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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ㅣ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아침마다 무단횡단을 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횡단보도로 건너자니 한참 돌아가야 하고, 버스는 눈앞에 보이고, 그러다보니 무심코 무단횡단을 하게 된다. 그런 불편한 마음을 떨쳐버리려 "죄송합니다!"라고 맘속으로 외치지만, 마음 한구석이 쿵하고 떨어지듯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건널목씨다. 건널목씨가 와서 둘둘 말린 횡단보도를 레드카펫인양 쫙 펼쳐주면 맘 편히 건널 수 있을 거란 상상. 바로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읽고 나서부터 건널목씨 앓이가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오늘 어떻게 보냈으며, 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미미한 존재로 머물다 왔다는 기분이 든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나를 드러내기 바쁜 나날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짐짓 걱정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단적으로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이 책 때문이라면,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좋은사람이란 그런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77쪽)
내가 이런 사람인가 아닌가는 차치하더라도, 단박에 이렇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 몇 명이나 될까? 또한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서슴없이 인정하면서 칭찬할 수 있는 아량이 내게 있을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정도로, 고맙고 보고 싶은 존재로 뇌리에 기억될 정도로 건널목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일 수 있냐란 의문보다 그런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알게 되면 마음이 아려오는 사람이었다.
건널목씨는 오명랑이란 작가의 마음 깊숙이 살고 있었다. 꼭 드러나야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듯이 그녀의 마음속에는 건널목씨가 늘 살고 있었다. 그녀는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지만 지금은 작가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어지지 않는 작품 활동 때문에 오히려 생계에 뛰어들어야 할 판국이다. 가족들의 등쌀에 못 이긴 척 시작한 이야기 듣기 교실에 과연 누가 등록이라도 할까? 한 달은 무료라는 말에 겨우겨우 세 아이가 찾아오고 이야기만 들으면 된다는 이야기 교실은 그녀가 깊이 숨겨두었던 한 사람을 꺼내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왜 건널목씨 이야기를 힘겹게 꺼낸 것일까. 어차피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아이들에게 편하게 들려주기만 했어도 됐을 텐데. 천으로 만든 횡단보도를 가지고 다니는 건널목씨의 등장은 막 지어낸 이야기란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그녀가 점점 무언가를 향해 갈수록, 그녀가 더디게 머뭇거릴수록 실재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에 마음이 기울었다. 횡단보도가 없어 등하굣길에 자주 무단횡단을 하는 장소에 어김없이 나타나 건널목이 되어 주었던 아저씨. 온갖 궂은일을 하며 아리랑 아파트 주변을 맴돌던 아저씨. 쌍둥이 아이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에 그렇게 전국을 떠돌며 임시 횡단보도 역할을 자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제야 오명랑 작가가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널목씨는 횡단보도 역할을 자처하는 일 말고 태희와 태석이 남매를 돌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빠, 소식이 끊긴 엄마 없이 달랑 둘만 살고 있는 반 지하의 집에 찾아가 이것저것 손봐주며 그 아이들의 끼니를 챙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늘 부모의 불화로 집 밖을 맴돌던 도희란 여자애와 함께 태희, 태석이를 찾아가고 남매의 엄마가 찾아오기 전까지 그들의 추억은 그렇게 시작된다. 각자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세 아이들의 만남으로 인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 기대가는 모습으로 발전해 간다. 건널목씨가 곁에 있어주어 그들이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공통의 시간을 만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집을 나간 줄로 알았던 남매의 엄마가 돌아오고, 친하게 지내던 도희가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고, 건널목씨도 어느날 소리소문 없이 떠나버린다.
오명랑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힘겹게 끝마쳤다. 특히 남매의 엄마가 돌아온 순간의 이야기, 그런 엄마의 고백을 듣는 부분에서는 더욱 힘들어했다. 지금껏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던 태희란 아이가 자신이며, 엄마와 오빠이야기, 그리고 새언니가 된 도희까지 지금껏 마음속에 꽁꽁 잠겨있던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꼭 한 번은 해야만 했다. 감춰두면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고, 건널목씨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연 것도 건널목씨에게 태희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태희의 마음속에 갇혀 있던 이야기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매에게 2년 남짓 '엄마'의 부재를 경험하게 한 엄마에게,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준 너무나 고마운 건널목씨를 향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선 자신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그녀는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됨으로써 홀가분한 마음,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건널목씨의 존재를 잊지 않으며, 이 이야기가 퍼져 어디선가 여전히 횡단보도 역할을 자처하고 있을 건널목씨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자신의 오빠인 태석이 건널목씨의 역할을 하고 있듯, 건널목씨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서 행동하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쩌면 이미 건널목씨를 만났을지도 모르고, 스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애타게 건널목씨를 본 적이 있냐고 되레 내가 묻고 싶지만, 건널목씨를 찾아 나서는 것보다 내가 건널목씨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