지만, 슬픔 가득한 베르테르를 최후가  마음 아플 뿐이다.

  사랑 때문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고통 받는 베르테르를 지켜보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지만, 그의 편지에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얻고 말았다. 베르테르처럼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그녀를 향한 열정적인 마음의 일환으로 시를 읽어줄 자신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싶었다. 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을 닮고 싶긴 하나, 그것이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베르테르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열망과 사랑의 고통으로 범벅된 아픔이 서려 있다. 그런 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승화시켜 절망적인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기보다, 환희에 찬 사랑의 릴레이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무리가 아니길 진정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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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풍경, 감미로운 음악, 기분 좋은 산책을 할 때면 내 곁에 누군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곤 잠시 마음을 주었던 어떤 이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런 떠올림도 잠시, 설핏 웃음을 흘리면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황망했다. 그 사람을 떠올리기엔 나의 마음이 부족하다고, 어떠한 확신도 없으며, 상황에 따라 쉽게 마음이 변해버릴 거라고 스스로를 붙들었다. 깊은 열정 없이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을 발설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을 더 굳게 만든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22살에 읽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에게 큰 감흥을 주었기보다 어렵게 생각했던 작품이 쉽게 읽혔다는 것에 더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흘러 서른 살에 만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미 같은 작품이면서도 다른 작품이었다. 그 사이 베르테르의 선택을 극단적으로만 보았던 시선을 누그러트렸고, 인간의 내면이 사랑에 의해 열정적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에 위대함을, 절망감이 목숨을 앗아 갈수도 있다는 것에 위험한 유혹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드러낸 채 사랑에 온 몸을 던진 베르테르의 순정에 경외감이 생겨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게 무척 평화로운 시간이다. 가족들의 대화 소리가 나긋하게 들려오고, 사방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는 오랜만에 만끽한 휴가를 더 빛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당에 가득 찬 달빛을 보며 산책을 하다가도 명확하지 않은 누군가가 그리워져 살짝 쓸쓸해지려 했다. 베르테르였다면 이런 고즈넉함 속에서 로테를 떠올렸을 테고, 환희보다 가슴 아픈 고통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그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 로테. 그녀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그녀를 가슴에 품고 죽음을 선택했던 베르테르를 떠올리면, 마당을 거니는 나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첫 눈에 상대를 알아보고, 그동안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노라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이제나저제나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면서도, 정작 먼저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는 나이고, 주변에서도 그런 사랑을 꿈꾸느라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사랑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원하며 연애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나약하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눈에 반한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그녀 존재 자체를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게 드높이는 베르테르 앞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조금 나눠주는 것에도 겁내 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총 82편으로 구성된 베르테르의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 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로테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의 그의 삶은 온통 사랑과 고통, 절망과 환희로 뒤덮여 있었다. 로테가 곁에 있을 때 그의 삶은 빛이 났고, 그녀가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할 때면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무엇보다 현명하고 이성적이었던 그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피폐하게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로테를 향한 마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그를 위대하고 숭고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반면 세상에서 가장 고난 받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다네. 나는 오직 그녀만을 마음 속 깊이 흠모하고, 그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말일세!”

  로테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그는 친구인 빌헬름에게 고통에 찬 편지를 보낸다. 한 사람을 이렇게 고통이 가미한 깊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우면서도 마음 아팠던 구절이었다. 로테가 자신의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남편보다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을 거라는 베르테르의 독백이 가슴 절절하게 와 닿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한 쪽만 부풀려 진다고 해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났을 당시만 해도 이미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그녀가 결혼을 했음에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떠날 수 없을 만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로테였고, 그녀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사랑을 한 베르테르. 한 발짝도 물러 설 곳이 없는 그의 처지가 잔인할 만큼 안타까웠다. 그녀를 가질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지 그의 편지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말로도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베르테르는 ‘자살행위를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고, ‘나약함이나 병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일축해 버리는’ 알베르토와의 논쟁에서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예견했었다. 하지만 베르테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을지라도, 남겨진 사람들에겐 슬픔과 고통, 죄책감이 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 것은 여전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베르테르의 고통을 남겨진 사람들과 비교한 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지만, 슬픔 가득한 베르테르를 최후가  마음 아플 뿐이다.

 

