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거미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사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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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단편집에 빠져 사냥하듯 그의 단편집을 수집했다. 이로써 내가 소장한 하루키 책은 더 많아졌고 읽지 않은 하루키 책은 조금 더 줄어들었다. 그렇게 책을 모으고 읽다 보니 이 책도 읽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한 하루키 단편집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대부분 두 장을 넘지 않는, 하루키 작품 중 가장 짧은 단편소설들이었다. 저자는 장편소설을 쓰는 틈틈이 책상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이 짧은 소설을 써 내려갔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다양한 시도가 엿보였다. ‘이런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나?’ 싶다가 ‘될 수도 있겠군.’ 하는 그런 짤막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 짧은 소설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가 실려 있다.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어서 그런지 삽화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짧은 소설과 착 감기는 느낌은 거의 없었고 공동 작업이라는 애착으로 받아들였다. 소설 자체를 받아들이는 게 혼란스러워 미처 삽화까지 꼼꼼하게 볼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이 단편집은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팬심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단편집은 기이하다. 한번쯤 나도 책상에 앉아 내 안에 들끓는 온갖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로지 하루키 내면에 충실한 단편들이 아닌가 싶다. 지극히 하루키스러웠고(하루키스러움에 대해서는 늘 그렇듯이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다) 이런 엉뚱하고 타인을 잠시 배제한 채 오로지 내면을 들여다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게 잠시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루키라는 이름 때문에 독특한 이 소설이 빛을 보게 되었는데 보통의 누군가의 소설들은 어쩜 빛조차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었다.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소소하지만 대중적이지 못한 소설을 마주하는 내내 그런 생각과 씨름을 했던 것 같다.


 

  문화와 정서의 다름에서 오는 이질감이 이 소설을 마주하는 내내 나를 겉돌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저자의 다양한 시도를 계속 지켜볼 것이고 그의 작품들이 새롭게 출간될 때마다 역시나 앞장서서 읽어댈 것이다. 아직도 만나지 못한 하루키 작품들이 넘쳐나므로 그 사이에 틈틈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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