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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 윌리 로니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ㅣ 내 삶의 작은 기적
윌리 로니스 지음, 류재화 옮김 / 이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텍스트에 중독되어 있던 내가 사진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사진의 이면의 세계를 보기 시작한 것이. 새로운 세계였다. 낯설어서 신기한 세계라는 의미가 아니라 새롭게 눈을 뜨게 해주어서 감격스럽다는 뜻이다. 순간의 찰나를 기록한 사진이 왜 이렇게 새롭게 다가온 것일까. 그리고 그 이면뿐만 아니라 현재의 나의 모습까지 투영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내 사진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붙잡고 싶은 것은 완전히 우연한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은 내가 할 줄 아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나에게 이야기해줄 줄 안다. 내 시선을, 내 감성을 표현해주는 것이다. 사진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일어나고 있다. 내 인생은 실망으로 가득 차 있으나 커다란 기쁨도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이런 기쁨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91쪽)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기쁨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감정이입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작가가 어떠한 의도로 한장의 사진을 찍었다고 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그 다양성. 내가 맘껏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고 현실과 대조해보며 즐기는 과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윌리 로니스의 사진과 글이 그랬다. 꾸미지 않은 담백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거울 안의 세계를 투영해서 보는 듯한 착각이 인다. 내가 본 적 없는 풍경과 경험하지 않은 광경들이 낯섦 그대로 다가오면서도 꿈속을 헤매듯 기이한 느낌이다.
글이 있는 사진집은 사진만 볼 때와 글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다르다는 점을 체감하게 된다. 사진만 봤을 때는 내 나름대로의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다. 그러다 저자가 어떻게 이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상황을 알고 나면 갑자기 그 사진은 현실감이 묻어나는 존재한 상황이 되고 만다. 두 가지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각각의 매력에 빠질 수 있어 사진집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윌리 로니스는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평범하지만 사진이 아니면 남길 수 없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사진들을 보면 내가 일상 속에, 일상적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바로 그것이 나다. (중략) 그냥 존재하는 것,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관심을 끄는 것과 함께 있을 뿐이다. 가장 어려운 것을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다. (86쪽)
윌리 로니스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적 현실 속에 있'음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사진을 연출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연출한 사진조차도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그의 사진은 일상의 한 조각을 그대로 떼어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상의 조각은 꼭 있는 그대로 타인에게 다가간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광산촌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한 광부를 찍은 사진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문장과 함께 사용한 것을 알게 된 후 기록사진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단다. 사진을 에이전시에 넘기면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통제를 할 수 없다는 점. 그 문제는 굉장히 중요했기에 그는 결국 에이전시를 떠나 15년간 프리랜서로 작업했다고 한다.
"나는 내 이미지가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감을 느낀다." (134쪽)
때로는 사진을 보며 멋대로 상상하는 나 같은 독자도 있는 반면 어떠한 의도로 방향을 잡을 때 전혀 다른 효과를 드러낼 수 있고, 생각을 획일화 할 수 있으며, 메시지도 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부분이었다.
나는 아직 사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사진의 의미,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진의 메시지는 물론 기술적인 면은 더더욱 모른다. 사진 찍는 기술에 대해 윌리 로니스에게 묻는 청년에게 그는 "그냥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단다. 자유롭게. 그것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을 보는 사람이든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자유가 아닐까? 그 자유로움의 영역은 방대하고 무한하기에 맘껏 누려보고 싶은 욕망이 여전히 꿈틀거리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