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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1 : 국내편 ㅣ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서태지, 음악, 책. 나의 유년시절을 지배했던 것들이다. 서태지와 음악에 관한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종종 열정을 끌어올리려 애를 써보지만 무리임을 느낀다. 오히려 그때는 열광하지 않았던 책이 현재의 나를 지배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기억에 남는 책은 또렷하다. 그 가운데 『퇴마록』을 빼 놓을 수 있을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온통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퇴마록』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무척 감격하고 말았다. 나의 유년시절이 다시 살아난 듯, 그 당시의 나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인다 해도 모든 것을 감내하고 싶은 재회였다.
언니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게 된 『퇴마록』에 이렇게 빠져들 줄은 몰랐다. <세계편>을 먼저 접하고 너무 재미있어 <국내편> <혼세편>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이 책으로 인해 장르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고,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이런 퇴마사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늘 보던 거리들을 허투로 보아 넘기지 않는 후유증을 갖게 되었다. 18살에 만난 <국내편>을 시작으로 23살에 이르러서야 <말세편>을 읽고 『퇴마록』의 긴긴 여정을 끝냈다. 나의 마음속에 고이 묻어두었던 작품이기에 이렇게 다시 읽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웬만해서 책을 2번 읽지 않는 나의 취향과 열독했던 당시에 도서대여점이 인기여서 빌려 읽는 것이 당연했기에 소장하며 본다는 것은 사치였다. 권수도 많거니와 이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 놓으면 그들을 다시는 못 놔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퇴마록』이 소장판으로 출간되었을 때의 흥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소장하지 않으면 나의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함이 일었다. 먼저 출간된 <국내편>을 손에 쥐고 감격과 흥분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다시 조우할 기회를 엿보았다. 깊은 밤, 이 책을 펼쳐놓고 정독하며 읽는 나의 벅차오르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퇴마록』은 그렇게 내 곁으로 왔고, 이제 나는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그들을 맞이하려고 한다.
모든 이야기를 다 기억할 수 없지만 그들의 이름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현암, 승희, 준후, 박 신부님. 또한 세세히 읊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을 지나왔는데 다시 처음부터 그들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이 새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각난 내 기억을 맞출 수 있다는 것에 더 흥분해서 정독하며 읽어나갔다. 그들이 앞으로 할 일들, 활약들,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들이 엄청나다는 것을 앎에도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심스레 첫 만남을 가졌다. 각자 나름대로의 상처를 가지고 다른 세계로 들어와 버린 그들, 하나의 무리가 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며 색깔을 맞춰가는 그들, 평범한 삶을 버리고 타인을 돕기 위해 나선 그들이 고스란히 책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온통 초점은 그들 넷이었지만 현암과 거의 한 몸인 월향검을 얻게 된 배경까지 알고 나자 이제야 첫출발을 한 기분이 들었다. 각자의 아픔과 특별한 능력으로 만나게 된 만큼 아직은 서로에 대해서 많이 서툴고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활짝 피우기 전이라 풋풋함마저 들었다. 이우혁 작가님의 말마따나 18년 전의 작품이라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고 지방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곳이 배경으로 나와 지금과 시대적 차이를 많이 느낄 수도 있다. 영적인 세계를 맛보기도 전에 그런 배경으로 인해 잠시 초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내편>은 <말세편>까지 이어지는 『퇴마록』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 시작은 이들이 만나고, 새로운 세계에 접어들고, 서로의 능력을 알며 가능성을 보고 호흡을 맞춰가는 단계이다. 그런 과정을 놓쳐버린다면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이야기 속의 그들과 또 다른 세계를 맛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태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네 명의 주인공이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자신들도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키워나가야 할지 잘 모르는 단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이 당황하고 주저하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영적인 세계에 뛰어든 것에 어리석다고 한탄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메시지는 그들은 어떠한 이익을 위해서도, 자신들의 능력을 키우거나 영광을 위해서도 아닌 직접 겪은 고통과 아픔을 타인들이 겪지 않도록 최소화하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메시지를 잊어버리면 그들의 하는 행동이나 방황들이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이 되어버린다.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 곳에 찾아가 영(靈)을 불러내고, 그들과 싸우고, 또 다른 영과 대적하기 위해 전국을 떠도는 그들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들도 엄청난 힘을 가진 무리들을 만나면 후회하기도 하고 부족함을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먼저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맛보며 그 세계에 뛰어들어 싸우고 있음에 애달픈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런 느낌들이 자동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잊고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조각난 기억들이 꿰어 맞춰진 느낌이 들어 후련했다. 그들과 한 배를 탄 이상 쉼 없이 그들의 세계에 합류하고 싶었다. 1권의 마지막에 실린 <생명의 나무>가 2권으로 이어져 먼저 들춰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고, 2권까지 다 읽고 <세계편>을 맘껏 기다리고 싶었다. 그러나 『퇴마록』을 다시 만난 감회와 <국내편>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기록하지 않으면 앞으로 만나게 될 작품을 편하게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최소한 13년 만에 다시 조우하게 되어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다시 당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