  사랑 때문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고통 받는 베르테르를 지켜보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지만, 그의 편지에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얻고 말았다. 베르테르처럼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그녀를 향한 열정적인 마음의 일환으로 시를 읽어줄 자신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싶었다. 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을 닮고 싶긴 하나, 그것이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베르테르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열망과 사랑의 고통으로 범벅된 아픔이 서려 있다. 그런 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승화시켜 절망적인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기보다, 환희에 찬 사랑의 릴레이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무리가 아니길 진정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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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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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20대 초반에 읽은 『상실의 시대』가 전부였고, 6년 만에 선보인 신작 『1Q84』로 조우하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많이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많이 읽었다고도 할 수 없었다.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작품을 읽어봐야지 하고 있던 찰나, 마치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듯 하루키 단편집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일명 ‘하루키 3종 세트'로 불리는 단편집이었다. 책도 얇고 겉표지도 너무 예뻐 하루키의 장편이 아닌 단편을 마주하면서 무엇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여기저기서 입소문을 많이들은 『빵가게 재습격』을 먼저 읽었다. 세 권의 단편집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제목과 겉표지여서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하루키의 단편집은 처음 마주하는 터라 『빵가게 재습격』의 전에 『빵가게 습격』이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도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빵가게 습격』도 무척 궁금했는데, 『빵가게 재습격』에서 내용을 말해주어 일단의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빵가게 재습격』에서는 새벽 두시 잠을 깬 부부가 심한 공복감에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빵가게를 습격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 주고 두 번째 빵가게 습격에 나서는 내용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에 맞는 빵가게가 없어 결국 맥도날드를 습격하게 된다. 차라리 돈을 털어가라는 점원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빅맥 30개를 챙긴 그들은 미친 듯이 공복을 메운다. 마침 깊은 밤에 책을 읽던 나도 공복을 느껴 빅맥이 먹고 싶어 어찌나 몸부림을 쳤는지 모른다. 우리동네에는 맥도날드도 없고, 먹을 것을 사러 나갈 자동차도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퍼질 정도였다.

 

  『빵가게 재습격』을 시작으로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는 내내, 정말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해 ‘나는 늘 배고프다.’라는 유행어가 절로 나왔다. 하루키의 소설을 대부분 읽은 지인에게 푸념을 했더니, 에세이를 읽어보면 더 심하단다. 음식에 대한 묘사를 읽고 있노라면 밥을 먹은 뒤라도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을 때는 늘 배를 두둑하게 채워두었다. 음식 얘기가 맛깔나게 펼쳐지니 배가 고프더라도 포만감을 내세워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맥도날드를 지나칠 때마다 소설속의 부부가 생각나 슬그머니 미소가 머금어졌 는데, 며칠 전 정말 새벽에 맥도날드에 갈 일이 생겼다. 사정상 빅맥이 아닌 사이다를 마시면서도 점원들이 소설속의 점원으로 보이고, 빅맥 30개를 만들어 달라고 소리쳐도 그대로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 주인공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담느라 혼났다.

 

  『빵가게 재습격』 단편집에는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는데, 모두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었다. 특히나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은 하루키의 대표작인 『태엽감는 새』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하니, 장편이 탄생하기 전에 쓴 단편을 만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모르는 여자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부터 시작해 기묘하게 흘러가는 하루를 드러낸 소설이었는데, 조금은 특별하면서도 평이한 하루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저자의 저력을 맛보기도 한 작품이었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와타나베 노보루’란 이름이 연속으로 등장하는데, 그 이름을 찾아 다른 단편과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코끼리의 소멸』에서는 사육사로, 『패밀리 어페어』에서는 여동생의 남자친구로,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에서는 동업자로,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고양이로 등장하는 이름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름 하나로 소설들의 연관성을 만들어 내서인지, 다른 이야기면서도 같은 이야기인 착각이 일어나기도 했다.


  『빵가게 재습격』에 등장한 단편들을 읽고 있으면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가 ‘상실과 소멸’ 이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위기의 ‘상실과 소멸’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코끼리의 소멸』에서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마을의 축사 코끼리와 사육사의 소멸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파티에서 만난 여자에게 코끼리가 사라지던 날을 목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끼리의 소멸은 불가사의 하면서도 왠지 모를 현실감을 띠고 있어 현대인의 위치와 존재감을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했다. 『패밀리 어페어』는 비교적 사이가 좋은 여동생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일상을 다루고 있었다. 남매 사이에 새로운 인물이 끼어들면서 무언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고 믿는 주인공은 비교적 잔잔하게 상실감을 드러내고 있었다.『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에서도 번역 사무실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한 쌍둥이의 사진으로 그녀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한다. 사진 속에서 만난 그녀들의 모습이 낯선 만큼 주인공에겐 그녀들과 정말 같이 살았는지에 대한 여부도 희미할 정도다. 이미 상실해 버린 것을 다시 끌어 오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현재를 느끼며 존재했던 시간들에 추억이라는 더께를 입힐 뿐이었다. 


  이렇듯 『빵가게 재습격』으로 시작한 조금은 명랑(?)한 ‘소멸과 상실’은 다양한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을 엿보게 되는 것은 물론 단편 소설의 매력도 만끽하게 되었다. 두 편의 장편소설밖에 만나지 않은 나로서는 단편 소설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고, 『빵가게 재습격』과 함께 나온 『반딧불이』 『회전목마의 데드히트』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바로 나머지 단편집을 읽어 보겠노라 다짐하면서 이렇게 연속적으로 하루키의 작품과 계속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어떤 작가를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학적인 만남으로 이어나가는 바탕에는 그의 많은 작품을 섭렵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너무나 유명한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을 이미 읽어본 듯한 착각이 일지만, 조금은 더디더라도 이렇게 차근차근 만남을 이어갔으면 한다. 장편소설, 단편소설,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역량을 발휘하는 작가이기에, 앞으로 나와 어떤 만남이 이어질지 기대가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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