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벌루션 No.0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정말 행복한 순간에는 아쉬움이 이는 경험을 했다.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 중에 '이 모든 것 또한 지나가리라'란 생각으로 견딘다고 하지만 행복한 순간에도 그 생각은 상통한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 분위기, 웃음소리,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는 따뜻함 들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쉬움으로 변하는 시간. 그때가 진정 행복한 순감임을 나는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 때처럼 쓸쓸한 추억이 있을까. 행복감에 아쉬워 몸부림을 치더라도 다시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좀비스'를 보고 있으면 행복해서 아쉬웠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더 좀비스'여 영원하라고 그렇게 외쳤건만 가네시로 가즈키는 완결판을 들고 독자를 찾아왔다. '그들을 해방시켰다는 안도감' ''더 좀비스'는 성숙해서는 안 되는 인물들'이라는 이유로 이 시리즈를 완결시켰다는 저자의 생각에는 이견이 없다. 내가 만난 '더 좀비스'도 영원히 고등학생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그들이 대학생이 되고, 직장을 갖고 중년이 되고 늙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어쩌면 '더 좀비스'에게 그런 평범한 삶은 너무나 별세계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그것을 알기에 성숙하지 않은 인물로 남겨두고 영원히 해방시켜 버린 게 아니었을까?

 

  가네시로 가즈키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물으면 망설임 없이 『레벌루션 no. 3』라고 말한다. 물론 '더 좀비스' 때문이고, 그들이 뿜어내는 독특한 매력에 사로잡히면 사랑스런 눈빛으로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학생들의 이야기, 그것도 꼴통들만 모아둔 학교에서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이상한 아이들만 모아놓은 '더 좀비스'가 왜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까? 거기에는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들만의 세계(세상은 그들의 세계를 이해해 주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를 구축해 가는 게 멋있고 사랑스러웠다. 개개인을 놓고 봤을 때 심각한 문제아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들이 함께 있으면 세상에 무서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천하무적으로 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을 주고받는 신뢰가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더 좀비스'를 만날 수 있다니! 완결이라고 해도 아쉬움 보다 설렘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너무 궁금해 예를 갖춰(조용한 시간에 고요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책 펼치기) 정독했다. '더 좀비스'의 이야기는 정독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님에도 그들이 금방 사라져버릴까 아껴가며 읽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들과 재회했고 다시 헤어졌다. 이번 헤어짐은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는 설렘도 없이, 끝이 났다는 아쉬움도 없는 나름대로의 '해방감'이었다.

 

  그렇게 기다렸던 '더 좀비스'건만 너무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인물들이 가물가물했다. 이야기가 진전될 때마다 잊혔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드러나 반가운 마음도 잠시, 제대로 활약도 못해보고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사그라진 것 같아 아쉬웠다. 무엇보다 그들이 당면한 현실에서 '더 좀비스'의 위력(?)을 최대한 끌어내지 못한 것이 책장을 넘기는 손길에 미련을 남겼다. 더 멋지게 해방시켜 주고 싶다는 욕심이었을지 모르나 기강해이의 명목으로 '1학년 전체 합숙 훈련 실시'를 하게 된 터무니없는 목적부터, 합숙훈련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이후 '더 좀비스'의 탈출까지 무언가 빠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발랄하면서도 나름 진지한 그들만의 상큼함(?)이 보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너무 진지했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탈출의 거창한 목적 뒤에는 그들다운 황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뭔가 계속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운영비를 남기려는 학교 경영진의 음모에 지옥 같은 훈련과 폭력을 견디면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탈출을 하는 과정이 조금은 지난했다. 물론 '더 좀비스'만의 끈끈함과 독특함으로 서로가 의지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은 그들다웠다. 하지만 있을법한 이야기지만 지금과 배경이 맞지 않는 점, 그들의 탈출 뒤에 메시지를 억지도 부려 넣은 듯한 부분 때문에 캐릭터들이 더 살아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들을 이대로 떠나보내기가 싫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더 좀비스'를 너무 애정해서 기대치를 높이다보니 실망이 커버린 걸까? 꿈결같이 지나가버린 '더 좀비스'의 특별한 경험담은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을 완벽하게 남겨두려는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나 '더 좀비스'의 강력한 매력을 소화하기엔 많은 부분에서 아쉬웠던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의 고뇌, 어떻게든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의 시선, 길이 막혀버린 미래를 내다볼 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관자의 시선일지도 모르고, 말하기 좋아하는 어른의 때 묻은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좀비스'가 '더 좀비스' 답지 못한 부분은 견딜 수 없었다. 나만의 '더 좀비스'로 그들을 기억하고 이렇게 해방시키기엔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냥 '더 좀비스'가 영원했으면 한다. 그들이 어떤 모습이건 '더 좀비스'로 남아 있어 준다면 어떠한 모습에도 너그러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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