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빵빠라빵 여행
야마모토 아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입맛이 변한다는 말을 별로 믿지 않았는데 30대가 되고 나서, 특히 임신을 경험하고 나면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땐 과일만 먹어서 특별한 건 없었는데 둘째 때는 임신기간 내내 입맛이 계속 바뀌었다. 입덧이 지나가자 소고기가 먹고 싶더니 회도 먹고 싶고 평소에 잘 먹지 않던 것들이 마구 당겼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게 빵이었다. 빵을 딱히 좋아한다고 할 수 없던 나였는데 임신기간 동안 엄청 먹어댔다. 초코케이크 한 조각 먹겠다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오는가 하면 입맛이 없어도 빵, 먹을 게 마땅히 없어도 빵만 찾았다. 출산을 하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젠 빵이 좋아져 버렸고 지금도 케이크를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떤 행위든 목적의식이 분명하다면 그 과정은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빵 먹으러 북유럽 여행을 한다고 하면 배가 불렀다며(빵 먹으러 가는 여행이니 늘 배가 부를지도 ㅋ) 질투의 시선을 던졌을지도 모르는데 빵을 좋아하게 되니 오히려 목적이 뚜렷한 여행이라며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빵을 좋아하는 절친끼리 역시나 빵 이야기를 하다 핀란드와 덴마크 여행을 계획한다. 그리고 정말 그 나라의 빵을 먹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만화책에, 만화 같은 시작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지만 두 나라를 훑고 다니면서 맛보는 빵과 여행기를 보고 있자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그야말로 빵 투어를 외국으로 간 셈인데 빵 하나에 감격하고 빵을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지 몰랐다. 그야말로 빵을 너무 좋아해서 간 여행이기에 그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고 빵에 흥분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뭔가에 빠지면 저렇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들이 소개하고 먹는 빵을 보고 있자니 그간 내가 먹어온 빵은 극히 제한된, 일부분의 빵이라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 있었다. 새로운 맛에 도전하지 않는 편인 나는 빵집에 가도 늘 먹던 것만 먹는다. 아주 가끔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데 맛이 없으면 평소에 먹었던 빵을 먹지 않은 걸 후회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 속의 빵들은 너무 다양했고 그 종류만큼이나 빵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새로운 빵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먼 나라까지 와서 빵만 먹다 갈 수 없으니 그 나라의 가고 싶었던 곳을 구경하기도 하는데 핀란드에서는 역시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빵 투어를 하면서 잠깐씩 드러나는 자연인데도 고요하고 경이로운 느낌이 들어 빵 때문에 핀란드까지 날아온 그들이 잠시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빵으로 해결해야 할 허기짐이 문제였기에 그런 풍경도 잠시 잠깐 지나가는 게 웃겼다.

핀란드와 덴마크의 빵 투어를 보면서 빵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것이 녹아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빵 재료만 보고도 그 나라의 문화와 식습관까지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밥은 기본으로 같다 치고 지역마다 다르게 깔리는 반찬이라고 해야 할까? 빵도 종류와 나라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음을, 그런 빵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좀 더 피부에 와 닿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만약 목적의식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한다면 나의 목적은 무엇이 될까? 단박에 떠오르는 건 책이지만 다른 언어를 알지 못할뿐더러 번역이 잘 되어 있는 책들이 많으므로 그림이 떠오른다. 오래전부터 고흐 때문에 프랑스 아를에 가보고 싶은 열망이 컸는데 만약 그런 여행이 이뤄진다면 나도 이들처럼 기뻐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대리만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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