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염전 & 비금도
곽민선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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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내가 태어난 곳과 멀지 않은 소도시에서 살고 있다. 철없던 시절, 고향을 떠나고 싶어 대도시로 간 적도 있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또 한 번 고향을 떠났고 결국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고, 푸근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고향 근처에 있어야 안정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와 달리 저자는 비금도에서 태어나 염전을 보고 자랐다. 그리고 고향의 염전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비금도의 염전이 힐링의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한 사진에서는 애정이 듬뿍 드러났다.


인류가 존속된다면 그리움이란 단어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그립다." 20쪽

다시 돌아와 바라본 고향은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어릴 때 보았던 풍경에 어른이 되어 뛰어 들어보니 곳곳에 묻어나는 부모님의 노고와 마음이 그랬고, 사라지고 변해가는 모든 것들이 그랬다. 그래도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는 염전을 보며 그리움을 드러낼 수 있는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더 고향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고, 염전에 대한 소중함도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매번 꽃이 피어나는 장면을 목격하는 이는 염부다. 염부만큼 행복한 직업이 있을까. 바닷물을 소금 꽃으로 만드는 마법사가 바로 염부다. 38쪽

끝없이 펼쳐진 소금밭을 보고 있으면 정말 염부가 마법사가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한국의 염전이 어업만큼이나 농업에 가까운 이유’를 알고 나자 염전이 더 신비로웠다. 살아있는 갯벌 위에서 소금을 얻기 때문에 매년 봄, 농촌에서 밭갈이를 하는 것처럼 염전에서도 그랬다. 땅을 뒤집고 고르는 것을 반복해야 좋은 소금이 얻어졌다. 그래서 첫 소금이 생산되는 날, 돼지고기에 소주를 마시면서 ‘올해는 소금값이 더 좋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찡했다. 소금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우리가 사서 먹는 소금값이 터무니없이 싸게 느껴지는데, 수고로움에 비해 그들이 갖는 소망이 작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말마따나 ‘소금은 생명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게 다른 의미일지라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비금도의 아름다운 염전을 알리는 사진집인 줄 알고 있었는데 염전을 바라보며 드는 온갖 상념들이 깊이 박혀있는 산문집으로도 읽혔다. ‘더 인내하고 사랑하자. 순간이 결국 평생이다. 바닷물이 호화함수가 되어 일순간 소금 꽃으로 피어나듯 순간을 사랑의 빛으로 만들어 가자.’라고 말하는 부분만 봐도 그렇다. 별거 아닌 마음에 허물어 질 수 있는 나의 하루가 소금에 빗댄 이 다짐 앞에 조금 힘을 얻었다. 염전 구서구석을 살피고, 기록으로 남기고, 모든 경험과 생각을 집어넣는 이 과정들에서 행복함이 전해졌다.


고향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게 대단했다. 내 고향은 특별한 것이 없다 여겨왔는데, 따져보면 내가 그곳에서 자랄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특별한 것 같다. 여전히 나의 의식 속에는 어린 시절이 생생히 살아있고, 꿈속에서 자주 고향을 만난다. 그것도 지금의 모습이 아닌,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고향이 내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한다. 엄마의 자궁 속 같은 곳일까? 고향하면 엄마가 늘 그 자리에 있고, 나는 알게 모르게 안정감을 느끼는 곳. 이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비금도의 염전은 내게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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