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20대 초반에 읽은 『상실의 시대』가 전부였고, 6년 만에 선보인 신작 『1Q84』로 조우하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많이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많이 읽었다고도 할 수 없었다.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작품을 읽어봐야지 하고 있던 찰나, 마치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듯 하루키 단편집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일명 ‘하루키 3종 세트'로 불리는 단편집이었다. 책도 얇고 겉표지도 너무 예뻐 하루키의 장편이 아닌 단편을 마주하면서 무엇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여기저기서 입소문을 많이들은 『빵가게 재습격』을 먼저 읽었다. 세 권의 단편집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제목과 겉표지여서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하루키의 단편집은 처음 마주하는 터라 『빵가게 재습격』의 전에 『빵가게 습격』이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도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빵가게 습격』도 무척 궁금했는데, 『빵가게 재습격』에서 내용을 말해주어 일단의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빵가게 재습격』에서는 새벽 두시 잠을 깬 부부가 심한 공복감에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빵가게를 습격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 주고 두 번째 빵가게 습격에 나서는 내용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에 맞는 빵가게가 없어 결국 맥도날드를 습격하게 된다. 차라리 돈을 털어가라는 점원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빅맥 30개를 챙긴 그들은 미친 듯이 공복을 메운다. 마침 깊은 밤에 책을 읽던 나도 공복을 느껴 빅맥이 먹고 싶어 어찌나 몸부림을 쳤는지 모른다. 우리동네에는 맥도날드도 없고, 먹을 것을 사러 나갈 자동차도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퍼질 정도였다.

 

  『빵가게 재습격』을 시작으로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는 내내, 정말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해 ‘나는 늘 배고프다.’라는 유행어가 절로 나왔다. 하루키의 소설을 대부분 읽은 지인에게 푸념을 했더니, 에세이를 읽어보면 더 심하단다. 음식에 대한 묘사를 읽고 있노라면 밥을 먹은 뒤라도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을 때는 늘 배를 두둑하게 채워두었다. 음식 얘기가 맛깔나게 펼쳐지니 배가 고프더라도 포만감을 내세워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맥도날드를 지나칠 때마다 소설속의 부부가 생각나 슬그머니 미소가 머금어졌 는데, 며칠 전 정말 새벽에 맥도날드에 갈 일이 생겼다. 사정상 빅맥이 아닌 사이다를 마시면서도 점원들이 소설속의 점원으로 보이고, 빅맥 30개를 만들어 달라고 소리쳐도 그대로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 주인공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담느라 혼났다.

 

  『빵가게 재습격』 단편집에는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는데, 모두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었다. 특히나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은 하루키의 대표작인 『태엽감는 새』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하니, 장편이 탄생하기 전에 쓴 단편을 만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모르는 여자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부터 시작해 기묘하게 흘러가는 하루를 드러낸 소설이었는데, 조금은 특별하면서도 평이한 하루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저자의 저력을 맛보기도 한 작품이었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와타나베 노보루’란 이름이 연속으로 등장하는데, 그 이름을 찾아 다른 단편과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코끼리의 소멸』에서는 사육사로, 『패밀리 어페어』에서는 여동생의 남자친구로,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에서는 동업자로,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고양이로 등장하는 이름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름 하나로 소설들의 연관성을 만들어 내서인지, 다른 이야기면서도 같은 이야기인 착각이 일어나기도 했다.


  『빵가게 재습격』에 등장한 단편들을 읽고 있으면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가 ‘상실과 소멸’ 이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위기의 ‘상실과 소멸’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코끼리의 소멸』에서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마을의 축사 코끼리와 사육사의 소멸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파티에서 만난 여자에게 코끼리가 사라지던 날을 목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끼리의 소멸은 불가사의 하면서도 왠지 모를 현실감을 띠고 있어 현대인의 위치와 존재감을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했다. 『패밀리 어페어』는 비교적 사이가 좋은 여동생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일상을 다루고 있었다. 남매 사이에 새로운 인물이 끼어들면서 무언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고 믿는 주인공은 비교적 잔잔하게 상실감을 드러내고 있었다.『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에서도 번역 사무실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한 쌍둥이의 사진으로 그녀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한다. 사진 속에서 만난 그녀들의 모습이 낯선 만큼 주인공에겐 그녀들과 정말 같이 살았는지에 대한 여부도 희미할 정도다. 이미 상실해 버린 것을 다시 끌어 오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현재를 느끼며 존재했던 시간들에 추억이라는 더께를 입힐 뿐이었다. 


  이렇듯 『빵가게 재습격』으로 시작한 조금은 명랑(?)한 ‘소멸과 상실’은 다양한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을 엿보게 되는 것은 물론 단편 소설의 매력도 만끽하게 되었다. 두 편의 장편소설밖에 만나지 않은 나로서는 단편 소설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고, 『빵가게 재습격』과 함께 나온 『반딧불이』 『회전목마의 데드히트』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바로 나머지 단편집을 읽어 보겠노라 다짐하면서 이렇게 연속적으로 하루키의 작품과 계속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어떤 작가를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학적인 만남으로 이어나가는 바탕에는 그의 많은 작품을 섭렵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너무나 유명한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을 이미 읽어본 듯한 착각이 일지만, 조금은 더디더라도 이렇게 차근차근 만남을 이어갔으면 한다. 장편소설, 단편소설,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역량을 발휘하는 작가이기에, 앞으로 나와 어떤 만남이 이어질지 기대가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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