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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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 걸맞은 표지는 내 말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과 만나러 가는 동안 내 말을 감싸주는 우아하고 따뜻하며 예쁜 외투 같다. (25쪽)

 

하지만 안에 있는 것을 감추는 가면일 수도 있다. 독자를 유혹할 수도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다. 합금처럼 속일 수도 있다. 진실과 거짓, 겉모습과 현실 사이의 대립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29쪽)

 

 

저자의 이름만 보고 책을 바로 구입한 터라 책 표지도 제목도 유심히 보지 않았다. 그리고 책 제목을 멋없게 번역하면 ‘표지’라는 데서 오는 인식의 변화가 저자의 글을 통해 서서히 오는 게 신기했다. 대놓고 표지에 대해, 전 세계에 번역되고 포장되어 나가는 자신의 책 표지에 대해, 그리고 표지가 갖는 여러 가지 의미와 솔직한 느낌을 말하고 있기에 국내에서 이 책이 번역될 때 표지와 추천사 혹은 역자 후기 같은 글을 싣기도 굉장히 조심스러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기꺼이 이 책을 국내의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생각도 말이다.

 

 

저자는 책의 표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민자로서 살아왔을 때 옷이 자신에게 부여됐던 의미를 말하면서 콜카타 친가에서 보았던 사촌들의 교복 이야기를 했다. 어딜 가든 확실한 소속감이 없던 환경 탓에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적당한 옷을 골라 입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간혹 시달릴 때면 차라리 교복 같은 유니폼을 입는 게 더 간단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하고, 대부분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표지도 유니폼이 좋은 해결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이다.

 

 

표지는 책에 하나 혹은 두 개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내용과는 별개의 표현 요소를 보여주기도 한다. 책이 말하는 것이 있고, 표지가 말하는 것이 있다. 이 때문에 표지를 좋아하지만 책을 싫어할 수도 있고, 반대로 책을 좋아하지만 표지를 싫어할 수도 있다. (29쪽)

 

 

약 삼천 권에 육박하는 우리집의 책들을 내 책장에 들였을 때 표지의 비율을 어느 정도 두었을까? 상황에 따라 다르기에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40퍼센트 이상이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구입하기를 망설였던 책도 표지가 예쁘거나 맘에 들면 구입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말마따나 ‘책등보다는 표지를 보는 게 훨씬 인상적이다. 보통 책장에 한 줄로 꽂힌 책들은 신중하고 다소 소심해 보인다. 배경으로 위안이 되지만 밋밋하’게 보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반면에 표지들은 외향적이고 쾌활하고 특별하다. 표지는 우리의 관심을 요구한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를 봐.’ 라는 문장을 읽고 읽으려고 꺼내놓은 책들을 책상 위에 나란히 펼쳐봤다. 그랬더니 정말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고 더 읽고 싶게 만드는 것 같았다.

 

 

저자는 책의 표지가 가진 실존적인 의미를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표지는 미적인 목적보다 상업적 목적이 더 크다. 표지가 책의 성공 혹은 실패를 결정한다.’는 말에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수많은 책 가운데서 독자의 선택을 당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표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도 좋아하는 작가라 그의 모든 책을 다 소장함에도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구입하지 않는 책이 있는 것을 보면 ‘상업적 목적’을 완전히 벗어난 구매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상업적인 목적이 주류가 되어 드러나는 아쉬움에 대한 저자의 가감 없는 이야기가 읽는 동안 조금은 조마조마했지만 한 번쯤 되짚어봄직한 주제라 독자의 입장에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또한 책을 막 펼쳤을 때 저자의 글보다 추천사나 비평을 먼저 읽는 게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아 좋아하지 않고, 작품의 분량과 맞먹는 해설이 실린 책을 만날 때면 곤욕스러워 한다. 그럼에도 그런 걸 진지하게 내 취향에서 고려하지 않고 출판계의 흐름과 형식이 그러하므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작가의 사진과 이력, 책 소개를 보며 읽기도 전에 내 멋대로 판단하고 편견을 가짐에도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저자는 어릴 적 도서관에서 표지도, 어떠한 정보도 없이,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었던 ‘발가벗은 책의 침묵, 그 미스터리가 그립다.’고 했다. 책의 표지로 굉장히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를 펼쳐놨지만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겉모습보다 책으로 먼저 만나고 싶다는, 만나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잠시라도 그런 독서를 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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