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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평점 :
지금껏 살아온 세월 중, 다시 돌아가 새롭게 살아보고 싶은 시절이 있다면 과연 언제일까? 결혼하기 전? 마지막 회사를 관두기 전? 아니면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 볼 수 있는 그 시절? 예전에는 어떤 순간이 또렷하게 떠올랐는데 지금은 모든 게 두루뭉술하다. 콕 집어서 말할 수 없고 그 시절로 돌아간들 내 삶이 과연 크게 변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 것이다. 나의 성정은 쉬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과연 후회 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내 선택에 자신 있어 할 용기가 사라져 버렸다.
내가 이 작품 속의 주인공 수바시, 우다얀, 가우리라면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언제일까? 수바시라면 가우리와 결혼하고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전, 우다얀이라면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집으로 숨어들기 전, 가우리라면 우다얀과 결혼하기 전이나 수바시와 벨라를 두고 집을 떠나오기 전이라고 해야 할까? 잠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때로 돌아가 또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다른 갈등, 다른 고민, 그들이 살아온 삶과 크게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을 것 같지 않다. 내 삶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선택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가 열정적이지 않듯 그들도 당시에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반대의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 확신할 수 없었을 거란 뜻이다.
수바시는 홀로 남겨진 동생의 아내 가우리를 그대로 집에 두었다간 부모님의 구박을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또한 앞으로 창창한 그녀의 삶과 그녀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인 애정을 떨쳐낼 수 없었다. 자신과 결혼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 믿었다. 형제의 아내가 된 가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우다얀을 평생 떨쳐낼 수 없었대도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살았으며 좋았을 것을. 그녀는 아주버니에서 남편이 된 수바시도, 유일한 우다얀의 흔적인 핏줄 벨라를 사랑하며 함께 살지 않았다. 자신의 시어머니가 내다보았듯이 그녀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냉담함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과하지도 들끓지도 않는 저자의 문체 속에서 그 모든 사건들을 예감할 수 있었다. 좌익 운동에 가담한 우다얀의 죽음도, 수바시와 가우리의 결혼도, 비밀을 간직한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가우리가 떠날 것이고 때가 되면 벨라가 그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그 모든 걸 예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건 자체에만 매달려 대충 읽어 내려갈 수 없었던 이유는 저자 특유의 섬세한 문장 속에 담긴 그들의 내면과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 들이었다.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대에 대한 이해를 위한 내면 묘사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궤적을 남겼다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 수긍은 하지만 온전히 동조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지켜본 느낌이라 더욱 더 왈가왈부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인물은 가우리다. 수바시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감으로써 인도를, 우다얀을, 가혹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시댁에서 벗어났지만 그녀는 헌신적인 수바시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우다얀을 너무 사랑했다기보다 죽음으로 갑작스런 단절을 요한 우다얀의 그림자 속에 평생 살았다는 말이 더 맞을 정도로 자신의 삶에서도, 위태롭게 지어진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도 어떤 위안을 얻어내지 못했다. 외로움을 달래 줄 안락함, 서로를 이어 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뻔히 알면서도 극한 상황들을 선택했고 그 선택 때문에 오랜 시간 아파하고 힘들어했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깊은 공감과 안타까움을 드러낼 수 없었다. 자식을 버리고 떠난 여자,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남자를 배신했다는 꼬리표가 아닌 그녀 자체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끈끈하게 얽혀 살 수 없고 자유를 갈망하는 그녀의 본능을 어떤 식으로든, 어떤 누구든 막을 수 없고 자제시킬 수도 없었을 거란 깨달음 때문이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후회도 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빠져 나오려고도 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용서를 빌기도 하지만 이미 스스로 개척한 삶에서 무언가를 바로 잡는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한 사람이었고 그런 그녀를 비난하기보다 존중해야 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누구와 행복을 꾸리지 못하고 핏줄에게 외면당하고 우다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수바시도 마찬가지였다. 벨라를 사랑하고 자신의 딸이라고 여기는 마음을 가우리와의 결혼으로 인해 가질 수 있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은 긴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고통이 동반되었다. 다른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지극히 현실적인 그의 성정을 보건대 그럭저럭 보기 좋은 가정을 이뤘을 거란 아쉬움이 일었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기에 충실히 살아낸 그에게 보상이라고 하듯 노년에 찾아 온 행복이 그나마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기도 했다. 잃을 수도 있었을 벨라를 다시 찾았고 손녀까지 만났다. 그가 말한 대로 더 젊었을 때 엘리스란 여자를 만났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란 말처럼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나보다. 그 시기란 것을 어떻게 기다리고 견디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걸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우다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시기가 닥쳤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옮긴이의 말처럼 이 작품은 주로 사적이고 가족적인 이야기를 다룬 그동안의 소설과 달리 1960년대 후반의 인도 좌익 운동을 배경으로 정치, 사회적인 내용을 중점으로 다뤘다는 점이 특기할만 하다. 또한 시간적 배경이 대하소설 급이라는 말에 동조하게 되는 게 우다얀과 수바시의 어린 시절부터 수바시가 할아버지가 되는 시기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을 뛰어 넘어야 하는 부분을 어떻게 써 내려갈까, 벨라에게 자신은 친아빠가 아니라는 고백을 어떻게 그려낼까란 궁금증에 어색함이 더하지 않는 자연스런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 저자의 문체와 잘 맞물려 책장을 덮을 땐 앞으로 살아내야 할 나의 미래를 이미 살아버린 기분이 들 정도였다.
초반 30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낑낑대다 쉼 없이 넘어가는 책장을 주체 못하고 결국엔 다 읽어 버리는 게 아까워 조금씩 읽어대던 날 들. 유일하게 좋아하는 여류작가인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읽는다는 사실이 행복감으로 다가왔을 정도다. 책의 내용은 그다지 밝다고 할 수 없으나 인생은 결코 혼자 살아지는 게 아니며 마음속에 비밀과 피해왔던 일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음을 낱낱이 목도했다. 마음속에 거리낌을 오래 간직하며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낭비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작품 속 인물들 중 누군가를 오랫동안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고충을 여실히 드러냈기에 되도록 긍정적인 사고로 타인에게도 너그러워 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만 잘 지켜도 앞으로의 삶이 생각처럼 팍팍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느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복잡다단한 마음을 이렇게 뻔하게 마무리해도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