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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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딱 들어맞는 단편집이었다. 개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보다 이렇게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그 경계를 하루키스럽게 잘 그려낸 것 같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디선가 일어났던 혹은 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들. 다섯 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지루함이 없었고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 해보기도 했다.

 

  첫 번째 단편인「우연 여행자」는 저자가 삼인칭의 위치에 있지만 자신이 등장하는 만큼 가장 신빙성(?) 있어 보였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어봄직 하지만 그래도 쉽게 찾아오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우연이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생명을 살리게 된다면 기이한 형태더라도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개인적으로「하나레이 해변」은 읽는 내내 마음이 찡했고 이 단편집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서핑을 하다 상어에게 물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매년 해변을 찾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은 그렇게 아들의 환영이라도 보길 원하지만 정작 아들의 환영을 보는 건 서핑을 하는 다른 아이들이다. 그 사실에 잠시 좌절도 하지만 아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해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재조명하는 모습이 쓸쓸하기도 하고 삶이 무엇인지 되뇌어보게 만들었다.

 

  24층과 26층 계단 사이에서 사라졌다 이십 일 만에 다시 나타난 남자의 이야기도 기이했다. 남자가 사라진 기간 동안의 기억도 사라졌지만 사립탐정이라 부르기 애매모한 주인공이 그 사건을 추적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자연스레『1Q84』가 생각나서인지 남자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인생의 여자를 만난 이야기와 움직이는 콩팥 모양의 돌이 기이하게 얽히는가 하면, 이름표를 말하는 원숭이가 가져갔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여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두 이야기 모두 흥미롭게 읽었는데 갑자기 원숭이가 말을 하고 이름표를 훔쳤기 때문에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는 갑자기 현실성이 없이 느껴졌다. 기이한 이야기에 한참 빠져 있다 마지막 단편을 마주하고 현실감을 되찾아서인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시나가와 원숭이」이야기는 다시 나를 현실로 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의 단편집에 꽂혀 소장하고 있는 단편집을 모두 읽고 나머지 책들도 부랴부랴 구입해서 읽었다. 몰아서 읽다보니 이야기들이 섞이고 책장을 덮고 나면 정작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제라도 하루키 단편을 읽었다는 만족감이 더 큰 읽기였는데 이 책은 그 가운데서도 기억에 남고 완성도에서도 만족감을 준 책이었다. 그렇게 몰아쳐서 읽던 하루키 단편집에 대한 애정은 현재 멈춰있다. 그러던 중 하루키 신간 에세이 출간 소식이 들려왔고 그 책을 읽다 또 하루키 책에 꽂힐지 모르겠지만 책장에 항시 대기 중인 그의 책들을 보며 다작한 작가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일단 하루키 책이 읽고 싶어질 때까지 또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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