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이미지 / 허밍버드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카피라이터도 아니고, 글로 먹고 사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이 끌렸다.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라는 문구도 궁금했고, 내가 블로그에 쓰는 리뷰나 자질구레한 글들에 문제가 있음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문장이 너무 길구나, 곱씹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뱉어내다 보니 이렇구나, 느끼면서도 이 책에서 알려준 방법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건 역시 어렵다. 그리고 무엇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작가도 아닌데 글을 맛깔나게 쓰는 사람을 보면 감탄에 이어 질투가 인다. 책을 읽는 것과 글쓰기가 완전히 상관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잘 쓰는 것과는 별개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다가도 내 글의 미미함에 기운이 쪽 빠지곤 한다. 모든 글을 재치 있게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일상을 이야기하는 짧은 글이라도 한번쯤 참 잘 썼다며 자축하고 싶은 낯 뜨거운 욕망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블로그에 올린 이런저런 글들이 어쩜 굉장히 피곤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당장 내 글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타인을 헤아리며 쓰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30년 간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저자가 알려주는 35가지 방법이 실려 있다. 하지만 그 방법 모두를 기억하고 실행하기란 어렵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실린 ‘글자로 그림을 그리십시오.’ 라는, ‘구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많다 -> 삼십육만칠천팔백 개, 꼼꼼하다 -> 손톱 열 개 깎는 데 꼬박 20분을’ 이런 식이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이례적으로 눈이 많이 오고 몹시 추웠던 날 블로그에 이런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아이 때문에 매일 <겨울왕국>을 보고 있어서 날이 추우니 엘사 여왕의 마법이 떠올랐다. ‘엘사 여왕이 또 가출했나? 해도 너무 춥네~’라는 제목에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소소한 내용을 덧붙여서 ‘구체성’을 흉내 내어 보았다.


 

  나는 겨우 조그맣게 흉내 내어 보았지만 30년 내공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 부분들이 참 많았다. 저자가 쓴 카피를 볼 때마다 익숙한 카피가 너무 많아서 놀랐고(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광고는 꼬박꼬박 챙겨보는 습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진심을 담는다던지, 시선을 먼저 끈다던지, 슬로건을 만든다던지, 상황에 맞게 만들어지는 카피의 색깔도 형태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 놀랐다. 그러면서 저자는 카피가 만들어지는 건 정답이 없다고 말했다. 기존의 형식과 방식을 깨뜨리면서 그에 맞는 카피가 나올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볼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뛴 경험을 기록해보는 의미와 타인에게 좀 더 수고로움을 덜어주려는 행위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함에 감탄하곤 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실린 모든 방법을 기억하며 써 먹기엔 무리가 있다. 저자도 그러길 바라며 쓴 것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광고 카피를 만들면서 생긴 방법과 그간 만들어 온 카피, 다른 사람이 만든 카피까지 예로 들다 보니 때론 중복되는 부분도 있었고 저자 스스로 밝히듯이 잘난 체 하는 부분도 있었다(그런데 그런 잘난 체가 밉살스럽지 않았단 말이지! 저자의 섬세함과 내공을 그냥 인정하게 된다.). 정치와 관련 된 카피도 많았고, 필사적으로 알려야 하는 제품에 관련된 일하도 많기에 이 책을 읽으면 카피가 잘 써진다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저자는 ‘나는 이렇게 썼는데 너는 어떻게 쓸래? 묻는 카피 연습장에 가깝다’고, ‘짧은 글로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는 관점 하나만 붙들고 읽어’달라고 하고 있다.


 

카피라이터는 말을 채집하는 사람입니다. (185쪽)


 

  저자의 말마따나 어쩌면 이 책은 말을 채집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글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면 그간 저자가 쌓아 온 내공과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될 거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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