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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의 정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타인의 마음을 감동시킨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타인으로 인해 내 마음이 변화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타인을 감동 시키는 것보다 내 마음을 열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리디아 때문이었다. 집안의 어려운 사정으로 잠시 외삼촌댁에 가게 된 리디아는 그 과정을 모두 편지로 이야기한다. 짐 외삼촌을 시작으로 아빠와 엄마, 할머니에게 쓰는 편지는 짧지만 리디아의 모든 마음이 들어 있었다.
리디아는 밝고 건강한 아이다. 그러나 리디아가 함께 살아야 할 외삼촌 짐은 무뚝뚝하고 웃지 않는 어른이다. 리디아는 빵집을 운영하는 외삼촌 집에서 그냥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아이다. 외삼촌에게 미리 원예는 알고 빵은 만들지 모르지만 무척 배우고 싶다는 편지를 미리 띄운다. 그러나 외삼촌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리고 리디아가 외삼촌과 생활하면서 보내는 편지에는 외삼촌이 잘 웃지 않으신다는 말과 함께 곧 웃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같이 전한다.
그 부분에서 리디아가 분명 외삼촌을 웃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리디아는 행복 바이러스를 가진 아이처럼 금방 빵집에서 일을 하는 에드 아저씨와 엠마 아줌마와 친해졌다. 그리고 외삼촌을 웃게 만들기 위해 시를 짓기도 하고, 함빡 웃을 만한 계획을 짜면서도 원예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 호기심은 외삼촌을 웃게 만들 계획과 맞물려 부모님께 꽃씨를 받기도 하고 엠마 아줌마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옥상의 버려진 공간을 정원으로 꾸며 외삼촌을 웃게 만들 계획을 만드는 리디아를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입가에 웃음이 자연스레 피어난다.
리디아는 집에서 보내온 꽃씨로 에드 아저씨와 엠마 아줌마의 도움을 받아 옥상을 멋지게 꾸민다. 그 정원은 오로지 외삼촌을 위한 것이며 외삼촌에게 정원을 보여줄 생각에 흥분되고 설렘 가득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독립기념일이라 오후에는 휴업을 하는 시간에 맞춰 외삼촌에게 드디어 정원을 보여주는데 외삼촌은 웃지 않으셨지만 놀란 것이 분명한 표정으로 리디아가 만든 정원을 바라보았다. 리디아만큼이나 긴장되고 설렌 장면은 정원을 보는 모두(독자도 마찬가지로)에게 전해졌다. 외삼촌은 곧바로 리디아가 한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꽃 케이크를 준다. 외삼촌은 웃지 않으셨지만 그 케이크에 외삼촌이 천 번 웃으신 것만큼이나 의미 있다고 말하는 리디아. 그런 리디아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빠가 취직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리디아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리디아는 모든 꽃들을 엠마 아줌마에게 맡기고 떠나는데, 기차역에서 리디아를 배웅하는 짐 외삼촌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그동안 늘 무뚝뚝하고 놀라긴 했지만 멋진 정원을 보여줘도 웃지 않으시던 외삼촌이 마음의 문을 크게 연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무릎 꿇고 리디아를 꼭 안아주는 모습에서 리디아가 '천 번 웃으신 것만큼이나 의미' 있다고 말한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엠마 아줌마, 눈을 감고 있는 에드 아저씨. 그 장면으로 정원을 공개했을 때보다 더한 감동과 뭉클함이 밀려왔다. 웃는 모습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해도 리디아를 꼭 끌어안아주는 짐 외삼촌에게 리디아의 사랑이 온전히 전해졌음을 느꼈다. 외삼촌을 웃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을 비롯해 리디아의 마음 씀씀이며 주변 사람들을 밝고 행복하게 해주는 천진난만함이 어느새 외삼촌의 마음속에도 자리한 것이리라.
어떻게 이렇게 그림과 글이 혼연일치 할 수 있을까. 어떠한 미심쩍음도 없이 마치 한 사람이 쓰고 그린 것처럼 완벽할 수 있을까. 리디아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글과 그림 모두 뛰어났기 때문이다. 제각각 뛰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기 위해 절제하며 완급조절을 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뛰어남이었다. 그래서 이토록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감동이 자리했을 것이다. 이 짧은 동화는 여운을 진하게 남겨 자주 책을 들춰보게 하고 잠시 팍팍한 세상을 화사함으로 바꿔주었다. 리디아가 외삼촌의 마음을 열게 해 주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당히 차단하고 회피하고 자신 안에 갇혀 사는 나의 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웠으면서도 리디아로 인해 허물어져 내리는 것을 확실히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