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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평점 :
내가 속해있는 이 시간과 공간을 지나치고 싶어 아무렇게나 보내버릴 때가 있는 반면, 눈과 마음에 새기고 싶어 기웃거리는 순간들이 있다. 전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 집에서 뒹굴 거릴 때고 후자는 내가 잊고 있던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다. 그러다 눈과 마음에도 새겨지지 않을 때, 그 풍경을 글로 꾹꾹 눌러 쓰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오로지 나 혼자 간직하기 위해 쓰는 글 말이다.
꼭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 글을 만났다. 눈과 마음에 더 깊이 새기기 위해 꾹꾹 눌러 쓴 글. 사적인 것 같으면서도 시인으로서의 시선이 있었고, 종종 그런 시선을 따라가지 못해 깊숙이 들어가지 못해 겉돌기도 했지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글. 소설가 김연수가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국내에(혹은 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와 산문, 그리고 산문시가 묶여있는 책이었다.
꽤 얇은 책임에도 완독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들일 정도로 집중이 잘 되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려 노력할수록 딴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의 내면은 아름답지(?) 못한 것인지 자책 아닌 자책을 했다. 분명 글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했기에 나의 내면 탓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읽고 싶을 때 책을 펼쳐서인지 마치 다른 계절의 나를 만나는 양 천천히 읽어 나갔다. 그래서 전체적인 느낌이 어떠했는지, 어떤 부분이 아름다웠고 어떤 부분이 나를 겉돌게 만들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내 안에 남겨진 메시지보다 결을 만들듯 내 시간 속에 새겨지는 그 순간들이 그냥 좋았다.
나는 워즈워즈처럼 바다보다는 호수가, 흰 눈 덮인 험한 산봉우리보다는 완만한 초록의 산이 좋다. (61쪽)
이런 구절을 보면서 어쩜 나와 취향이 똑같은지 감탄하게 되고, 나보다 앞서 살아간 살아갔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흔적을 좇는 것도 좋았다. 괜히 사색에 잠겨 평범한 풍경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기도 했고, 내가 속한 이 공간과 시간들이 지극히 평범한데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거기서 저자의 위대함을 느꼈다고 하면 너무 오글거리는 찬사일까? 설명할순 없지만 분명 시인의 시선을 느꼈고 보통 사람인 나와 다름에서 오는 삶을 대하는 태도도 본 것 같다. 아주 짧은 찰나일지라도 삶의 지난함에서 맛본 조금은 특별한 경험이랄까? 도통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시선을 맛보았다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